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함께

ASIA LEPROSY MISSIONS

생명의 샘

결과와 상관없이 (단 3:16-18)

날 짜 :  
  • 양한갑
  • 23.05.05
  • 107

결과와 상관없이

3:16-18

 

 


    제 지갑 안에는 여러 신분증이 있고, 은행 신용카드가 있고, 현찰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동차 키 하나가 있습니다. 이상한 차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잠깐 나갔다가 돌아온다는 생각으로 키를 꽂아 둔 채로 차 문을 닫고 나오면 잠시 후 키가 꽂힌 상태로 문이 잠겨버립니다. 난감한 상황을 경험한 이후부터 스페어 키를 지갑에 넣고 다닙니다. 그처럼 우리는 배우면서 살아갑니다. 경험을 통해서 황당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미리 대비합니다. 그 경험들 속에는 수학적 경험, 과학적 경험, 의학적 경험들이 있습니다. 셈이 밝은 사람은 손해 볼 일에는 처음부터 손을 대지 않습니다. 과학적인 사람은 빈틈이 없습니다. 의학적인 사람은 뛰어난 감별사입니다. 건강을 해치는 것은 항상 멀리 합니다. 그런데 수학적인 사람이든, 과학적인 사람이든, 의학적인 사람이든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늘 피곤하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걱정할 필요도 없는 일을 미리 걱정하고, 이미 짐이 무거운 데 그 위에 다른 짐들을 더하고 또 더하며 살아갑니다.

 

    요즘 날마다 창문 처마 밑으로 참새들이 날아와 집을 지으려고 짹짹 거립니다. 예쁘게 날갯짓을 하는 그 참새들을 볼 때마다 저는 자유를 봅니다. “너희는 좋겠다. 공부할 걱정도 없고, 운전할 걱정도 없고, 좋은 옷 살 필요도 없고, 그저 바람 따라 자유로이 날면 되니 너희가 참 부럽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6:26-30) 믿음이 있으면 그 자유로운 새보다 우리가 더 자유로울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성인이지만, 지나치게 수학적으로, 과학적으로, 의학적으로 의존해서 피곤하게 살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적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설령 우리에게 힘든 일이 일어나도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오를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다니엘의 친구들 즉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참 좋아합니다. 그들은 저에게는 롤모델입니다. 그들처럼 되기 원하고, 그들처럼 하기 원하고, 그들처럼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 때문에 그들은 그들의 목숨을 내놓아야만 했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 중심에는 풀무불이 있습니다. 쇠도 녹일 수 있는 용광로 같은 불구덩이를 말합니다. 왕의 금 신상에 절을 하면 살려주겠지만, 하나님을 예배한다면 그들을 그 극렬히 타는  풀무불 속에 던져 넣겠다고 했습니다. 그 풀무불 속에는 수학, 과학, 의학이 있었습니다. 수학이라 함은 풀무불의 온도가 1,500가 넘는다는 뜻이었고, 과학이라 함은 철도 한 순간에 물처럼 녹는다는 뜻이었고, 의학적이라 함은 그 속에 던져지면 살 수 있는 생명이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계산을 해도 그런 위기 상황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들이 죽느냐 사느냐는 그들의 선택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선택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풀무불 앞으로 인도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공포보다는 환희가 넘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풀무불을 향하여 나아갔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저는 요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너무도 보배롭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몸이 죽을 만큼 아파졌는데, 이빨까지 숭숭 빠졌습니다. 인플란트를 할 시간이 없어서 지금은 이빨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육체가 하나 둘 무너지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울하지 않습니다. 믿음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고후 4:16) 그 어떤 결과와 상관없이 그 어떤 것도 나를 절망의 늪으로 밀어 넣지 못합니다. 믿음 때문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그들은 위기를 만났을 때, 수학적으로, 과학적으로, 의학적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더욱 신앙적으로 살았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고, 옆도 보지 않고, 앞도 보지 않았고, 자신들의 생명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늘 그랬듯이 그들이 늘 했던 대로 위를 보면서 살았습니다. 그들은 왕에게는 담대히 외쳤지만, 하나님을 향해서는 떠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잠잠했습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3:17-18) 그들은 그 어떤 불평도, 원망도 하나님께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앞에서 잠잠했습니다. 너희는 잠잠하라.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46:10)

 

    사람들은 추정 값을 정해 놓고, 그 값이 실제로 나오는지 여러 방법을 통해서 추적하고 검증합니다. 의사는 환자를 진단한 후에 자신이 짐작되는 병을 추정하고 접근합니다. 여러 검사를 통해서 자신이 추정했던 병으로 확증되면 그때부터 치료 방법을 정합니다. 그런데 믿음은 우리를 다른 곳으로 인도합니다. 추정도 상관하지 않고, 검사 결과도 상관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하나님만을 향하여 가게 합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보여준 삶입니다. 그들은 풀무불 속에 던져지면 반드시 죽는다는 그 결과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그 결과에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고백했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뜻은 결과가 어떠하든 그 결과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고, 하나님을 끝까지 섬기겠다는 그들의 단호한 결단을 그렇게 만천하에 선포했던 것입니다. 오직 위만을 보고 걸어갔던 그들의 선택이 또한 우리의 선택이 되어야만 합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편 1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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