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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족이 주는 자유 (빌 4:11-12)

양한갑님 | 2020.04.25 05:39 | 조회 78

자족이 주는 자유


4:11-12

 

 


   사도바울이 로마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바울의 건강은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곁을 떠나지 않고, 바울의 건강을 돌봐주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에바브로디도는 그들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빌립보교회 성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도 큰 병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아픈 몸을 가지고 바울을 끝까지 섬겼습니다. 바울은 그에 대한 감사를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일을 위해서 죽음에 이르렀어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고 나를 섬겼느니라.” (2:30) 바울은 그의 건강 회복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고, 에바브로디도는 다시 건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 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2:27)

 

   건강을 회복한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로 갔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어려운 형편을 자세히 전했고,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바울을 위해서 모금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그 모금을 로마로 가지고 와서 바울에게 전달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기 위해서 편지를 썼는데, 그것이 빌립보서입니다. 오늘 본문은 모금에 대한 바울의 대표적인 인사말입니다. “내가 가난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4:11-12)라고 했습니다. 이 긴 말을 짧게 줄여서 말한다면, “나는 괜찮습니다. 내 염려는 하지 마십시오.”라는 뜻이었습니다.

 

   이 말씀가운데 으뜸이 되는 단어는 [자족]입니다. 그 어떤 형편에서든지 우리도 바울처럼 자족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으면 합니다. 특별히 지금 배고픔과 염려와 두려움 가운데 있는 필리핀, 미얀마, 인도 한센인 형제자매들에게 이 말씀이 큰 위로와 놀라운 능력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나는 괜찮습니다. 나는 어떤 형편에서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됩니다.우리는 가끔 인사치레로 그런 말을 합니다. 자존심 때문에 어떨 때는 남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말합니다. 바울의 말도 그런 인사치레였을까요?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거치래 인사가 아니라, 그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바울의 고귀한 품격이었습니다. 그는 네로(Nero) 황제의 죄수가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그리스도인의 품위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가 누구의 죄수가 되어도, 그가 설령 순교를 당해도 결코 달라질 수 없는 것이 바울에게 있었습니다. 그것이 자족이었습니다. 그는 그 어떤 형편에서든지 흔들리지 않는 자족의 비결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자족]나는 괜찮아. 나는 정말 괜찮아.”를 되뇌는 자기 최면이 아닙니다. 바울의 자족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4:13)는 큰 믿음에 근거했습니다. 그 믿음 때문에 바울의 자족은 배가 고파도 기뻐하는 자족이 되었고, 감옥에 갇혀도 감사하는 자족이 되었고, 순교를 당해도 찬양할 수 있는 자족이 되었습니다. 배고픔이 그를 비겁하게 만들지 않았고, 배부름이 그를 거만하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자족은 위로 올라가도 달라질 것이 없고, 아래로 내려가도 달라질 것이 없는 자족이었습니다.

 

   자족(Self-Sufficient)은 헬라어로 ατάρκης(아우타르케스)입니다. ατάρκης자기 자신 (ατό: 아우토스)”이란 단어와 풍성한 공급 (ρκέω: 아르케오)”이란 단어가 합해져서 만들어졌습니다. 두 단어를 풀어서 말하면, 자족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풍성함에 연결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가 바로 [아우타르케스] “자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족은 자기가 만든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뇌가 주는 생각을 따라서 가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뇌는 외부의 환경에 대응하는 생리적이며, 수학적인 반응만을 보여줍니다.

 

   바울의 자족에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충만했습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4:13) 바울의 자족에는 하나님의 평강이 가득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4:6-7)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를 강하게 하고, 하나님의 평강이 내 생각을 붙잡아준다면 무엇을 염려하고, 무엇을 두려워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생각지 않았던 생소한 단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집단감염, 음압병실, 마스크. 방역, 자가 격리, 이동 제한, 거리두기, 자택근무, 시설 폐쇄, 휴교, 백신, 치료제, 출입국 제한, 폐업, 해고, 예배 금지] 등등. 우리의 생각을 그런 단어들에게 헌납하면 불안과 두려움만 우리에게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지나가는 바람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지 않아야 합니다. 

 

   그 불편한 단어들을 다 내려놓고, 눈을 조용히 감고, 로마 감옥으로 향해서 가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지하 감옥에 있습니다. 고통스럽게 쪼그리고 앉아 있는 수많은 죄수들이 있는 방들을 지나셨습니까? 한 층 더 내려가십시오. 사도 바울의 방은 맨 끝에 있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이 보이십니까? 그를 만나셨습니까? 가장 깊은 지하 감옥까지 찾아온 당신에게 사도 바울이 웃으면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4:4) 그것은 빌립보 지하 감옥에서 피어난 하늘의 꽃이었습니다. 그것은 지성소에서 드려진 가장 거룩한 향기였습니다. 그것이 사도 바울이 말한 자족이 주는 [초연한 자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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