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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와 강가에서 (스 8:15-23)

양한갑님 | 2021.02.18 10:21 | 조회 11

아하와 강가에서


에스라 8:15-23


 

 


   에스라 8장에는 예루살렘으로 두 번째 귀환하는 족장들의 이름과 인원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754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레위 자손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8:15) 제사장이었던 에스라에게는 너무도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에스라에게 주어진 임무는 국가를 재건하는 일이 아니라 무너진 성전 예배를 복원시키는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각 족장들을 불러서 레위인을 찾으라고 했고, 38명의 레위인이 모집되었습니다. (8:18-19)

 

   아닥사스다 왕은 에스라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허락해 주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예배를 위해서 필요한 금은과 기타 필요한 물품들을 에스라가 원하는 만큼 다 가지고 가도록 허락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모든 물품들이 차질없이 준비되었습니다. 에스라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1,754명을 아하와(Ahava) 강가에 집결토록 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금식 기도를 선포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 앞에 자신들을 겸손히 낮추기 위함이었고, 둘째는 예루살렘까지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는 에스라가 금식기도를 선포하게 된 진짜 배경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주목해 보겠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에게 받은 물품 대장을 마지막으로 하나하나 점검했을 때, 에스라는 한 가지가 빠져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병사(兵士)였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할 때까지 1,754명과 많은 보물들을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경호부대가 없었던 것입니다. 바벨론을 출발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왕에게 그 병력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었습니다. 에스라에게 그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왕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에스라는 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왕에게 그 부탁을 한다는 자체를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부탁이 왜 부끄러운 일이 되었을까요? 에스라가 전에 왕에게 했던 말 때문이었습니다. 전에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은 자기를 신뢰하는 자를 항상 지켜주시며 축복해 주신다고 말한 바가 있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도 사자 굴에서 다니엘을 살려내셨던 하나님에 대해서, 극렬히 타는 풀무 불 속에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살려내셨던 하나님에 대해서 들은 바가 있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이 예배에 필요한 물품을 무제한 지원해줬던 것도 왕이 그 하나님을 살아계신 분으로 인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에스라가 신변 안전을 이유로 제국의 병사를 요청한다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재를 지워버리고, 그 분의 능력을 과소평가 해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즉 왕의 병사를 믿고 간다는 것은 하나님을 그 병사들 뒤로 보내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일에 대해서 에스라가 했던 말을 직접 읽어보겠습니다. 8:22절입니다.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아뢰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

 

   그래서 에스라는 제국의 병사 대신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위해서 금식기도를 택했던 것입니다. 한 그룹의 리더에게는 영광이 주어지지만, 그 리더에게는 그 만큼의 책임도 함께 주어집니다. 강한 군대를 보유한다는 것은 리더의 강한 리더십을 상징했습니다. 그런데 리더 에스라는 제국의 병사 대신에 기도를 붙잡았던 것입니다. 경호부대 없이 1,754명과 엄청난 보물을 지니고 페르시아에서 예루살렘까지 수천 킬로(Km)의 거리를 걸어서 간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길에서 떼강도를 만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고, 가진 보물도 다 빼앗길 수도 있었습니다. 아마 경험이 많았던 족장들은 에스라에게 가서 왜 왕에게 보병과 마병 지원을 요청하지 않느냐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에스라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754명을 아하와 강가에 집결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게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간절한 기도를 응답해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23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결국 기도를 붙잡고 출발했던 에스라와 1,754명은 예루살렘에 무사히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기도를 붙잡았던 에스라의 믿음도 위대했지만, 왕에게 군사를 지원해 달라는 요청을 부끄러운 일로 여겼던 에스라의 지조(志操)가 저에게는 더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에스라가 지키고자 했던 지조는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던 지조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시다는 사실을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지조였습니다. 일찍이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목숨을 내놓고 지켰던 그 지조였습니다. 추우면 처마 밑에 긴 고드름이 걸립니다. 그러나 날씨가 풀리면 그 고드름은 맥없이 떨어집니다. 어려움을 만나면 우리의 믿음이 고드름처럼 단단해지지만, 일이 잘 풀리면 믿음 생활도 풀리면서 신실함이 땅바닥으로 떨어지고는 합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에스라처럼 지조가 있어야 합니다. 말 따로, 행동 따로, 여기서는 이렇게, 저기서는 저렇게 카멜레온처럼 색깔을 바꿔가며 산다면 그것이 부끄러운 일입니다. 크리스천은 말한 대로, 고백한 대로, 간증한 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삶이고,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입니다.

 

   한 선수가 결승전에서 졌습니다.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졌기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고 믿음을 등진다면 그것이 부끄러운 일입니다. 부도가 나면서 사업을 접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일 때문에 믿음까지 접는다면 그것이 부끄러운 일입니다. 사람들이 경호부대 없이 어떻게 예루살렘까지 갈 수 있느냐고 불안해 할 때, 에스라는 더 힘든 상황을 선택했습니다. 믿음이 없다면 할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믿는 자는 상황을 보지 않습니다. 그 상황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내 손에 아무것이 없을 때가 하나님을 더 굳세게 붙잡을 수 있는 때입니다. 에스라가 경호부대 지원 요청을 접고, 오직 하나님만 붙잡고 나아갈 때 사람들은 무모한 짓이라고 했지만, 하나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그의 방패가 되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천군천사는 그의 경호부대가 되어 주었습니다. 예루살렘까지 가는 길이 더 안전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였습니다. 끝까지 믿는 자는 끝까지 지조를 지켜야 합니다. 그 대쪽같은 지조가 하나님의 방패가 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오, 너희의 방패시로다.”

시편 1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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