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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샘

복음의 진수 (왕상 3:16-28)

날 짜 : 2024.05.21
  • 양한갑
  • 24.05.21
  • 88

복음의 진수

왕상 3:16-28



 

     운전하다 보면 좁은 골목길에서 갑자기 자전거를 탄 한 꼬마가 훅하고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순간 하늘이 하얗게 보입니다.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그처럼 상상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갑자기 훅하고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며느리 다말이 창녀로 변장하고 시아버지 유다를 유혹했던 이야기가 그런 것입니다. 순간 이것은 뭐지? 왜 이런 찝찝한 이야기가 여기서 튀어나오지?”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어머니가 산 아이를 놓고 법정에서 치졸한 싸움을 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재판관이 없었을까요? 그런 사소한 시비에 한 나라의 대왕이 직접 나셔야만 했을까요? 그래서 오늘 본문의 이야기도 이것은 뭐지?”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열왕기상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왕기는 말 그대로 왕들의 이야기책입니다. 솔로몬은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그의 간추린 행적들이 열왕기상 1장에서 11장까지 빼곡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찬란했던 40년 행적들을 단 11장 안에 기록한다는 것은 불가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역사적 검증을 철저히 한 후에 정말 빼놓을 수 없는 솔로몬 왕의 대업들만 추려서 기록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즉 단순히 솔로몬의 지혜를 후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기록한 말씀이 아니었다는 말씀입니다. 시비의 내용도 너무 단순했습니다. 요즘 같으면 산 아이와 두 여인의 유전자(DNA) 검사를 하라고 명령했다면 몇 시간 안에 친모가 누구였는지 쉽게 알아 낼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솔로몬의 지혜에 그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됩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열왕기상하를 기록한 저자로 선지자 예레미야를 꼽습니다. 예레미야는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 제국에게 패망한 뒤에 마지막까지 유다에 남아 있었던 선지자였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열왕기를 기록할 때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나라가 그처럼 처참하게 패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그 열왕들의 불신앙과 우상숭배에 있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70년 후에 유다를 다시 회복시켜 주신다는 말씀을 듣고 기뻐했습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가 기록했던 열왕기서의 핵심 단어는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회복]이었습니다. 그 핵심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예레미야는 열왕기상 서두에 그 두 여인의 이야기를 삽입해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의 회복을 극적인 반전 이야기로 기술하여 전했던 것입니다.

 

    이제 본문을 보겠습니다. 본문은 두 여인이 모두 창기였다고 했습니다. (왕상3:16) 그런데 그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임신했는데, 정상적으로 잉태한 아이들이 아니었습니다. 미혼모처럼 아비 없이 아들들을 낳아 두 여인이 한집에서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잠버릇이 고약했던 한 엄마가 자면서 아기를 누르는 바람에 아기가 질식해서 죽고 말았습니다. 이상함을 감지했던 그녀는 벌떡 일어나서 보니 자기 아들이 죽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옆에서 자고 있던 친구의 아들과 바꿔치기했습니다. 두 번째 엄마가 일어나서 보니 죽은 아이가 자기 옆에 누워있는데 친구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친구가 안고 있는 산 아이는 자기 아들이었습니다. 엄마가 자기 자식을 못 알아보겠습니까?

 

    솔로몬은 그 이야기를 듣고, 검을 가지고 오라고 명령했습니다. 솔로몬은 그 아이를 반으로 나눠서 머리 쪽은 이 여자에게, 다리 쪽은 저 여자에게 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못된 여자가 말했습니다. “참으로 현명한 판결이십니다. 내 것도 되지 않게 하고, 저 여자 것도 되지 않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산 아이의 어미는 내 주여,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시고, 제발 아이는 죽이지 마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왕상3:26) 이 이야기 에서 주목해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칼]입니다. 왕이 그 칼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아이를 죽이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그 칼을 내려놓았습니다. 칼을 내려놓게 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어머니의 사랑이었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는 예언적인 메시지가 있습니다. 솔로몬은 어떤 왕이었습니까? 왕상11:3절입니다.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두 여인이 [창기]라고 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여인들 안에는 창기처럼 살았던 솔로몬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를 둘로 나눠서, 두 사람에게 각각 주라고 한 것은 장차 솔로몬의 왕국이 둘로 나눠 질 것을 즉 유다와 이스라엘로 쪼개질 것을 예언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솔로몬의 지혜로운 재판 이야기가 아닙니다. 솔로몬의 운명이 예시된 예언이었고, 이스라엘의 운명이 예시된 예언이었습니다.


    첫 번째 여인은 아기를 짓눌러 죽였다고 했습니다. 솔로몬의 40년 통치 중에서 앞 20년은 성전 건축과 왕궁 건축에 모두 소비했고, 나머지는 20년은 영토 확장에 다 소비했습니다. 백성들은 그 엄청난 토목 공사와 전쟁에 동원되어 숨을 실 수가 없었습니다. 어미에게 짓눌려 질식해서 죽은 아이처럼 백성들은 솔로몬의 폭정에 질식되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여자는 비정한 어미였습니다. 슬퍼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거짓을 꾸며 남의 아이를 훔치기까지 했습니다. 그녀는 창녀였다고 했는데, 솔로몬은 1000명의 이방 여인의 치마폭 속에서 더럽게 살았습니다. 권력을 쥔 자들의 최후는 대부분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부귀와 명성을 손에 거머쥐고 천하를 호령했던 자들의 최후도 대부분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요즘 한국의 한 유명 가수가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 가왕(歌王)으로 살다가 음주 운전으로 한순간에 그의 인생이 두 동강이 나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누구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어떤 명성을 가졌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합니다. 손에 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 품은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오늘 본문은 솔로몬이 왕이 되고 나서 집권 초기에 있었던 재판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40년 후에 1,000명의 창기들 속에서 몰락하는 솔로몬의 비극을 예언하셨고, 그의 왕국이 제국들의 검에 휘둘려 둘로 두 동강 나게 될 것을 이 이야기를 통해서 예언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솔로몬의 영광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솔로몬의 지혜도 구하지 마십시오. 솔로몬의 허무했던 인생을 보십시오. 여인들과 달콤한 인생을 즐기고, 70살이 되어 죽음 앞에 이르렀을 때 솔로몬은 이 말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12:8) 그러나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복음과 함께 모진 고난을 받았고, 마지막에는 그의 목숨까지 바치며 살았지만, 그는 이 말을 남기고 갔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전 15:58) 세상의 모든 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은 해 아래 수고가 다 헛된 것이라고 말했지만, 예수 때문에 모든 것을 내려놓았던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행한 일에는 결코 헛된 것이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처럼 해 아래에서 살다가 허무한 인생을 탓하며 죽지 말고, 주안에서 주님이 부탁하신 일을 하다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을 받도록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복음의 진수(眞髓)가 있습니다. 그 복음의 진수는 사랑은 검보다 강하다.”입니다. 검은 심판이지만, 회복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솔로몬의 지혜를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산 자의 어머니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회복을 선포했습니다. 산 아이의 어미처럼 하나님의 인자와 사랑을 간절히 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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