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사소한 것

마 25:35-46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심순덕 -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을 썩여도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엄마. 엄마, 엄마...” 심순덕 시인의 엄마는 분명 입술에 루주를 발라본 적이 없었고, 뾰족구두를 신어 본 적이 없었고, 스테이크를 먹어 본 적이 없었고, 승용차를 타본 적이 없었고, 해외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산골 엄마 때문에 지금 딸 순덕이는 숨을 쉬지 못하고 있습니다. 후회 때문입니다. 딸은 엄마가 종일 밭에서 일했던 일이, 부뚜막에서 혼자 찬밥을 먹었던 일이, 한겨울에 시린 냇물에서 빨래했던 일이 “엄마니까, 엄마니까” 당연히 하는 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왜 인제 와서 딸은 가슴을 치며 울고 있을까요? 자신이 엄마가 되고 보니, 소리 죽여 울던 “엄마의 눈물”이 그냥 눈물이 아니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 순덕과 같았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셨습니다. (눅19:41) 그때 제자들이 함께 통곡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왜 우시는 지 몰랐습니다. 예수님은 이어 ‘평화’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눅19:42) 그때도 제자들은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평화가 없는 일이 하루 이틀 일인가, 예루살렘은 늘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만 유별났던 것입니까?

    한 가지 더 기억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가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막14:34) 잠시 후 예수님이 돌아와서 보니 제자들이 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막14:37) 예수님께서 다시 올라가 기도하시고 돌아왔을 때 제자들은 더 깊은 잠에 빠져있었습니다. 세 번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직도 자고 있느냐? 그만 되었다. 일어나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막14:41-42) 심각한 상황이라고 세 번씩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제자들이 코를 골며 잘 수 있었을까요? 딸 순덕이가 “엄마는 늘 그랬어”라고 했던 것처럼, 제자들은 “오늘도 주님은 어제처럼 기도가 필요하신가 보구나.”라고 생각하고 기도하는 일을 사소한 일로 취급해 버렸던 것입니다. [사도하다.] 그 ‘사소한’의 뜻은 ‘대수롭지 않은’ ‘무시해도 되는’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셨던 일이 대수롭지 않은 ‘사소한’ 일이었습니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하셨던 일이 무시해도 되는 ‘사소한’ 일이었습니까?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사순절이 사순절이지 뭐 특별하다고 호들갑을 떨까?” 그들에게 사순절은 중요하지도 않고, 무시해도 되는 날들일뿐입니다. 딸 순덕이가 일찍 깨달았다면 엄마가 혼자 울지 않도록 엄마의 마음을 세심히 살폈을 것입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눈물과 고난을 기억하며 예수님을 세심히 살펴드리는 날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님을 살펴드릴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이 그 답을 주고 있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 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을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 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미25:35-40)

    답은 ‘사소한’ 것에 있었습니다. 배고픈 이에게 빵 한 조각을 주고, 목마른 이에게 물 한 잔을 주고, 헐벗은 이에게 옷 한 벌을 주고, 병든 이를 돌봐주고, 옥에 갇힌 자를 위로하는 일이 주님을 섬기는 일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세 가지 비유가 있습니다. 열 처녀의 비유(1-13), 달란트 비유(14-30), 양과 염소의 비유(31-46)입니다. 오늘 본문은 양과 염소의 비유 속에 삽입된 예화였습니다. 즉 사소한 것을 나누면 양(의인)이 되고, 사소한 것을 나누지 않으면 염소(악인)가 된다는 경고를 주시면서 “염소는 영벌에, 양은 영생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마25:46) 물 한 잔을 대접했느냐? 안 했느냐? 그 사소한 것의 끝은 그렇게 엄청났습니다. 특별히 이 말씀은 예수님이 체포되시기 바로 전(마26장)에 주신 마지막 종말과 심판에 관한 비유였기에 더욱 그 의미가 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나누십시오. 베푸십시오. 큰 돈을 교회에 헌금하고, 어마어마한 거액을 사회에 기부하려고 돈을 모으지 마십시오. 지금 주머니에 몇 개의 동전이 있다면 필요한 이에게 주십시오. 그 사소한 일을 주님이 기억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소한 일에 신실해야 합니다. 사소한 일에 성실해야 합니다. 지극히 사소한 것에 가장 고귀한 가치를 부여해야 합니다. 그 사소한 것을 받으시는 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거리에서, 병실에서, 감옥에서, 땅끝에서 우리는 예수님과 마주치게 될 것입니다.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 25: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