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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 LEPROSY MISSIONS

생명의 샘

불꽃이 되라. (레 10:1-2)

날 짜 :  
  • 양한갑
  • 22.05.19
  • 110

불꽃이 되라.


레 10:1-2




        성경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에는 끊어짐이 없이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 중요한 주제어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 주제어들을 따라서 가게 되면 신구약 성경을 한 눈으로 볼 수 있는 맥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언약, 속죄, 거룩함, , 용서, 기도, 심판, 향기, 보혈, 은혜, 생명, 구원 등등의 주제어들입니다. 그 많은 주제어들 중에서 오늘은 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고대 사람들에게 불은 어떤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지금은 성냥이나 라이터로 쉽게 불을 붙입니다. 그러나 고대 사람들에게 불은 생명과도 같았습니다. 불을 가진 민족은 철제 무기를 만들 수 있었고, 철제 무기를 가진 민족은 쉽게 세계를 정복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언급된 첫 번째 불은 인간이 만든 그런 불이 아니라 여호와의 불이었습니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를 에덴에서 쫓아내시고, 하나님은 그룹 천사들로 하여금 불 칼을 들고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창 3:24) 성경에서 [불]에 대한 언급은 그것이 첫번째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을 때, 아브라함이 바친 제물 위로 여호와의 불이 지나갔습니다. ( 15:17) 그 이후부터 여호와의 불은 자주 사람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모세는 호렙산에서 떨기나무 위로 임했던 여호와의 불을 보았고( 3:2), 시내산에서는 불 가운데로 강림하셨던 거룩한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출 19:18) 이스라엘 백성도 여호와의 불( 24:17)을 보았고, 40년 동안 날마다 여호와의 불기둥을 보았습니다. ( 13:22,  9:16)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했을 때 여호와의 불이 번제단 위에 임하였고 (대하 7:1), 갈멜산에서 엘리야가 기도할 때도 여호와의 불이 임하였습니다. (왕상 18:38) 신약에서는 그 여호와의 불이 오순절 성령의 불로 이어졌습니다. 그처럼 불은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여호와의 불과 관련된 불행했던 두 사건을 다시 꺼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사건은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훗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불이 아닌 다른 불을 담아서 성소 안으로 들어갔다가 여호와의 불에 타서 죽었던 사건입니다. ( 10:1-2) 모세와 아론은 레위 지파 출신입니다. 그리고 아론과 그의 후손은 제사장직을 이어받도록 지명되었습니다. 제사장의 직무 중에는 여호와의 불을 맡아 관리하는 직무가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사용해야만 했던 불은 하나님이 보내주셨던 번제단의 불이었습니다. 그 불은 하늘로부터 임했던 여호와의 거룩한 불이었습니다. ( 9:24) 그런데 아론의 두 아들은 그 번제단에서 여호와의 불을 취하지 않고, 다른 곳에 있는 불을 가지고 성소 안으로 들어갔다가 여호와의 불에 타 죽는 참변을 당했던 것입니다.

 

불과 관련된 두 번째 불행했던 사건은 고라(Korah)의 반란 사건입니다. 고라도 레위 지파였습니다. 야곱의 아들 레위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게르손, 고핫, 므라리였습니다. 반란의 주모자 고라는 고핫의 증손자였습니다. 그런 이해를 갖고 다시 고라 사건을 보겠습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훗이 성소 안에서 급사하자, 모세는 아론의 셋째 아들 엘르아살과 넷째 아들 이다말을 제사장으로 임명했습니다. ( 3:4) 그러자 고라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자신도 레위 지파인데 왜 제사장직을 아론의 아들에게만 대물림을 해주느냐고 했습니다. 고라의 반란에 동조했던 레위 사람들이 250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미 거룩한 직무가 주어져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마다 제일 먼저 성막을 챙겼습니다. 그때 성막의 성물을 만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레위 지파뿐이었습니다. 다른 지파 사람들이 성물에 손을 대면 하나님의 진노로 그들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레위의 첫째 아들 게르손의 자손에게는 성막의 천, 성소의 덮개, 지성소의 휘장과 성소를 세우는 줄을 책임지는 직무가 주어졌습니다. ( 3:25-26) 둘째 아들 고핫의 자손에게는 언약궤, 떡상, 등잔대, 물두멍, 번제단과 제사에 필요했던 모든 기구를 책임지는 직무가 주어졌습니다. ( 3:31) 마지막 므라리의 자손에게는 성막의 널판, 기둥, 받침, 말뚝 등을 책임지는 직무가 주어졌습니다. ( 3:36-37) 고라는 고핫의 후손으로서 언약궤, 떡상, 등잔대를 맡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에게 참으로 거룩한 일이 맡겨졌지만, 그는 그 일을 거룩한 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똑같은 레위 지파 자손인데 자신은 평생 무거운 짐만 지고 가는 짐꾼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똑같은 레위 지파인데 아론의 아들들만 황금으로 짠 에봇을 입고 있는 모습이 짜증나도록 싫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라는 제사장직은 지명직이 아니라 선출직으로 되어야 공평하고, 공정하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너무 똑똑하면 쉽게 바보가 됩니다.

 

모세가 그 말을 듣고 고라와 그와 함께 했던 250명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그들에게 너희가 참으로 분수에 지나친 일을 도모하였구나."라고 말했습니다. ( 16:7) 모세는 거룩한 성물을 맡은 일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 16:8-10) 제사장직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직책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직분임을 강조하고, 레위 지파 중에서 제사장직을 이어받을 자가 누구인지 직접 알아보자고 했습니다. 모세는 아론이 자신의 형이기 때문에 그와 그의 아들들에게만 특혜를 베푼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지명하신 일이었음을 강조했습니다. 그 사실을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각자 향로에 불을 담아 여호와 앞으로 가지고 나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고라와 250명은 각자의 향로에 불을 담아서 나왔습니다. 아론도 향로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250 1]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땅이 갈라져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가족 모두가 깊은 구덩이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갈라진 땅이 합해지면서 모두 매장되었습니다. ( 16:33) 그리고 250명도 여호와의 불에 타서 모두 죽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50명이 가지고 왔던 그 놋 향로들을 잿더미 속에서 모두 꺼내서 그것들을 두들겨 판을 만들어 번제단 주변에 깔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경고가 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 16:38) 그래서 제사장들이 제물을 가지고 번제단 위로 올라갈 때마다 여호와의 불에 죽임을 당했던 250명의 향로 놋 판을 밟고 가야만 했습니다. 얼마나 두렵고 떨렸겠습니까?

 

정리하겠습니다. 오늘은 성경에 흐르고 있는 주제어들 중에서 []을 보았습니다. 불은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거룩,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했습니다. 만약 나답과 아비훗에게 변명할 기회를 주었다면 그들은 뭐라고 말을 했을까요? “하나님, 불이 불이면 됐지 뭘 그렇게 까다롭게 따지시며 우리를 죽이셨습니까?”라고 했을 것입니다. 고라에게도 변명할 기회를 줬다면, 그는 모세와 아론은 그들의 자손들만이 제사장직을 독점하도록 악법을 만든 독재자들입니다. 제사장직은 민주주의 방식으로 선출되어야만 합니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의 주장이 맞나요? 우리가 부모를 선택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듯이 모든 일이 민주주의식 선택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 두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빈틈없이’ ‘철저히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답과 아비훗이 다른 불을 가지고 성소 안으로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 다름’을 미세한 차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 말하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그 불이 다른 불이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똑같은 불이었으니까요. 그러나 하나님께는 미세한 차이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도전장을 던진 항명(抗命)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답도, 아비훗도, 고라도, 250명도 비참한 죽음을 피해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제사장들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에 고백합니다. 저는 목사입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설교라는 직무가 주어져있습니다. 매주 설교라는 향로를 들고 강단 위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제가 그 설교를 어디에서 가지고 왔는지 모릅니다. 인터넷에서 퍼왔는지, 남의 설교를 인용했는지,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서 왔는지 성도들은 모릅니다. 그 차이가 너무도 미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그냥 괜찮은 설교로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미세한 차이를 아십니다.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아니 하나님은 속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설교자들은 강단 위에 설 때마다 번제단 주변에 깔렸던 250명의 그 놋 향로 발판을 기억하면서 온전한 불, 하나님이 명하신 불, 하나님이 주신 말씀만을 가지고 올라가 두렵고 떨림으로 주신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비단 목회자들뿐이겠습니까? 모든 크리스천들도 동일한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 철저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답과 아비훗의 잘못은 대충 산 죄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철저히 살지 않고 대충 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처럼 엄살을 부립니다. “세상에서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아십니까? 크리스천으로 사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너무 너무 힘듭니다.” 그것이 철저히 살지 못하는 변명이 될 수 있는 없습니다. 

 

불 이야기로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어떤 불과 함께 살아가야 합니까? 나답과 아비훗처럼 다른 불을 향로에 담지 않아야 합니다. “대충 살지 말자는 뜻입니다. “쉽게 살지 말자는 뜻입니다. “함부로 살지 말자는 뜻입니다. "이렇게 해도 되겠지"로 살지 말자는 뜻입니다. 말씀대로 "철저히 살아보자는 뜻입니다. 힘들지만 힘들게 살아보자는 뜻입니다. 우리가 서 있는 삶의 현장이 번제단 주변에 깔려있었던 250명의 그 놋 판이라고 여기며 두렵고 떨림으로 살아보자는 뜻입니다. 여호와의 불에 타서 재가 되는 인생이 아니라, 여호와의 불꽃이 되어보자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라고 하셨습니다. ( 12:49) 우리들이 이 땅에서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되기를 예수님은 그렇게 소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오순절에 성령 세례를 받았을 때 그들은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되었습니다. 가는 곳곳마다 그들은 불을 던지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그들입니다. 우리가 그 불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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