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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데스다의 진실 (요 5:1-47)

양한갑님 | 2019.04.16 23:54 | 조회 449

베데스다의 진실

요 5:1-47




 

   새벽예배는 큰 교회에서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난주간 새벽예배에서 또 다시 실망스런 설교를 들었습니다. “로마 군인들이 제비를 뽑아 예수님의 옷을 찢어서 나눠가졌습니다. 그 중에 한 조각이라도 누군가가 가지고 있다면 그 가치가 얼마나 될까요? 어마어마한 돈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던 로마 군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왼쪽 눈이 보이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창으로 예수님을 찔렀을 때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피가 터지면서 피 한 방울이 그의 눈에 떨어졌는데, 그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보이지 않았던 그의 눈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 창끝을 누군가가 가지고 있다면 그것 역시 값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보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대형교회 목사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강단에서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되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에도 없는 말을 마치 성경에 있는 사실처럼 그 목사는 설교했습니다. 번영신학(繁榮神學), 축복 신앙이 한국교회를 처참하게 무너트리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를 염려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이 메시지를 올립니다. 

 

   베데스다(Bethesda)자비의 집이란 뜻이었습니다. 베데스다는 성전 북쪽에 있는 양의 문(Sheep Gate)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성전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서 기원 전 2세기에 길이 110m, 너비 80m, 깊이 8m 인공 연못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베데스다였습니다. 그런데 그 베데스다 연못에 [출처가 불분명한 전설]이 있었습니다가끔 천사가 내려와 물을 흔들 때, 제일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된다는 전설이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병인들이 베데스다 연못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예고 없이 그 베데스다를 방문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왜 갑자기 베데스다를 방문하셨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38년 된 병자가 있었습니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병자였습니다. 그 불쌍한 병자를 고쳐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가셨던 것입니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아니었습니다. 그 보다 더 크고, 더 중대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알려면 오늘 본문으로 정한 요한복음 5장 전체 즉 1절에서 47절까지 천천히 꼼꼼히 끝까지 읽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5장은 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중간에서 끊어서 읽으면 안 됩니다. 특별히 예수님이 베데스다를 찾아가셨던 진짜 이유를 알려면 1절부터 읽지 말고, 마지막 47절부터 거꾸로 읽어내려 가야 합니다.

 

   먼저 베데스다가 어떤 곳이었는지 주목해 보겠습니다. 베데스다에는 출처가 불분명한 전설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전설은 전통이 되었습니다. 그 전통은 이상한 법을 만들어 냈고, 그 법에 따라 순서가 정해졌고, 연못에서 제일 가까운 자리에는 기득권까지 생겼습니다. 베데스다의 전설은 모든 병자들을 정신적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베데스다에 들어오면 기적을 얻을 때까지 병자들로 하여금 그곳을 떠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베데스다를 떠나는 것은 곧 삶을 포기한다는 공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바람에 연못의 물결이 조금만 흔들려도 병자들이 누워있던 자리에는 무서운 파도가 일어났습니다. 어제는 동료였지만, 오늘은 인정사정없이 그 친구들을 짓밟고 넘어가야만 살 수 있다는 살벌한 경쟁이 있었습니다. 그런 베데스다에 예수님이 오셨던 것입니다.

 

   먼저 말씀을 드리면, 예수님께서 베데스다에 오셨던 진짜 이유는 38년 된 한 병자에게 자비를 베풀기 위함이 아니라, 그를 통해서 큰 문제를 야기 시키기 위해서 오셨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그 병자로 하여금 큰 문제를 일으키는 불씨 혹은 발화점(發火點)이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 병자는 그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났지만, 그 분이 예수님이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병이 나을 수 있다는 믿음도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먼저 그에게 접근해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으셨던 것입니다. (5:6) 그리고 그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일방적인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그를 다시 만났을 때, 예수님은 그에게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5:14) 그 병자의 이야기 속에는 그가 구원을 받았다. 그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라는 문구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단지 그의 병이 죄로 인해 생긴 질병이었음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 봅니다. 예수님께서 베데스다에서 그 병자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라는 말씀이 논쟁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그 병자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일어나 오랫동안 깔고 있던 거적(자리)를 들고 걸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가 되었단 말입니까? 그 병자가 거적을 들고 일어나 걸었던 날이 안식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것을 [기적]으로 보지 않고, 안식일을 범한 중대한 [사건]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주도했던 예수님을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대응이 평상시와는 달랐습니다. 강력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 유대인의 공격을 기다리고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서 강력한 메시지를 선포하셨습니다. “(17)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은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을 자기 친 아버지라고 하여 신성모독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물러서지 않으셨습니다. “(19)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21)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22)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느니라. (23)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24)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8)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45)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할까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발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가 바라는 자 모세니라. (46)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47)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이처럼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요한복음 5장을 마지막 47절부터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왜 베데스다에 가셨는지 그 이유를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베데스다의 기적을 보고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을 범한 죄인이라고 주장하면서 모세의 율법을 들고 나와서 예수님을 고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말한 모세가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고발하게 될 것이라고 반박하셨습니다. 누가 옳습니까베데스다는 전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진리이셨습니다. (14:6) 베데스다는 사람들이 만든 허구(fiction)였습니다. 베데스다는 힘없는 병자들을 농락(籠絡)하는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데스다에 있는 그 거짓된 전설과 허구를 다 부셔버리고, “율법, 율법, 율법하는 자들의 오만을 다 부셔버리기 위해서 베데스다로 가셨던 것입니다.

 

   한국교회 강단이 전설이 넘쳤던 베데스다 연못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강단에서 예수의 복음이 선포되지 않고, 목사의 개인적인 헛된 생각이 말씀으로 둔갑되어 선포되지 않아야 합니다. 고난주간 강단에서 십자가 대신에, 예수님의 보혈 대신에 찢어진 예수님의 옷자락을 돈으로 환산한 설교를 듣는 일은 고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찔렀던 창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대박 보물]로 취급한 설교를 듣는 일은 분노였습니다.

 

   요한복음 5장을 1절부터 읽으면 한 병자를 살리신 축복의 장이 됩니다. 그러나 마지막 절, 47절부터 읽으면 요한복음 5장은 부활의 장이 됩니다. 예수님이 선포하셨던 메시지는 불신자를 향한 심판의 메시지였고, 구원받은 성도들을 향한 부활의 메시지였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 있는 예수님의 메시지는 하나였지만, 그 메시지를 선포하셨던 장소는 두 곳이었습니다. 1절에서 13절까지는 베데스다였고, 14절부터 47절까지는 예루살렘 성전이었습니다. 베데스다에서는 문제를 제기하셨고, 성전에서는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주간에 성전에서 선포되는 설교는 축복 설교가 아니라 부활 설교가 되어야만 합니다. 한국교회가 번영신학과 축복신앙에서 깨어나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베데스다의 전설은 반드시 지워지고, 삭제되고, 없어져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고난주간의 메시지는 축복이 아니라, 부활의 메시지를 품고 가야 합니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5:28-29) 


   이것은 베데스다를 떠나, 하나님의 성전에 선포하신 예수님의 거룩한 말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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