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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 서라. (삼상 17:39-51)

양한갑님 | 2021.01.30 10:55 | 조회 31

하나님 앞에 서라.


삼상 17:39-51


 

 


   사울은 베냐민 족속 출신으로 약 BC1012경에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었습니다. 사울이 왕이 된 이후에 첫 번째로 치른 전투는 길르앗(Gilead) 전투였습니다. 길르앗은 요단강 동편에 있는 지금의 요르단 지역이었는데, 그 땅에 야베스 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길르앗 남쪽에 거주했던 암몬 왕 나하스가 야베스 족을 공격했습니다. 야베스 사람들은 나하스 왕에게 화친을 맺자고 제안했지만, 나하스는 모든 야베스 사람들의 오른쪽 눈을 뺀 이후에야 화친을 맺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야베스 족은 사울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사울이 그 전갈을 받고 소 두 마리를 잡아 토막을 내서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보내면서 그를 따르지 않으면 그 족속의 소들이 그처럼 토막 나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지파가 참여하게 되어 연합군이 결성되었는데, 그 수가 33만 명이었습니다. (삼상 11:8) 사울은 그 연합군을 거느리고 길르앗으로 가서 암몬 군대를 무찌르고 야베스 족을 구해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지파들은 강력한 리더십으로 승전으로 이끈 사울을 보고 그를 이스라엘 왕으로 공인하고 그에게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사울이 치른 두 번째 전투는 블레셋과의 미그론(Migron) 전투였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블레셋을 격퇴할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금식하며 싸웠던 그 전투에서도 사울은 승리했습니다. 그 이후에 사울은 모압, 암몬, 에돔, 소바, 아말렉을 차례로 물리쳤습니다. (삼상 14:47) 그런데 아말렉 전투 중에 사울은 하나님께 불순종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아말렉을 칠 때 모든 사람과 모든 가축을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아각 왕을 살려주었고, 가장 살진 짐승들을 뒤로 챙겨놓았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셨습니다. (삼상 15:11) 그 불순종으로 인해 사울이 더 이상 왕이 될 수 없다는 폐위(廢位) 예언이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서 주어졌습니다.

 

   그런 상황을 가지고 오늘 본문을 보겠습니다. 세월이 흘러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다시 공격해 왔습니다. 그때 블레셋의 적장은 골리앗이었습니다. 골리앗 앞에서 사울 왕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두 진영이 가지고 있었던 전쟁 무기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블레셋 군인은 철제 무기를 가지고 있었고, 이스라엘 군인은 나무 몽둥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에는 철이 없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철제 삽, 괭이, 도끼가 필요하게 되면 블레셋으로 가서 그 철제 연장들을 빌려다 썼습니다. 이스라엘 진영에서 철로 된 칼과 창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은 사울 왕과 요나단 왕자뿐이었습니다. 삼상 13:19-22절입니다. “그때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었으니,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각기 보습(쟁기)이나 삽이나 도끼나 괭이를 벼리려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내려갔었는데...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오직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었더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투는 구석기 시대와 철기시대가 맞붙은 싸움과 같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윗이 돌멩이를 들고 골리앗 앞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칼과 돌멩이가 부딪히면 무엇이 이기겠습니까? 전장(戰場)에서 잔뼈가 굵은 장수와 어린 목동이 맞붙으면 누가 이기겠습니까? 어린 꼬맹이도 그 답을 알 것입니다. 그래서 골리앗은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 짐승들에게 주리라.라고 했습니다. (삼상 17:43-44) 골리앗은 그 어떤 싸움에서도 이길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빈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골리앗에게는 최대의 약점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약점이 그의 이마였습니까? 아닙니다. 골리앗의 최대 약점은 그에게는 하나님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전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지만, 그는 적장 앞에 담대히 섰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이 다윗이 가진 최고의 장점이었고, 최대의 무기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골리앗을 향해서 외쳤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내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삼상 17:45) 그러므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장수와 목동의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거인과 꼬마의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칼과 돌멩이의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있는 자와 하나님이 없는 자의 싸움]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잠시 네팔(Nepal) 선교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네팔의 인구는 약 3,000만 명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섬기는 신()은 약 3억 개가 넘을 만큼 힌두교 종주국입니다. 800만 개 신()이 있다는 일본도 네팔 앞에서는 명함을 내밀지 못합니다. 네팔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인구의 86%가 힌두교 신자인 네팔은 기독교 선교를 본격적으로 탄압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네팔은 합법적으로 기독교를 박해하기 위해서 20188월부터 [강제개종금지 법과 신성모독죄 법: Anti-conversion and Blasphemy law]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네팔 형사법 제9장 제158조에 있는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개종을 강요할 경우 징역 5, 벌금 미화 5만 불. 힌두교 신자의 종교적 정서를 해치는 행위는 징역 2. 위반자가 외국인일 경우에는 만기 복역과 벌금을 납부한 뒤 7일 이내에 추방.

 

   숨이 막힙니다. 골리앗이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 있을 때 사울에게 똑같은 숨 막힘이 있었을 것입니다. 길르앗 전투, 미그론 전투, 그 외에 수많은 전투에서 승전했던 사울이었지만, 골리앗 앞에서는 숨도 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골리앗의 화려한 전투 전적(戰績) 때문이었습니까? 아니었습니다. 싸움에서는 골리앗이 자신보다 확실하게 위에 있다고 사울 스스로가 인정했기 때문이었습니까? 아니었습니다. 교만과 불순종으로 인해 성령이 사울에게서 떠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소를 토막 냈던 패기도 그에게는 더 이상 없었습니다. 전투를 앞둔 병사들에게 금식을 선포했던 영적 리더십도 그에게는 더 이상 없었습니다. 사울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 떠는 것 뿐이었습니다. 성령이 떠난 자의 모습은 그처럼 초라했었습니다. 그런 위기 상황에서 성령으로 충만했던 한 사람이 골리앗 앞으로 튀어 나갔던 것입니다. 그가 바로 소년 다윗이었습니다. 골리앗의 눈에는 돌멩이를 들고나온 한 소년의 장난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골리앗의 목은 그 소년의 손에 의해 떨어졌습니다. 네팔 정부는 그 골리앗처럼 쓰러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상대로 싸움을 걸어왔기 때문입니다. 네팔의 기독교인 인구는 3%(10만 명)입니다. 수도 카트만두(Kathmandu)에는 현재 30개의 신학교가 있고, 500여 명의 한인 선교사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86% 힌두교 신자와 하나님이 있는 3% 크리스천의 싸움이 시작된 것입니다. 다윗의 하나님께서 네팔 성도들에게도 위대한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 자녀들을 생각했습니다. 20년 후, 2040년은 지금보다 훨씬 더 악해질 것입니다. 기독교를 박해하는 2의 네팔 국가들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갈수록 더 좋아지는 세상이 아니라,갈수록 더 악해지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때 믿는 자, 기도하는 자, 예배하는 자, 예수의 증인이 되는 자 찾기가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그 20년 후 혹은 40년 후에 있을 세상에서 다윗처럼 담대히 설 수 있는 그리스도의 강인한 군사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 부모들의 역할이 너무도 중요합니다.

 

   부모의 영성이 성령 충만함으로 깨어있지 못한다면, 사울처럼 큰 실수를 하게 될 것입니다. 삼상 17:38-40절입니다. “이에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 투구를 그의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하지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말하되 익숙하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라고 했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 진영에서 자기만 가지고 있던 철제 무기를 다윗에게 주었습니다. 자신의 갑옷도 입혔습니다. 사울이 찾은 대안은 다윗을 훌륭한 군인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사울의 생각은 골리앗과 싸우려면 몽둥이가 아니라 철제 무기를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성령이 떠난 사람, 성령이 없는 사람의 생각은 거기까지였습니다. 그것이 끝이었고,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다윗에게 준 것은 좋은 무기가 아니라 무거운 짐일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가끔 자녀들에게 사울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는 합니다. 무서운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이런 것들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자녀들이 그 모든 것들을 어렸을 때부터 갖추도록 강요합니다. 그런데 그 부모의 계획과 강요가 자녀에게는 훌륭한 선물이 아니라 무거운 갑옷이 될 수 있습니다. 다윗은 그 무거운 갑옷을 입고는 걷지 못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강력한 믿음이었습니다.

 

   20년 후 혹은 40년 후에 있을 미래 시대에서 우리의 자녀들이 다윗과 같은, 다니엘과 같은, 에스더와 같은, 느헤미야와 같은 그리스도의 군사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때를 위해서 지금부터 자녀들을 말씀과 기도와 예배로 철저히 무장시켜야 합니다. 그들이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박사 가운보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무장하는 것을 더 귀하게 여기는 자녀들이 되도록 경건의 훈련을 미룰 수가 없습니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 서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소년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쓰러트린 승리의 요인이었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 앞에 성공자가 되기 위해서 사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 승리자로 서기 위해서 열심히 사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아야겠습니다. 다윗처럼 말입니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에베소서 6: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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