말씀과 함께

ASIA LEPROSY MISSIONS

생명의 샘

카도쉬 아도나이. (출 3:1-5)

날 짜 :  
  • 양한갑
  • 23.05.03
  • 149

카도쉬 아도나이

3:1-5

 

 

   모세가 범상치 않은 호렙산으로 올라가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 이르렀습니다. 참으로 신비로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3:5) 저는 여기에서 잠시 멈추겠습니다. 그때 모세의 나이는 80세였습니다. 태어나서 80년 만에 듣게 된 하나님의 첫 음성이었습니다. 80년이었습니다. 모세가 그 80년을 기다렸을까요? 아니면 하나님께서 그 80년을 기다렸을까요? 하나님께서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그 당시 모세는 하나님의 존재를 깊이 인식하거나 경험하지 못했던 시기였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의 삶에 실제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그처럼 80년이란 긴 세월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세월 앞에서 안달하면서 산다면 작은 투정이 될 수 있습니다.

 

   모세가 그 준엄한 하나님의 음성 앞에서 그의 신을 벗었습니다. 그를 엄습했던 첫 번째 느낌은 찌름이었을 것입니다. 호렙산은 흙 한 줌, 풀 한 포기가 없는 거칠고 뾰족한 돌 산이었습니다. 맨발로 송곳 위에 서 있는 고통이 그의 발바닥을 타고 올라왔을 것입니다. 두 번째 느낌은 두려움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그의 몸을 덮었을 때 모세는 두려움 속에서 떨었을 것입니다. 그 [떨림]. 그것이 모세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났던 첫 번째 경험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읽을 때 대부분 모세가 신고 있던 그의 신에 집중하고는 합니다. 그래서 신을 벗으라는 말씀에 집중하면서 많은 설교가들이 신을 벗으라는 의미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 세상의 속된 것을 벗어 버리라. 겸손이 나아오라.”는 의미로 해석했습니다. 그것도 은혜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본문을 [모세의 신]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그 초점을 두고 보려고 합니다. 한글 번역대로 읽으면 신을 벗는 일이 나중에 나와 있고 중심이 된 듯 보입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그러나 그 번역을 바꿔서 나열하면 그 뜻이 달라집니다. 네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기 때문이다.”가 됩니다. 그렇게 읽으면 신을 벗는 일보다 거룩한 땅에 더 주목하게 됩니다. 모세가 그 당시 중요하게 느꼈던 것은 신을 벗는 일회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맨발로 서는 것이 그 자체였고, 그것이 그에게는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신을 벗는 일은 그에게는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습니다.

 

   두려움은 거룩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첫 번째 경험입니다. 주일예배로 나아가는 성도들이 그런 두려움이 없이 나아가면 헛된 공양만을 드리기 위함에 그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은 선을 긋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고 명령하셨던 것은 멈추라는 뜻이었습니다. 더 앞으로 나오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선을 넘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두려움]이란 선이 있습니다. 그 선을 넘어갈 수 있는 인간은 없습니다. 그 두려움 너머에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죄인된 인간이 넘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도 그 거룩한 땅 앞에서 멈추고 신을 벗고 섰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3:5)

 

   하나님은 우리가 감히 가까이 갈 수 없는 지존하신 분이십니다. 찬송과 영광을 세세 무궁토록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함부로 대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거듭난 성도들도  심하게 아프거나, 죽을 병에 걸리거나, 회복할 수 없는 파탄에 이르게 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넘지 말아야 선을 넘고는 합니다. 성도로서 지켜야 할 선을 스스로 부수고 막 삽니다. 안 됩니다. 실수하지 마십시오. 실패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은 인간입니다. 당신이 힘들다고 하나님을 막 대하지 마십시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3:4) 하나님은 모세가 호기심을 가지고 호렙산으로 올라오는 것을 보시고 계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십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우리의 생각을 아시고, 우리의 호기심을 아시고, 우리의 바람을 아시고, 우리의 불만을 아시고, 우리의 아픔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모르신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내 고통을 전혀 모르신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내 기도는 항상 외면하신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을 지금도 듣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제가 요즘 아픕니다. 이렇게 아파본 적이 없었습니다. 한 달 째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닐라로 돌아왔지만 아직까지 교회로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새벽 3시에 깨어 있는 상태에서 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너무 밝고, 너무 선명한 환상이었습니다. 어둠 가운데 광명한 빛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중앙에서 검정색 직육면체가 선명하게 일어나 제 앞으로 서서히 내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순간 제 입에서 카도쉬 아도나이 (여호와께 성결)”라고 외쳤습니다. 그 직육면체를 보는 순간 하나님의 거룩한 [지성소]를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게 음성이 임하셨습니다. 신을 벗으라.” 저는 즉시 일어나 실내화를 벗고 맨발로 섰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의 큰 위로하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침까지 깊이 잠들 수 있었습니다. 

 

   맨발. 크리스천으로서, 목사로서, 선교사로서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새로운 영성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맨발로 나아가는 일은 예수님의 보혈로 씻겨진 [순결]입니다. 자유였습니다. 환희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고 할 만큼 그의 발걸음이 [하나님의 거룩하심] 그 최접경 지역까지 접근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모세 만큼 하나님께 가까이 접근했던 사람이 있었을까요? 얼마나 큰 은혜였습니까? 얼마나 큰 영광이었습니까? 우리의 잘남은 한 낮 낙엽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자랑은 한 때 바람에 불과합니다. 당신은 이 땅에서 무슨 영광을 얻으려고 애쓰고 있습니까? 그 영광도 헤어지는 옷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덧입기 위해서 사십시오.

 

   당신이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거룩하심,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있기를 원하신다면 신을 벗으십시오. 맨발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선을 넘지 말고, 하나님께서 멈추라 하는 그 정하신 곳에서 멈춰 서십시오. 그때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야고보서 4:8)

 

 카도쉬 아도나이! 

קדוש אדונאי

 (여호와께 성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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