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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르 청년들 (렘 1:4-10)

양한갑님 | 2020.12.28 01:05 | 조회 29

나아르 청년들


1:4-10


 

 

   오늘은 남왕국 유다의 무거운 역사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읽기에도 힘든 내용이지만 끝까지 집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BC 722년에 앗시리아 제국에게 멸망을 당했습니다. 남왕국 유다는 예루살렘을 간신히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때 동쪽에서 바벨론 제국이 세력을 키우고 있었고, 애굽은 앗시리아 제국과 동맹을 맺고 있었습니다. 그처럼 유다는 북쪽(지금의 터키)으로는 앗수르 제국, 동쪽(지금의 이라크)으로는 바벨론 제국, 남쪽으로는 애굽 제국이란 거대한 공룡들이 버티고 있는 틈새에 초라하게 끼어있었습니다.

 

   그 시기에 14대 왕 므낫세가 유다를 통치하고 있었는데 남왕국 왕들 중에서 가장 사악한 왕이었습니다. 므낫세 이후에는 15대 아몬(2), 16대 요시야(31), 17대 여호아하스(3개월), 18대 여호야김(11), 19대 여호야긴(3개월), 20대 시드기야(11)로 왕위가 계승되었습니다. 남왕국의 역사는 시드기야에서 끝났습니다. 그때 바벨론 제국에게 멸망을 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고통스런 역사의 현장에서 날마다 눈물로 살았던 한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예레미야였습니다. 예레미야 입장에서 남왕국 역사를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레미야는 16대 요시야가 왕이 된지 13년째 되는 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1:2) 요시야 왕은 8세 때 왕이 되었고, 재위 8(16)에 모든 우상을 제거했고, 재위 18(26)에는 성전 수리를 명령했습니다. 성전 수리 중에 모세가 쓴 율법책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것을 계기로 요시야 왕은 모든 우상숭배를 금지시켰고, 유월절을 회복시켰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바벨론 제국이 앗시리아 제국을 공격했습니다. (BC 609) 앗시리아는 동맹국 애굽에게 병력 지원을 요청했고, 애굽 왕 느고는 앗시리아를 돕기 위해서 군대를 이끌고 출정했습니다. 그런데 애굽이 앗시리아로 가려면 지리적으로 중간에 있는 유다를 먼저 짓밟고 지나가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애굽과 유다가 므깃도에서 전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투에서 요시야 왕이 적의 화살을 맞고 전사하게 되었습니다. 요시야 왕의 죽음은 예레미야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 되었습니다.

 

   요시야를 죽인 애굽 왕 느고는 앗시리아를 돕기 위해서 하란까지 북진했지만 거기에서 바벨론 제국에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느고는 애굽으로 퇴각하면서 유다 사람들이 세운 여호아하스 왕을 잡아 애굽으로 데리고 가서 죽였습니다. 그래서 여호아하스의 재위는 3개월 밖에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느고는 요시야의 맏아들 여호야김을 유대 왕으로 임명하고 섭정을 시작했습니다. 모세의 출애굽 이후에 처음으로 이스라엘이 애굽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4년 후(BC605)에 애굽과 바벨론이 앗시리아 지경 갈그미스(Carchemish)에서 전투를 하게 되었는데, 애굽이 다시 참패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유다 여호야김 왕은 재빠르게 애굽과 단절을 하고 바벨론 제국에게 붙었습니다. 그는 느부갓네살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유대의 통치권을 바벨론 제국에게 넘겼습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 왕은 무혈전쟁으로 유다를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바벨론 제1차 침공이라고 합니다. 그때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에서 왕족과 귀족들을 포로로 잡아서 바벨론으로 데리고 갔는데, 그 포로들 중에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그 모든 것을 예루살렘에서 보고 있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많이 울었을까요?

 

   그 이후에 느부갓네살 왕은 유다를 두 차례 더 공격했습니다. 2차는 BC 598년에 일어났는데, 그때 19대 여호야긴 왕을  바벨론으로 데리고 가서 죽였습니다. 에스겔도 그때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3차는 BC 586년에 일어났는데, 느부갓네살은 솔로몬 성전을 잔인하게 파괴했고, 성전의 성물들을 바벨론으로 가지고 갔고, 시드기야 왕을 잡아 그의 두 눈을 뽑고, 쇠사슬로 결박해서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남왕국의 역사는 거기까지였습니다. 초대 왕 르호보암으로부터 시작해서 20대 시드기야 왕까지 345년의 남왕국의 역사는 그렇게 비극적으로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예레미야는 그처럼 마지막 다섯 왕(요시야,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들이 유다를 통치했을 때 선지자로 활동했습니다. 하나님은 멸망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유다의 죄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예루살렘 백성이 항상 나를 떠나 물러감은 어찌함이냐? 그들이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도다.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산비둘기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들이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8:5,7) 그러나 유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선민백성인 자신들을 하나님께서 버리실 리가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임할 것을 예언했습니다. 솔로몬 성전은 파괴되고,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고, 70년 동안 그들의 포로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러자 유다 사람들은 늑대처럼 예레미야에게 달려들었습니다. 그들은 예레미야를 거짓 예언으로 민심을 요란케 하는 자라고 그를 고소했습니다. (20:10) 그들은 예레미야 목에 을 채워서 옥에 가뒀고, (20:2) 예레미야를 줄에 달아 깊은 구덩이 속에 내려서 가두기를 여러 차례 했습니다. (18:20; 37:16; 38:6)

 

   예레미야도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이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하지 않겠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결심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강권하심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불타는 열정이 그의 가슴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20:7-9절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 거리가 됨이니이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그 성령의 뜨거운 불이 우리 가슴에도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예레미야를 [눈물의 선지자]라고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예레미야를 [울보]로 만들었던 네 가지 일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첫째는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로서 제사장 반열에 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성전 파괴는 그의 가슴을 더욱 고통스럽게 찢어 놓았습니다. 둘째는 요시야 왕의 죽음이었습니다. 우상들을 제거하고 유다를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웠던 왕이 젊은 나이로 전사했던 일은 예레미야에게는 너무도 충격적인 슬픔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요시야를 위한 슬픔의 애가를 지었습니다. 대하 35:25 “예레미야는 그를 위하여 애가를 지었으며 모든 노래하는 남자들과 여자들은 요시야를 슬피 노래하니 이스라엘에 규례가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며 그 가사는 애가 중에 기록되었더라.셋째는 유다의 멸망이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이미 멸망을 당했고, 남왕국 유다마저 바벨론 제국에게 패망을 당하고 70년 동안 노예로 살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현실이 되었을 때 그의 슬픔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유다의 멸망을 보고 통곡했던 예레미야는 그의 심정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끊어지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딸 내 백성이 패망하여 이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걸거리에 기절함이로다.” (2:11) 넷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유다 백성의 강퍅함을 보고 예레미야는 날마다 울었습니다.

 

   선지자에게는 울어야만 했던 이유가 분명히 있었고, 유다는 멸망을 받을만한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다 사람들은 자신들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지나친 선민주의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메시지를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그들은 짓밟혔고, 성전은 파괴되었고, 나라는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여기에서 남왕국의 비극적인 역사 이야기는 접고, 오늘 본문에 기록된 말씀을 주목해 보려고 합니다. 하나님과 예레미야 사이에 있었던 대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1:6-7) 이 대화중에서 우리의 눈길을 붙잡는 단어가 있습니다. [아이]라는 단어입니다. 예레미야가 말했습니다. “저는 아이입니다.하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라.그 무서운 격동의 역사를 보면서 예레미야는 사람들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믿음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그 [아이]라는 단어에 조금 더 집중해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했던 아이는 갓난아기가 아니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갓난아기는 옐레드(:יֶ֣לֶד)’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했던 사 9:6절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는 한 아기(יֶ֣לֶד)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라고 했는데, 거기에서 말씀하신 [아기]는 정말 갓난 아기를 가리키는 옐레드(:יֶ֣לֶד)’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아이]나아르(:נַ֣עַר)’였습니다. ‘나아르는 결혼하지 않은 10대 혹은 20[청년]을 가리키는 단어였습니다.

 

   그처럼 남왕국 유다가 총체적인 위기에 빠져있을 때,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그 큰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 젊은 청년들을 미리 확보해 놓고 계셨던 것입니다. 청년 예레미야뿐만이 아니라, 모세의 율법책을 손에 들고 종교개혁을 주도했던 요시야 왕도 26살 나아르청년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 제국을 통해서도 하실 일이 있었기 때문에 바벨론 제1차 공격 때 미리 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바벨론으로 보냈는데, 그들의 나이가 모두 나아르청년 때였습니다. 2차 침공 때 바벨론으로 보냈던 에스겔도 나아르청년이었고, 페르시아 제국 하에서 유다 민족을 구했던 에스더 왕비도 나아르청년이었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영적 부흥을 주도했던 에스라도 '나아르' 청년이었습니다. 그들뿐입니까? 어린 사무엘도, 골리앗 앞에 섰던 소년 다윗도 모두 나아르청년들이었습니다. 나아르청년들은 생각과 행동이 하나였습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일이라면,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면 그들은 생각을 복잡하게 하지 않고 그들의 목숨을 주저함 없이 그냥 던졌던 청년들이었습니다. 예레미야를 보십시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결혼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16:2) 그래서 그는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전하다가 뺨을 맞으라고 하면 맞았고, 구덩이 속으로 던져지면 던져졌고, 조롱을 받으라면 조롱을 받았고, 고소를 당하면 고소를 당했고, 돌에 맞아 죽으라면 기꺼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애굽으로 끌려가 거기에서 유대인들이 던진 돌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하나님의 나아르청년들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예레미야와 요시야가 있을 때 남왕국은 사방으로 우겨 쌓임을 당한 상태였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유다를 죽이려는 적()들 뿐이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목을 조이고 있는 2020년과 같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사방이 막혀있습니다. 성탄절 예배를 교회에서 드릴 수 없었던 것은 우리 생애에 처음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2021년도 지금처럼 계속 된다면 우리는 절망해야 합니까? 예레미야서에는 절망적인 메시지만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에게 재앙의 메시지만 주신 것이 아니라,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희망의 메시지도 주셨습니다. 29:11-13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33:3-8절 말씀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 그렇습니다. 탈출구가 없이 우겨 쌓임을 당할 때, 더 깊은 혼돈에 빠지지 말고, 더 가까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무너트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다시 세우기 위해서 허무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철저히 부서지고, 철저히 무너지고,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무너진 예배와 붕괴된 교회의 위상이 다시 세움을 받고, 무시되었던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주권적 통치가 다시 높임을 받게 되실 것입니다. 그 위대한 일을 위해서 요시야와 같은, 예레미야와 같은, 다니엘과 같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같은, 에스겔과 같은, 에스더와 같은, 에스라와 같은 젊은 나아르청년들이 이 시대에서도 일어나야 합니다.우리 자녀들 가운데서도, 우리 교회 청년들 가운데서도, 선교지 교회들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10, 20나아드청년들이 많아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정부의 강화된 방역 조치로 교회는 문을 닫았고, 가게들도 문을 닫았고, 거리는 황폐하게 되어 사람의 그림자도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다시 성전에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며, 마음껏 찬양하며, 자유로이 온 거리를 활보하며 여호와는 선하시고 인자하시다는 복음을 외칠 수 있는 그런 유쾌한 날을 하나님께서 속히 허락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 날을 바라보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예레미야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자 합니다.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회복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2021년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와 모든 교회들 위에 임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읽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가리켜 말하기를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다 하던 여기 곧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주민도 없고, 짐승도 없던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와 및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는 소리와

여호와의 성전에 감사제를 드리는 자들의 소리가 다시 들리리니

이는 내가 이 땅의 포로를 돌려보내어 지난 날처럼 되게 할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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