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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1초도 하나님을 위하여 (창 22:12)

양한갑님 | 2019.10.25 09:09 | 조회 58

마지막 1초도 하나님을 위하여


22:12


 

 

   아브라함은 75세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12:1) 하나님께 그와 같은 부르심을 받는 일은 언제나 무한한 영광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부르심을 영광으로 믿었을까요?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정들었던 고향을 주저함 없이 뒤로하고 떠났던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서 가는 길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휘파람을 불면서 갈 수 있는 즐거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 길에서 아버지를 타지에 묻어야만 했고, 가뭄과 기근 때문에 애굽까지 내려가야만 했고, 거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거짓말을 해야만 했고, 롯을 구하기 위해서 전쟁을 해야만 했고, 하갈과 이스마엘 때문에 가정불화까지 겪어야만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처럼 삶의 역경이 많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 너무도 가혹한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씀은 창 2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세기 역사학자였던 조세프스(Josephus)는 당시 이삭의 나이는 25세였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첫번째 부르심을 받을 때(창세기 12장), 아브라함의 나이는 75세였고,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창세기 22장), 아브라함의 나이는 125세였습니다. 창12장과 창22장 사이에는 50년이란 긴 세월의 간격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50년 전 고향을 포기했던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100살에 얻은 아들을 포기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도 아버지가 아들을 칼로 죽여서 제물로 드리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들의 목숨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드리고 싶을 만큼 하나님의 명령은 아브라함에게는 너무 가혹했습니다.


   그 두 구절을 영어 성경으로 보면 공통된 부분이 있었습니다. 12:1절입니다. “Go to the land I will show you.” 그리고 창 22:2절입니다. “Go to the region of Moriah I will show you.” 이 두 구절을 겹쳐서 올려놓으면, 12장에서 언급하셨던 그 (the land)’이 곧 모리아 산(Mt. Moriah)’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50년 후에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했고, 그 시험을 통과했던 아브라함은 믿음의 아버지로, 의인으로 인준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이 이야기를 아브라함이 시험을 받았던 [내용]에 주목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 시험을 끌고 가셨던 [시간]에 주목을 해보려고 합니다. 이 이야기 밑에는 고통스러웠던 시간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눈에서는 눈물이 아니라 핏물이 흘러내릴 만큼 고통스런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직면했던 그 고통의 시간들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아들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이 떨어졌을 때 아브라함은 즉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다음 날 아침, 이삭과 두 명의 종을 데리고 브엘세바를 떠났습니다. 브엘세바에서 모리아 산까지는 약 60km였습니다. 브엘세바는 헤브론 밑에 있었고, 모리아산은 지금의 예루살렘입니다. (대하 3:1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서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르 시작하니.”) 60km를 가는데 3일이 걸렸다고 했습니다. (22:4) 하루에 20km만 이동했다는 것은 아브라함의 발걸음이 그 만큼 무거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1분이 1년처럼 길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1m10km처럼 멀었을 것입니다. 그의 발걸음을 빨리 재촉한다는 것은 그 만큼 아들의 목숨을 1분이라도 더 단축시키는 것과 같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빨리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3일 동안 걸으면서 아브라함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요? 하루에도 수백 번 하나님께 명령을 취소해 달라고 부탁해 보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런 부탁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 아들을 번제물로 드려야만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도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또한 그 이유를 아브라함에게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모래시계처럼 고통스런 시간만 핏방울이 되어 뚝뚝 떨어졌습니다.

 

   이삭이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삭이 눈치를 챈 듯한 질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대답했습니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실 것이다.” 이삭이 그 말을 믿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어린 양이 아들이 될 것이라고 믿었고, 이삭 역시 그 어린 양은 자기 자신이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늙으신 아버지가 자신을 결박해서 나무더미 위에 올려놓았을 때, 청년 이삭은 저항하지 않고, 그의 몸을 산 제물로 내놓았던 것입니다. 아버지에게도 순종이, 아들에게도 순종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했던 대로 밀고 나갈 때가 많습니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착각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을 따라 갈 수 없는 부분이 거기에 있습니다. 그는 3일 동안 걸으면서 그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들어왔을 것입니다. 다시 브엘세바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고, 하나님께 항의도 하고, 저항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생각들을 다 거둬냈습니다. 하나님께 하고 싶었던 말도 땅에 다 떨어트려 버렸습니다. 그가 집중했던 것은 그의 많은 생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신성한(Divine)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절대 복종은 사랑하는 아들을 향해서 칼을 드는 일이었습니다.  

 

   그 모든 상황들을 잠시 그대로 멈춰놓고, [여호와 이레]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 정상으로 올라갈 때, 하나님은 그곳에서 수양을 준비해 놓고 아브라함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해답을 가지고 아브라함을 기다리고 계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해답(수양)을 언제 아브라함 앞에 꺼내놓으셨는지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묶었습니다. 그때까지도 하나님은 수양을 내놓지 않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나무더미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때까지도 하나님은 수양을 내놓지 않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칼을 높이 들었습니다. 그때까지도 하나님은 수양을 내놓지 않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의 심장을 향해서 힘차게 칼을 내리쳤습니다. 바로 그 찰라에 하나님의 천사가 급한 목소리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칼끝은 이삭의 심장 바로 앞에서 멈춰 섰습니다. 하나님의 타이밍(God's Timing)이 거기에서 걸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해 보시기 위해서 그 마지막 1초까지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1초를 남겨놓고 아브라함을 막은 후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셨던 말씀을 주목해 봅니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22:12) 하나님께서 이제야(Now)”라고 하셨는데, 그때란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기 바로 [1초 전]을 말합니다. 그리고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란 말씀에서 아끼지 않았다.”라는 말을 모든 영어 성경은 같은 단어로 번역을 했는데, 그 단어는 "withheld”였습니다. “숨기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어 원어는 카삭(חָשַׂךְ:chasak)이라 했는데, 그 뜻은 뒤로 빼돌리지 않았다.(keep back)”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3일 동안 모리아 산으로 가면서 이삭으로 하여금 도중에 도망치도록 뒤로 빼돌리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뒤로 빼돌리고 대신에 다른 동물을 잡아서 하나님께 드리려고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의(righteousness)가 되었던 것은 [끝까지] 이삭을 빼돌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경우를 만나면 부끄러운 일을 합니다. 아들을 데리고 갈 때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정말 이것입니까?”라고 말할 것입니다. 아들을 결박할 때도 정말 이 아들을 묶어야 합니까?”라고 말할 것입니다. 나무더미 위에 올려놓을 때도 정말 이렇게 까지 해야 당신의 속이 시원하시겠습니까?”라고 말할 것입니다. 칼을 들고는 하나님이 이런 일까지 하라고 명령하시면 정말 안 되지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지막 단계에서 절대 복종이 아니라 하나님께 진실 대신에 가짜 짝퉁을 드리고는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험에서 떨어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마지막 1초"까지 하나님께 절대 복종을 드리는 일에 사용했습니다. 우리 주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분들에게 오늘 말씀이 위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도 시험하십니다. 욥도 시험을 받았고, 예수님도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시험에서 제외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 했기 때문에 시험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모자라서 시험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의를 위해서 시험을 받을 수 있고, 영적 성숙을 위해서 시험을 받을 수 있고, 승리를 위해서 시험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시험이 주어지든, 그 어떤 고통의 시간이 주어지든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1”까지 하나님을 높여 드리고, 하나님께 복종을 드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시간으로 써야 합니다. 당신에게 마지막 1초가 있다면, 그 마지막 1초로 당신이 누구인지 하나님께 증명해 보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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