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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내려놓으라. (삼상 21:7-9)

양한갑님 | 2019.09.26 16:40 | 조회 40

칼을 내려놓으라.

삼상 21:7-9

 

 


   사울왕과 다윗의 싸움은 이스라엘을 혼란에 빠트렸습니다. 두 사람의 싸움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비극의 역사를 다시 한번 돌아보려고 합니다. 이 비극의 역사는 사무엘상 20장에서 22장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혼란의 시대에 등장했던 사람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사울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을 때, 사울은 그를 너무너무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자신보다 다윗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사울은 다윗을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미움은 단순히 누군가를 싫어하는 감정에서 시작합니다. 새벽 안개처럼 소리 없이 조용히 피어오릅니다. 그런데 그 미움이 진해지면 그 사람이 눈앞에서 사라져 주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계속 눈앞에서 얼쩡거리게 되면 그가 몹쓸 병에 걸려서 비참하게 죽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가 더 건강해지고, 자신을 위협하는 경쟁자로 올라오게 되면 결국 그를 죽이기로 작정합니다. 그래서 미움은 살인을 부릅니다. 사울은 그 미움의 끄트머리까지 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울이 그처럼 다윗을 죽이기로 작정했던 배경에는 이런 추론이 가능합니다. 첫째, 모든 백성이 존경하고 따라야 할 사람은 오직 왕이었던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둘째, 그는 열등감에 빠져있었습니다. 다윗을 살려두면 자신이 진짜 패배자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열등감은 결국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과 공모하여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했습니다. 삼상 22:8절에서 사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고, 다윗이 잘못되었다고 내게 말하는 신하가 단 한 사람이 없고, 나를 위해서 슬퍼하는 자도 이 나라에 단 한 사람도 없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울은 그처럼 자신이 파놓은 정신적인 고립 혹은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셋째, 자신의 왕권은 반드시 아들 요나단에게 세습해줘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것을 반대하는 자는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다윗을 향하여 힘차게 창을 던졌던 것입니다.

 

2. 아히멜렉

   다윗은 그런 사울 왕을 피해서 놉(Nob)으로 피신했습니다. 놉은 예루살렘에서 서북쪽으로 약 6km 지점에 있었습니다. 놉은 제사장들이 사는 제사장의 마을이었습니다. 그 놉에 아히멜렉이라는 대제사장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요나단과의 약속(삼상 20) 때문에 숲속에서 3일 동안 먹지 못한 상태로 있다가 놉으로 급하게 은신했기 때문에 배가 너무 고팠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에게 음식을 달라고 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다윗은 아히멜렉에게 구체적으로 떡 다섯 덩이를 달라고 했습니다. (삼상 2:3) 다른 일행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혼자였습니다. 그것은 앉은 자리에서 떡 다섯 덩이를 먹어치울 만큼 배가 몹시 고팠다는 뜻입니다그때 아히멜렉은 하나님께 드렸던 성전의 거룩한 떡(진설병)을 다윗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은 대제사장의 큰 실수였습니다.

   하나님께 드렸던 진설병은 오직 제사장들만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제사장이 아니었습니다. 아히멜렉이 개인적으로 다윗을 좋아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러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제사장은 개인적인 감정이나 판단에 흔들리지 않고, 제사장으로서 지켜야 할 규례를 지켜야만 했었습니다. 그런데 아히멜렉은 성전의 규례를 깨고 다윗에게 거룩한 떡을 주었던 것입니다

   다윗 역시 그 떡이 하나님께 바쳤던 진설병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떡 다섯 덩이를 한숨에 먹어버렸습니다. 진설병을 먹은 후에 다윗은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는 정신없는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다윗은 아히멜렉에게 창이나 칼이 있으면 달라고 말했습니다. 쫓기는 자가 된 다윗은 자신에게도 반드시 무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히멜렉은 참으로 기가막힌 말을 합니다.무기는 없소. 아하~~~ 에봇 뒤에 천으로 쌓아둔 칼이 하나 있소. 당신이 골리앗의 목을 쳤을 때 사용했던 바로 그 칼이요. 원하면 가져가도 좋소.”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주저하지 않고 골리앗의 칼을 취하여 놉을 떠났습니다.

 

3. 도엑

   그런데 비극의 역사를 만들었던 불씨가 그 현장에 함께 있었습니다. 다윗이 아히멜렉으로부터 골리앗의 칼을 취하여 떠나는 것을 몰래 지켜보고 있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도엑(Doeg)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에돔(Edom) 사람이었습니다. (삼상 22:18) 그런데 도엑은 사울이 소유했던 모든 짐승을 관리하는 목자장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짐승을 키우는 일에 탁월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 같았습니다. 도엑은 놉(Nob)에서 얻은 정보, 즉 다윗이 골리앗의 칼을 손에 취하였다는 정보를 이용하면 일약 출세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왔을 때 도엑은 사울에게 그 비밀을 폭노했습니다.

   사울은 즉시 병사들을 데리고 놉으로 향했습니다. 대제사장 아히멜렉을 불렀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이새의 아들과 공모하며 나를 대적하려 했느냐?”라고 분노했습니다. 그 날 사울은 아히멜렉을 비롯해서 놉에 있었던 제사장 85명을 학살했습니다. (삼상 22:18) 그 소식을 들은 다윗은 시편 52편을 통해서 도엑을 저주했습니다.

 

4. 다윗

   이제 다윗을 집중해서 보겠습니다. 사울도 잘못되었고, 아히멜렉도 잘못되었고, 도엑도 잘못되었고, 다윗도 잘못되었습니다. 다윗은 그러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죽을 만큼 배가 고파도, 거룩한 떡을 먹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아히멜렉에게 창과 칼을 달라고 요청한 것도 잘못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몇 장 뒤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골리앗 앞에 다윗이 섰을 때 그가 외쳤던 말이 있었습니다. 삼상 17:45절입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했습니다. 그의 말에 우리는 큰 감동과 도전을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다윗이 대제사장에게 칼과 창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아히멜렉이 골리앗의 칼 밖에 다른 무기가 없다고 했을 때,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보다 더 좋은 무기는 없습니다. 그것을 제게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삼상 21:9) 다윗은 그처럼 자신이 우습게 취급했던 그 골리앗의 칼을 스스로 취하여 손에 들고 놉을 떠났던 것입니다. 그의 뒷모습에서 쓰디쓴 씁쓸함을 느끼는 것은 비단 저만의 느낌은 아닐 것입니다.

 

   저는 요즘 한국 정치와 한국교회를 바라보면서 그 동일한 씁쓸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사람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정치인들은 사울처럼 정적(政敵)을 죽이기 위해서 굶주린 짐승들처럼 으르렁거리고, 도엑처럼 숨은 비밀들을 찾아내어 폭노함으로 일약 국민적 스타가 되려고 하고, 기독교 지도자들은 아히멜렉처럼 영적 중심을 잃어버리고 편중(偏重)된 자기 판단과 결정을 따르고, 일반 크리스천들은 다윗처럼 먹고 사는 현실 때문에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배 터지도록 먹고, 잡지 말아야 것들을 손에 불끈 쥐고 마치 온 세상을 자기 손에 쥔 것처럼 흥분합니다. 모두 잘못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뒤틀려 있습니다.

 

   다 정신이 없어도 다윗 한 사람만이라도 제 정신을 차렸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마저 정신줄을 놓았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사울이 던진 창을 간신히 피하고 목숨을 건질 수가 있었지만, 계속되는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습니다그래서 놉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요나단을 만났을 때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와 죽음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라.” (삼상 20:3) 죽음이 바로 코 앞에 와 있다고 한 것입니다. 다윗은 그처럼 죽음에 대한 공포에 짓눌려 있었습니다.


   다윗뿐이겠습니까? 우리도 실패에 대한 공포, 버림받음에 대한 공포, 암에 대한 공포, 미래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어떠한 경우을 만나도, 그 어떤 상황을 만나도 우리는 강해야만 합니다. 항상, 반드시, 언제나, 늘 강해야만 합니다.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결론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도엑은 출세를 위해서 비밀을 밀고했습니다. 그 결과 아히멜렉과 85명의 제사장들이 학살을 당했습니다. 그 결과 광란의 시대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비극의 역사를 낳게 한 사람이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그는 놉(Nob)으로 피신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잘못된 시작이었습니다. 다윗은 (Nob)이 아니라, 라마(Ramah)로 피신했어야만 했었습니다

   놉은 예루살렘에서 서북쪽으로 6km 지점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라마는 같은 길에서 4km만 더 가면 있었습니다. 놉에는 아히멜렉이 있었지만, 라마에는 사무엘이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사무엘이 살아있었습니다. 다윗이 서북쪽 방향으로 피신처를 잡았던 것은 아마도 사무엘이 라마에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배가 너무 고파서 라마까지 이르지 못하고, 4km을 눈앞에 두고  방향을 바꿔 놉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그런 비극의 역사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그때와 같습니다. 너무도 혼란스럽고, 너무도 악합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배가 고파서 길에 쓰러질 정도가 되어도 하나님이 정해주신 길로만 가야 합니다. 옆길로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먹지 말아야 할 것은 굶어 죽어도 먹지 않아야 합니다놉을 선택했던 다윗 한 사람의 그릇된 판단이 무고한 사람들을 죽게 했습니다. 크리스천 한 사람,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이 한 가족과 한 교회와 한 국가를 무너트릴 수 있습니다. 그 비극의 사건 이후에 사무엘은 조용히 라마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삼상 25:1) 그때까지 사무엘이 살아있었던 것은 아마도 다윗을 마지막으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윗이 라마로 가서 사무엘을 만났다면 그가 칼을 취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85명의 제사장들도 그렇게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깨어 있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칼을 휘둘렀던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진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26:52) 지금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에는 사방에 칼을 든 자들만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슴을 치며 내 조국 대한민국과 한국교회를 위해서 기도합니다.주여, 이 땅을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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