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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 (롬 5:8)

양한갑님 | 2019.04.18 11:05 | 조회 363

하나님의 마음

5:8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남기신 마지막 말씀들을 가상칠언(架上七言)이라고 합니다. 성금요일에는 그 말씀들을 깊이 묵상합니다. 그 가상칠언 중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12시까지 하신 말씀을 오전 말씀으로, 오후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하신 말씀을 오후 말씀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상칠언의 말씀들이 선포될 때, 놀라운 일들이 함께 일어났습니다. 오전 말씀을 마쳤을 때 그리고 오후 말씀을 마치시고 운명하셨을 때 각각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 두 가지 일을 삽입해서 6시간 동안의 십자가 고난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오전 9시에서 오후 12시까지

첫 번째 말씀: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두 번째 말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세 번째 말씀: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이 세 번째 말씀을 마치셨을 때, 오후 12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였습니다. “제육시(12)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오후3)까지 계속되더니” (27:45)

 

오후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네 번째 말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다섯 번째 말씀: “내가 목마르다

여섯 번째 말씀: “다 이루었다

일곱 번째 말씀: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오후 3시에 이 마지막 말씀을 마치시고 운명하셨을 때, 성전의 휘장이 찢어지고, 땅이 흔들리고, 바위가 갈라지고, 무덤이 열렸습니다. “그때 갑자기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둘로 찢어지고, 땅이 흔들리며, 바위가 갈라지고, 무덤이 열려 잠자던 많은 성도들이 살아났다.” (27:51-52)

 

  저는 오늘 가상칠언보다, 오후 12시와 오후3시에 일어났던 두 가지 일들에 대해서 집중 주목해 보려고 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자연의 이변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셨던 메시지였다고 저는 믿습니다. 오후 12시부터 3시까지는 예수님께서 가장 고통스러워 하셨던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에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절규하셨고, “내가 목이 마르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겪으셨던 고통의 끝을 느낄 수 있는 말씀들이었습니다.

 

   내 눈 앞에서 내 아들이 죽어가면서 아버지, 아버지, 저를 살려주세요.”라고 피를 토하며 절규하는데, 내가 그 아들를 구할 수 없는 먼 거리에 있거나 상황에 있다면 저는 눈을 감았을 것입니다. 아들이 처절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어떻게 두 눈을 멀쩡히 뜨고 볼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런 절규를 하실 때, "갑자기" 해가 빛을 잃고, 3시간 동안 온 땅에 어둠이 임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시간을 하나님께서 친히 눈을 감으셨던 시간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시는 아들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셨을 때 성전의 휘장이 찢어졌다고 했습니다. 성전의 휘장은 단순한 커튼이 아닙니다. 청색, 자색, 홍색 실로 꼬아 만든 두꺼운 직조물입니다. 그 두께는 9cm였고, 길이는 22m였고, 넓이는 11m나 되는 무겁고 두꺼운 휘장이었습니다. 수백 명의 사람이 양쪽으로 달라붙어 찢는다고 찢어질 수 있는 휘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고 했습니다. 바위들이 갈라졌다고 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아들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셨을 때,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그렇게 찢어졌고, 그렇게 갈라졌다고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하셨던 아버지이셨습니다. 어머니들은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을 압니다. 아버지들은 모든 아버지들의 마음을 압니다. 민족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경제 수준이 달라도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모두 같습니다.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 칼을 들어 아들을 찌르려고 했을 때, 하나님은 급한 목소리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데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22:12)고 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아버지] 아브라함의 마음을 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서 이삭을 대신 할 숫양을 주셨고, 아브라함은 그 숫양을 잡아 번제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하나님께는 사랑하시는 아들을 대신해 줄 양(Ram)이 없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숲속에서 숫양을 잡아서 죽였지만, 하나님은 친히 사랑하시는 아들을 죽이셨습니다. 그 아들을 죽이셔야만 했던 아버지의 마음이 찢어진 휘장으로, 갈라진 바위로, 흔들리는 땅으로, 깨지는 무덤으로 표현되었던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그 고통을 스스로 감당하셨던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사망의 법]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2:17) 그 사망의 법 때문에 아담과 하와는 반드시 죽어야만 했고, 그 원죄로 인해 모든 인간 역시 반드시 죽어야만 했습니다. 그 사망의 법을 공포하셨던 분이 하나님이셨고, 하나님은 그 법을 실제로 실천하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예수님께 죽음을 명하셨고, 예수님은 그 사망의 법을 십자가 위에서 혼자 감당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이십니다. 그 예수님의 속죄의 피가 우리 안에 흐르게 되면 죄의 법과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8:1-2) 


   그처럼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 사랑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이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16) 그리고 공생애 마지막 날, 그 사랑은 십자가에서 확증되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확증이 오늘 본문에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5:8)

 

   성금요일에 우리가 반드시 묵상해야 할 것은, 십자가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에 대한 묵상만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 예수님께서 남기신 마지막 가상칠언(架上七言)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더 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더 위, 십자가 위.하나님의 나라에서 사랑하시는 아들을 바라보면서 눈을 감으셨던 아버지의 마음, 아들이 운명하실 때 가슴을 찢으셨던 아버지 마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언젠부턴가 사순절과 고난주간이 교회 행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목사라, 장로라, 권사라, 집사라 할 수 없이 억지로그 주간을 지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억지라고 표현하는 것은 사순절이 지나면, 고난주간이 지나면, 목회자는 십자가 설교를 하지 않고, 성도들은 십자가를 쉽게 잊습니다. 고난주간을 끝으로 새벽기도회도 막을 내립니다. "고난주간"이란 교회 행사가 끝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날이 지나고, 해가 바꿔도 주님을 향한 마음은 바뀌지 않아야 합니다

 

   목회자가 번영신학에서 빠져나오지 않으면, 성도들이 축복신앙에서 빠져 나오지 않으면, 그들에게 십자가는 단순히 액세서리에 불과 합니다. 그들은 무거운 십자가 대신에 가벼운 십자가를 택할 것이고, 피 묻은 십자가 대신에 예쁜 십자가를 택할 것이고, 험한 십자가 대신에 폼 나는 십자가를 택할 것이고, 끔찍한 십자가 대신에 황금 십자가를 택할 것입니다. 천국은 반드시 가야 하는데, 십자가는 쉬운 것을 지고 가려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6시간 동안 양손을 벌리고 십자가에 달려 계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해서그런데 우리는 단 6분도 그 주님을 위해서 양손을 들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이기적인 크리스천입니까축복신앙에 빠진 사람들은 힘든 십자가, 무거운 십자가, 험한 십자가라고 하면 속히 벗어버리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고, 주님이 주신 십자가에 대해서는 저는 모릅니다.”라고 하면서 얼굴을 돌릴 것입니다. 누가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을까요? 그 십자가를 누구에게 맡길 수 있을까요? "나의 성공을 위해서" 예수님을 믿지 마십시오. "최후 승리를 위해서" 주님이 주신 십자가를 지고 가십시오. 그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당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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