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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큰 형이 아닙니다. (요 7:1-9)

양한갑님 | 2019.04.25 00:08 | 조회 567

예수님은 큰 형이 아닙니다.

7:1-9

 




   유대인의 3대 절기는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입니다. 유월절(Passover)은 이집트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절기로 3월에 있습니다. 칠칠절(Pentecost)‘7x7=49’란 뜻으로 유월절 후 50일째 되는 날에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절기로 5월에 있습니다. 그 첫 열매가 보리였기 때문에 칠칠절을 맥추절이라고도 하고, 신약교회에서는 성령이 임하셨던 날이었기 때문에 성령강림절이라고도 합니다. 초막절(Tabernacle day)은 광야 40년 동안 베풀어주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기 위해서 초막을 짓고 7일 동안 지내는 절기로 9월에 있습니다.

 

   오병이어 기적이 있었던 요한복음 6장은 유월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6: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그러나 오늘 본문 요한복음 7장은 초막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7:2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그런데 오늘 본문 요한복음 7:1절은 그 후에라는 접속사(After this)로 연결하여 마치 요한복음 6장과 7장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 일처럼 생각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6개월 후를 말합니다. 유월절(3)과 초막절(9) 사이에는 6개월이란 기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6개월 동안 예수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요? 제자들을 훈련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침묵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침묵을 가장 답답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형제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침묵의 6개월을 묻혀진 세월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요한복음 7:4절입니다.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했던 예수님의 형제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3:55절입니다. 이는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향을 방문했을 때 들은 말입니다. 마태복음 1장에는 아브라함으로 시작해서 요셉까지의 족보가 실려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은 예수님 이후의 족보가 첨부되어 있는 것처럼 형제들의 이름이 마태복음 1장의 족보처럼 나열되어 있습니다. 그 기록을 놓고 가톨릭교회, 동방정교회, 개신교회가 각각 해석을 달리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형제들의 이름을 말했던 사람들이 요셉과 마리아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와 그 누이들과 함께 나사렛에서 오래 동안 살았던 고향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나사렛 사람들의 말을 근거로 한다면,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예수님의 친 동생이었든, 다른 동생이었든, 중요한 것은 그들은 [예수님의 가족]이 분명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동생들이 [가족의 입장]에서 예수님께 했던 말로 보아야 합니다. 즉 동생들이 큰 형에게 했던 말입니다. 형님, 초막절이 내일 모레입니다. 이렇게 갈릴리에만 박혀 있지 마시고, 예루살렘으로 가셔서 형님이 가지고 계시는 그 놀라운 능력을 행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형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던 동생은 서열로 보아 첫째 동생이었던 야고보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그의 말은 좋은 의미가 아니었다고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 5절입니다.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즉 야고보의 말은 믿음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는 말씀은 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메시야로 믿지 않았다는 뜻이었습니다.

 

   야고보가 그런 말을 하게 된 배경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사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12살 때, 예루살렘 성전에 가셨을 때까지 아버지 요셉에 대한 언급이 있었습니다. (2:48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그러나 그 이후에는 요셉에 대한 언급은 성경에서 찾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요셉이 죽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신학적인 의미로,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 세례 요한은 물러가야만 했습니다. 요셉도 물러가야만 했습니다. 공생애 가운데 예수님께서 자주 [아버지]를 언급하셨는데, 그 아버지는 요셉이 아니라 오직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동생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단지 아버지 요셉이 여러 자식을 가난과 함께 남겨둔 채로 죽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동생들은 큰 형을 아버지처럼 바라보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큰 형]이 기적을 행하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 이상을 먹이시는 기적을 보았을 때, 동생들은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더 특별했던 것은 그 기적 이후에 수천 명의 사람들이 큰 형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였습니다. 동생들은 춤을 추듯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이 나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큰 형 예수님이 초막절에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런 놀라운 기적을 행한다면, 더 많은 추종자를 얻을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큰 형은 확실하게 왕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6개월 동안 갈릴리에 묻혀서 침묵하고 계셨던 큰 형 예수님을 보았을 때, 동생들은 답답함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가자는 말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예수님을 바르게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동생들에게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이었습니다. 야고보는 매니저처럼 초막절에 큰 형 예수님을 예루살렘의 스타(Star)로 만들려는 프로젝트를 세웠지만, 큰 형은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지 않고, 반대로 죄인이 되어 십자가에 목박혀 죽었습니다. 야고보는 절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삼일 만에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야고보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고전 15:7) 그때서야 야고보는 예수님이 자신의 큰 형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야이시며, 주님(Lord)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야고보에게 부활은 실제(實際)였습니다. 실제(實際)란 부인할 수 없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史實)을 말합니다. 그 부활의 실제가 야고보를 변화시켰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야고보가 두려움을 갖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나보다 변변치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는 쉽게 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군대에서 일등병이 연대장 앞에 서면 다리부터 떨립니다. 두렵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내 형이라는 생각을 가졌을 때는 예수님을 쉽게대했지만, 부활하신 후에 그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야고보서를 기록할 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야고보서 11절입니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야고보는 자신을 예수님의 동생으로 소개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소개했습니다. 예수님께 저는 당신의 종입니다.”라는 그의 고백 속에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으로 살지 않고 (갈 1:19), 예수님의 제자로, 예수의 종으로 그의 삶을 드렸습니다. 야고보의 마지막 생애는 위대했습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초대 감독이 되었고, 구전에 의하면 야고보는 AD 62년에 총독 안나스에 의해 순교를 당했습니다.

 

   부활은 실제(實際)였고, 사실(史實)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수많은 사람들 앞에 현현(顯顯)하셨습니다. 그 주님의 부활을 실제로 확인했던 사람들의 생애는 180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도 아끼지 않고 내놓는 헌신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신앙이 없는 사람은 지금도 끊임없이 예수님께 기적만을 요구합니다. 끊임없이 로또(Lotto) 같은 대박을 꿈꾸며, 축복을 자신에게 물 붓듯이 부어달라고 기도합니다. 여전히 그들은 예수님을  "쉽게" 대합니다. 예수님을 경외(敬畏)하는 "거룩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예수님께 달라고 하지 않고, 자신의 생명을 드리는 제자가 됩니다. 부활의 실제는 부활을 믿는 이들에게 고귀한 순종과 복종을 갖게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음을 믿습니까? 주님의 부활을 믿는다면 당신은 주님께 [절대 복종]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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