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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격려합시다. (딤후 1:16-18)

양한갑님 | 2021.02.10 00:38 | 조회 20

서로를 격려합시다.


딤후 1:16-18


 

 

테리 폭스 (Terry Fox)

   캐나다에서 살 때, 수도 오타와(Ottawa)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국회의사당 건너편에 의족을 하고 달리는 한 청년의 동상이 있었습니다. 테리 폭스(Terry Fox: 1958-1981)의 동상이었습니다. 그는 운동을 좋아했던 학생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육상을 했고, 대학교 때는 농구를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오른쪽 무릎에 견딜 수 없는 통증이 와서 검진을 받았는데 골수암이었습니다. 정확한 병명은 전이성 골육종이었습니다. 16개월 동안 항암 치료를 받았지만, 오른쪽 다리를 잃고 말았습니다. 체육 교사가 되고 싶었던 그의 꿈도 산산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다른 암 환자들이 겪는 고통을 지켜보면서 그들을 위해서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퇴원 후, 테리는 마라톤으로 캐나다 대륙을 횡단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의 계획에 찬성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총 길이가 7,821km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차로 달려도 1주일이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그 먼 거리를 의족을 하고 뛴다는 것은 자살 행위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테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980412, 캐나다 동부의 끝 뉴퍼랜드(New Foundland) 세인트 존스(St. John’s)에서 출발해서 서부의 끝 벤쿠버(Vancouver)까지 코스를 정하고 뛰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하루 평균 42km를 달렸습니다. 매스컴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테리는 암 퇴치를 위한 암 연구소 건립을 위해 1불씩만 기부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당시 캐나다 인구는 2,400만 명이었기에, 그의 목표액은 2,400만 달러였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도 그의 달리기를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며칠 뛰다가 중단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달리기는 멈추지 않았고, 점점 그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한 기업이 자기 회사의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달려준다면 거액을 기부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테리는 암 환자들 외에 그 어떤 누구를 위해서는 달리지 않겠다고 거절했습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달린 그의 마라톤은 100일을 넘기고 있었습니다. 의족에 쓸려 살갗이 벗겨지고, 왼쪽 발바닥은 물집이 터지면서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테리는 다음 날 일어나 다시 달렸습니다.

 

   그런데 캐나다 중부 지방에 있는 선더베이(Thunder Bay)에서 테리는 멈추고 말았습니다. 143일째 되는 날이었고, 세인트존스로부터 5,373km가 되는 지점이었습니다. 쓰러진 테리를 병원으로 급히 옮겨 그의 상태를 검진했습니다. 그의 상태는 이미 암이 폐로 전이된 상태였습니다. 143일 동안 5,373km를 뛰면서 폐로 전달되었던 그 고통을 테리가 몰랐을까요? 결국 테리는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는 22살이었습니다. 그는 밴쿠버까지 완주하지 못했지만, 그의 레이스는 희망 마라톤 (Marathon of Hope)”란 이름으로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그의 이름으로 모금된 액수는 6,000억 원이 넘었고, 모인 기금으로 1,212개 암 연구 센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테리는 유명인이 되기 위해서 뛰지 않았습니다. 그는 골수암 환자로 의족을 차고 출발했지만, 5,373km는 폐암 환자로 뛰었습니다. 그것을 안 사람은 테리 자신 외에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하루라도 더 살기 위해서 병원으로 달려갔어야만 했던 상태였지만, 테리는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생명을 다른 암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서 다음 날도 운동화 끈을 매고 의족을 채우고 다시 일어나 뛰었던 것입니다. 그의 동상 앞에서 자문했었습니다. “나는 지금 누구를 위해서 뛰고 있는가?”

 

사도 바울 (Apostle Paul)

   또 한 사람의 훌륭한 달리기 선수를 소개합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가기 직전에 밀레도(Miletus)에서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만났습니다. 그때 에베소 장로들은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죽게 됩니다.”라고 말하면서 바울을 말렸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을 알고 있지만, 그 길을 피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예상대로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로마로 압송되었습니다. 바울은 그의 결정을 디모데후서 4:7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그처럼 바울은 순교가 눈앞에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 길을 포기하지 않고 그에게 주어졌던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완주했던 훌륭한 달리기 선수였습니다.

 

오네시보로 (Onesiphorus)

   마지막 달리기 선수를 소개합니다. 오네시보로(Onesiphorus)입니다. 로마 감옥에서 만나 믿음의 아들이 되었던 노예 출신 오네시모(Onesimus)와는 다른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여러 교회들 가운데 에베소교회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에베소는 두란노서원이 있던 곳입니다. 바울은 그곳에서 3년 동안 머물며 눈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20:31 “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그래서 바울은 그 에베소교회를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맡겼습니다. 나이가 어렸던 디모데가 에베소교회를 잘 이끌 수 있도록 목회 서신을 보냈는데, 그것이 디모데전서와 디모데후서입니다. 특별히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이 순교하기 바로 직전에 남긴 유서와 같은 마지막 서신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마지막이 있습니다. 그 마지막을 정리할 때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에게 매우 중요한 사람일 것입니다. 순교를 눈앞에 두고 쓴 바울의 마지막 서신에 등장했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네시보로입니다. 그에 대한 바울의 표현을 읽으면 우리의 가슴을 한참 동안 멍하게 만듭니다. 딤후 1:16-18절입니다. “원하건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음이라. 또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에서 로마까지의 거리는 아시아에서 유럽까지 가는 먼 길이었습니다. 그 먼 길을 오네시보로가 부지런히찾아왔다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부지런히는 헬라어로 스포다이오스(σπουδαίως)’라고 했는데 기쁨으로라는 뜻이 있었습니다. 에베소에서 로마까지는 약 2,800km가 됩니다. 그 먼 길을 걸어서 갔기에 로마에 도착했을 때 오네시보로의 육체는 초죽음이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피곤함보다는 기쁨이 넘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울에게는 너무도 큰 격려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길이 얼마나 험한 길임을 너무도 잘 아는 바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특별히 바울은 자신이 사슬에 매인 죄인이 되었지만, 오네시보로는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것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로마까지 찾아와 자신을 격려해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를 기도로 축복해주며, 디모데에게는 오네시보로에게 가서 감사했었다는 인사를 꼭 전해달라고 마지막 서신에서 부탁하고 순교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묵상하고자 하는 주제는 격려입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한국교회의 위상이 많이 추락했습니다. 크리스천들까지 부끄럽다고 말합니다. 무엇이 부끄럽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부끄럽다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감춘다면 그것이 진짜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요? 저 교회는 왜 그래? 저 목사는 왜 그래? 저 교인들은 왜 그래?”라고 손가락질을 하는 대신에, 우리 모두가 다시 일어나도록 따뜻한 격려를 보내야 합니다. 테리 폭스는 골수암 환자가 아니라 폐암 환자로 뛰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쓰러진 뒤에야 그것을 알았습니다. 22살 된 청년은 그렇게 수많은 암 환자들에게 큰 격려와 감동과 도전을 주고 떠났습니다. 오네시보로 역시 수천 킬로를 기쁨으로 달려가 사도 바울을 격려했습니다. 순교를 앞둔 사도 바울로서는 잊을 수 없고, 갚을 수 없는 격려가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 누군가를 위해서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격려가 아닐까요?

 

   우리는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테리 폭스가 찢어진 살갗을 붕대로 감고 그 위에 다시 의족을 채우고 일어나 뛰었듯이, 지금 의족을 채울 정도로 교회의 위상이 찢어졌지만, 우리도 그 상처를 보듬고 다시 일어나 뛰어가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시험에 빠져 허접스럽게 교회를 헐뜯고, 목회자에게 책임을 돌리고, 열정의 성도들을 정신 빠진 사람들로 몰아세우며 우리끼리 찢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성도들의 사업도 의족을 한 상태가 되었고, 2차 폐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사업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테리의 격려가, 오네시보로의 격려가 필요합니다. “힘내세요! 힘내세요! 여러분!” 이 고통스런 코로나 시대에서 우리끼리 생트집을 잡아서 내던져 버리는 일보다, 우리가 챙겨줘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모두를 보듬고 격려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교회는 이 고통과 어려움을 반드시 이기고 다시 힘차게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10: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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