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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HANSEN MISSIONS

생명의 샘

존재를 바꿔주시는 예수님 (막 7:24-30)

날 짜 : 2024.05.15
  • 양한갑
  • 24.05.15
  • 91

존재를 바꿔주시는 예수님

7:24-30



 

     마태복음 15장과 마가복음 7장에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복음서를 통합해서 보면, 그 여인은 두로(Tyre) 지방에 사는 수로보니게(Syrian Phoenicia)족속에 속한 여인이었습니다. 두로는 갈멜산에서 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해안 도시로 이스라엘 땅이 아니었고, 수로보니게 족속은 지금의 시리아인으로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은 그녀가 헬라인이었다고 명확히 밝혀주고 있습니다. (7:26) 그 여인에게는 귀신 들린 어린 딸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두로에 오셨다는 말을 들은 그 여인은 곧바로 달려가서 예수님께 딸을 살려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녀를 외면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저 시끄러운 여자를 내쫓아 버리소서.”라고 했습니다. (15:23) 예수님께서도 그 여인이 있는 쪽으로 몸을 돌리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15:24) 제자들은 얼쑤~~~ 옳소! 맞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다시 간청했습니다. “주여, 도와주소서.” 예수님은 더 차갑게 말씀하셨습니다. 자녀의 떡을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15:26)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7:27) 제자들이 다시 맞장을 쳤습니다. “옳소!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습니다. 옳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개 같은 여자입니다. 그러나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했습니다. (15:27) 그때 예수님께서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7:29)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말을 하였으니 그 말씀이 이 이야기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예수님께서 높은 벽을 허물고 국경을 넘어 이방인의 땅, 두로까지 제자들을 데리고 올라가신 이유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즉 주님은 [그 말]을 듣기 위해서 그곳까지 가셨던 것입니다. 아니 제자들이 [그 말]을 반드시 들어야만 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에 대해서 뒤틀린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생각이 짧았던 제자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이방인은 []였습니다. 반대로 유대인은 []으로 표현되었습니다. (15:24) 양과 개는 유전적으로, 근본적으로, 본질적으로 달랐습니다. 양이 개가 될 수 없고, 개가 양이 될 수 없었습니다. 즉 유대인은 선민 백성이었고, 이방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제외된 저주받은 자들이었습니다. 그것이 유대인들과 제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고착된 유대적 사고였습니다. 그런데 수로보니게 여인의 한 마디가 그 고착된 사고의 기둥을 산산히 깨트려 버렸던 것입니다. 그 전통적 유대 사고가 얼마나 잘못 된 것임을 알게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친히 국경을 넘어 이방인의 땅 두로까지 제자들을 데리고 들어가셨던 것입니다.

 

    말이 참 중요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생각이 참 중요합니다. 더 깊이 말하면 믿음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믿음에서 나오는 말은 산을 움직입니다. 기적을 일으킵니다. 성경에는 말을 잘 해서 기적을 얻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룻이 나오미에게 말했습니다.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이다.”라고 했습니다. (1:16) 그 말때문에 그녀는 다윗의 조모가 되었습니다. 한 한센병 환자가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주여, 주께서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8:2) 그 말때문에 그는 나음을 입었습니다. 귀신 들린 아들을 가진 한 아비가 예수님께서 말했습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9:24) 그 말때문에 그의 아들에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말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3:2절은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주여, 저 시끄러운 여자를 치워버리세요.”라고 했던 제자들의 말과 옳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했던 수로보니게 여인의 말은 하늘과 땅처럼 달랐습니다. 예수님이 두로에서 듣고자 하셨던 말은 제자들의 말이 아니라 수로보니게 여인의 말이었습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이방인이었습니다. 유대인에게 이방인은 다른 사람이란 뜻이었습니다. 다른 인종, 다른 종교, 다른 땅에 사는 사람을 지칭했습니다. 접촉할 수 없는 사람, 상종할 수 없는 사람, 섞일 수 없는 사람, 본질이 다른 사람, 근본이 다른 사람, 동정할 가치가 없는 사람, 거절해도 되는 사람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분이 아니셨습니다.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시며, 모든 민족과 모든 열방의 구세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런 추잡한 편견을 깨트리시고, 사마리아 지경으로 들어가셨고, 오늘은 이방인의 땅, 두로까지 넘어가셔서 수로보니게 여인을 만나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여인에게 귀신 들린 딸이 있었다는 것은 천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 아픔이 없었다면 그런 절실함을 그 어머니가 절대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녀에게는 놀라운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랍비(선생님)”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여!”라고 불렀습니다. 특별히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나의 주, 나의 메시야라는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고백을 받기 위해서 국경을 넘어가셨고, 그녀 역시 평범함을 넘는 [초월적인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로 넘어 왔던 것입니다. 그녀에게는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믿음이 확실했었고, 예수님만이 답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딸을 살리고, 자신도 숨을 쉴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께 메달리는 것 외에는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물러설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간절함, 그런 절실함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서울대학교가 선정한 필독도서 100선이 있습니다. 죽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할 도서 100권을 선정해서 발표했습니다. 좋은 책들이 많습니다. 그 좋은 도서들을 다 읽으면 분명 생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고상한 인격과 품위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책도, 그 어떤 작가도 우리의 존재를 바꿔놓지는 못합니다. 돌감람나무를 참감람나무가 되게 하시는 분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멀리 있던 이방인을 아브라함의 자녀가 되게 하는 분도 오직 주님이십니다. 저주와 사망 아래 있던 우리를 생명과 영생의 자리로 옮겨주시는 분도 오직 주님이십니다. 책이 아닙니다. 돈이 아닙니다. 권력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존재를 바꾸십니다.

 

    한센인들은 수로보니게 여인과 같습니다. 그들은 육체적 고통과 사회적 편견과 혈통적 정죄 때문에 숨을 쉬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늘 짓밟힌 존재로 살았고, 상종해서는 안되는 존재, 사회에서 치워버려야 할 존재로 취급받으며 살았습니다. 지금의 한센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범했던 그 동일한 오류를 범하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국경을 넘어 왜 그처럼 먼 길을 가셨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 수로보니게 여인이 가지고 있었던 위대한 믿음과 그 믿음으로 변화받은 그의 새로운 존재를 온 천하 만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두로에 가셨던 것입니다. 선교사가 바다를 건너, 산을 넘어, 먼 땅, 땅끝까지 가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 삼기 위함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그들의 존재를 바꿔줄 수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아프십니까? 그럴 때마다 불평하지 말고, 주님이 듣고 싶어하시는 그 말을 하십시오. 일회성 믿음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절실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기적은 당신을 위해서 항상 열릴 것입니다. 당신의 존재가 바뀔 것입니다. 그 놀랍고 위대한 일을 주님이 하십니다.

 

내가 그 말을 듣기 위해서 여기까지 왔노라.

이제는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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