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M 선교통신 91호

양한갑/최영인 선교사

Chin 엘리사

    새벽이다. 창문을 열었다. 차갑지만 시원한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동이 트려고 큰 몸짓을 하고 있었지만 하늘에는 아직도 별들이 떠나지 않고 있었다. 하카에 도착했을 때 싸늘하고 축축했던 날씨는 더 이상 우리 앞에 있지 않았다. 비록 하카의 허리에 하얀 운해가 흐르고 있었지만 하늘은 파란 문을 활짝 열어주고 있었다.

    출발은 6시였다. 호텔 문을 열고 나아오니 몇몇 성도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 동안이었지만 우리 안에 맺어주신 사랑이 그처럼 사랑스러웠었다. 하카를 떠나 1시간 이상을 달리고 있었지만, 한 성도가 손을 흔들어주며 던져주었던 말이 귀에서 계속 맴돌고 있었다. “Bye. Come again!" 6개월 전 처음 하카에 왔을 때, 땅 끝처럼 느껴질 정도로 멀기만 했던 길이었다. 그런데 점점 그 길이 가깝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나 역시 하카 사람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하카에서 약 4시간 정도 달리면 하카(Hakha)에서 바룽(Valung)으로 가는 길에 수 천 미터 절벽과 같은 길을 만난다. 건너편이 눈앞에 가까이 보이지만 1시간 이상 걸리는 깊은 계곡이다. 양쪽 언덕 제일 높은 길들이 약 2,200m에 있다. 그 급경사 길을 내려가면 계곡 바닥에 아름다운 강이 흐른다. 바아르(Vaar) 강이다. 모든 차량들이 Vaar 강가에서 휴식을 취하고 다시 2,200m 건너편 고지를 향해서 올라간다.

    Vaar 강가에서 우리도 차를 세웠다. 그리고 한 가게 의자에 앉아서 하카 녹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때 한 노인이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털모자를 쓰고 있었고, 오른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윗옷은 하얀색 양복이었는데 몇 개월 동안 빨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등에는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있었다. 제일 먼저 그를 알아본 사람은 제임스목사였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 노인을 향해서 허리를 깊이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 노인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내가 외국 사람이라 가까이 와서 보고 싶은가 보다 생각했다. 제임스목사가 한국에서 온 선교사라고 나를 소개했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 나도 머리를 숙여서 인사를 했다.

    제임스목사는 하카의 전도자(Evangelist)라고 그 노인을 나에게 소개했다. 더러운 옷차림 때문에 정신이 좀 흐트러진 노인으로 알았다가 [하카의 전도자]란 말에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웃으면서 나를 바라는 노인의 눈은 매우 깊어 보였다. 그래서 제임스목사에게 “He is a holy man. He is a holy man."이라고 거듭 말했다. 그러자 제임스목사는 그는 정말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말했다. 지갑을 열어 20,000잣트를 꺼내서 그 노인에게 주면서 필요하신데 쓰라고 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 기도를 해주고 싶다고 했다. 노인은 기뻐하며 기도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간절히 그를 위해서 기도했다.

    그런데 내 기도가 끝나자마자 배낭을 벗어서 의자에 내리고, 갑자기 신발 끈을 풀기 시작했다. 제임스목사가 왜 그러시냐고 물었다. 노인은 나를 향해서 손을 내밀며 ”저 사람을 위해서 기도를 해야 한다.“라고 했다. 운동화 끈을 얼마나 단단히 묶었는지 혼자 풀지를 못해서 제임스목사가 옆에서 도와주었다. 운동화를 벗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세 목사가 가게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거기에서 기도해 주실 줄 알았는데, 다시 더 안쪽 방으로 들어가시는 것이었다. 제임스목사가 남의 집인데 그냥 가게에서 기도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노인은 ”Chin에 있는 집이 다 내 집이야.“하시며 자기 집처럼 안으로 들어가셨다. 가게 주인은 괜찮다고 하면서 들어가라고 해서 결국 그 노인을 따라서 안으로 들어갔다. 아주 어두운 방 하나가 있었다.

    노인은 그 방 한 가운데 서더니, 두 손을 하늘을 향해서 들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는 무릎을 꿇으라고 했다. 그래서 젊은 세 목사는 무릎을 꿇었다. 그때부터 큰 목소리로 기도를 시작했다. 이가 하나도 없는 노인이었기 때문에 설령 Chin 말을 알아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의 기도 소리에는 말할 수 없는 뭔가 강력한 것이 있었다. 기도는 약 5분 정도 했다. 그 분이 무슨 기도를 했는지 궁금해서 제임스목사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제임스목사는 운동화 끈을 다시 단단히 묶어드려야 하니까 기도 내용은 차를 타고 가면서 말해주겠다고 했다.

    제임스목사는 그 노인을 만나게 된 것은 큰 축복이라고 거듭 말했다. 그 분에 대해서 점점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을 물었다. 제임스목사는 “후앗숨(Huat Sum)"이라고 했다. 그러자 그때서야 아담목사도, 튜몽목사도 깜짝놀라면서 ”이 분이 그 후앗숨씨냐?“고 했다. 튜몽목사는 쉘폰을 꺼내서 그 노인을 찍기 시작했다. 그 노인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져만 갔다. 아담목사 역시 그 노인을 만나게 된 것은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라고 했다. 노인이 떠나려고 했다. 그래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러자 그 노인은 내 손을 잡더니 당신 볼에 대고 사랑스럽게 비비기 시작했다. 평범한 악수가 아니었다. 나이를 물었다. 78세라고 대답했다. 그 대화를 끝으로 우리는 헤어졌다.

    차는 다시 고도 2,200m를 향해서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제임스목사에게 그 노인이 누구냐고 다시 물었다. 이것은 제임스목사의 설명이다. “후앗숨씨는 목사가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수 십 년 동안 Chin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외치고 있는 전도자(Evangelist)입니다. 그를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어느 날 한 마을로 도착해서 복음을 외쳤습니다. 죄를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때 젊은이들이 화를 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고 후앗숨씨가 마을을 떠나려고 할 때, 젊은이들이 다가왔습니다. 그 청년들은 후앗숨씨를 위해서 준비한 도시락이라고 하면서 주었습니다. 후앗숨씨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 도시락을 받아서 길을 떠났습니다. 한참 가다가 보니 배가 고파서 청년들이 준 그 도시락을 먹기 위해서 열었습니다. 그런데 도시락 안에는 밥이 아니라 말똥이 가득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후앗숨씨가 두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후앗숨씨는 이미 마을 떠나 먼 곳에 있었지만 그에게 말똥 도시락을 주었던 청년들이 갑자기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스럽게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한 명씩 머리를 쥔 채 땅에 엎어지더니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그 한 날, 그 마을에서 죽은 청년이 모두 17명이었습니다. 청년들의 죽음의 원인을 뒤늦게 안 마을 사람들이 후앗숨씨를 찾았지만, 오랫동안 후앗숨씨의 행방을 아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후앗숨씨를 찾았습니다. 왜냐하면 청년 17명만 죽은 것이 아니라, 그 마을에서 재배했던 모든 농작물들이 다 죽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씨를 뿌려도 자라지를 않았습니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몇 달만에 후앗숨씨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후앗숨씨를 마을로 정중히 모시고 와서 용서를 구했습니다. 후앗숨씨는 그곳에서 다시 복음을 전했습니다. 모든 마을 사람들이 예수를 믿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자 두 손을 들고 예수의 이름으로 축복을 해주자 그 다음부터 심은 농작물마다 잘 되기 시작했습니다. Chin 사람이라면 그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아담과 튜몽도 그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나이가 78세인데도 지금도 걸어서 1년에 약 100여개 마을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은 어느 골짜기에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바람 같은 분이라고 했다.

      처음 보았을 때, 그 분에게서 느꼈던 거룩함(Holiness)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래서 신발까지 벗고 깊은 방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서 기도한 내용이 더 궁금해졌다. 제임스목사는 그의 기도 내용을 이렇게 전해주었다. “하나님 아버지, 드디어 제가 오늘 당신이 보내신 사람을 만났습니다. 이제 내가 당신 앞으로 갈 날이 가까이 다가 왔는데, 내 뒤를 이어 이 Chin를 맡아줄 당신의 종을 오늘 만났습니다. 그를 당신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제는 이 종을 거두어 주십시오.”라고 기도를 했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숨도 쉴 수가 없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물만 흐르고 있었다. 이번에 하나님이 나를 하카로 보내셨던 이유는 람챠오 집회도, 하카 신학대학 강의도, 하카 부흥회 인도도 아니고, 바로 Vaar 강가에서 전도자 Huat Sum씨를 만나 Chin를 향한 소명을 받도록 하셨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저리도록 떨려왔다. 나는 오늘 하카의 전도자가 아니라, Chin에 아직도 살아있는 선지자 엘리사를 만났다. 무사히 칼라이미오까지 내 몸은 내려왔지만, 내 안에 있는 모든 영(Spirit)은 여전히 Vaar 강가에 묶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