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M 선교통신 110호

양한갑/최영인선교사

제 13차 미얀마 선교를 마치고

     미얀마에 입국할 때 양곤 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받았지만, 칼라이미오 공항에 내리면 다시 이민국 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심사 절차가 옛날 보다는 많이 간소화 되었지만 변함이 없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3년 전이나 지금이나 공항에 컴퓨터 한 대가 없다는 점입니다. 이민국 심사관은 큰 노트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여권과 비자에 관한 모든 정보를 샅샅이 옮겨 적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적은 기록들이 틀리지 않았나 다시 꼼꼼히 대조를 시작합니다. 이민국 시계는 정지되어 있는 기분입니다.

     미얀마 정부의 예산이 미치지 못한 한 공항의 형편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미얀마 정부가 정말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엉뚱한 곳에 돈을 물 쓰듯 쓰고 정작 필요한 곳에는 지원을 하지 않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정부의 무(無) 책임, 무(無) 행정, 무(無) 지원을 홍수와 산사태 피해 지역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국민에게 정부는 있었지만, 정부에게 국민은 없었습니다. 중장비 지원도 없이 사람들이 나아와 노예처럼 그 넓은 강 위에 돌과 나무로 다리를 놓고 있었습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아와 허물어진 길들을 보수하고 있었습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밭에서 건진 감자, 양파, 양배추를 시들기 전에 내다 팔아야 살 수 있기에 정부의 중장비 지원을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주민들이 나아와 손을 거둬 붙이고 무너진 길들을 보수하고 있었습니다. 처참하게 무너진 길들을 보는 것 보다, 처참한 환경에서 발부둥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더 가슴 아팠고, 그들이 우리의 형제, 크리스천들이란 사실이 더, 더 가슴 아팠습니다.

     가지고 간 구호품의 무게는 굉장했지만, 하카로 올라가는 발걸음과 가슴은 더 무거웠습니다. 밤에 자다가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었던 티센(Tisen) 마을.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가지고 갔던 쌀과 식용유와 학용품들이 그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싶었습니다. 그들이 안고 있는 현실은 짙은 구름에 갇힌 Chin Hill의 언덕들처럼 앞이 보이지 않았고, 더 답답했습니다. 그때 내 입에서 반복되는 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이제는 여기에서 멈추고 싶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미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7년 동안, 필리핀 딸라(Tala) 한센 마을에서, 나보타스(Navotas) 무덤 마을에서 그리고 미얀마 메얀청(Mayanchaung) 한센 마을에서, 로얄(Royal) 고아원에서, 칼라이미오(Kalaymyo)에서, 친(Chin)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한 결 같이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긴 병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들 곁에 있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니라 그들 곁에서 그들의 필요를 돕지 못하고 그냥 서 있는 고통이 더 힘들었습니다. 하카까지 올라가는 길이 힘든 것이 아니라, 그 험한 곳에 형제들을 두고 내려와야만 하는 길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고통 속에서 울고 있는 그들의 모습보다, 찬양 속에서 웃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더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절규했습니다. “하나님, 이제는 더 못 보겠습니다. 더 못 하겠습니다. 더 못 오겠습니다.”라고. 그때 하나님께서 보여주셨던 것이 상링(Sangling)교회 십자가였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베드로처럼 거꾸로 된 저 십자가를 질 수 있겠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저의 사치스런 투정은 거기에서 멈췄습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똑똑한 사람들이 무지한 사람들을 가리켜 하는 말입니다. Chin Hill에 있는 크리스천들이 그런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농사 일 외에 아는 것이 없는 산골 촌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도시로 내려가는 길이 열려 있어도 겁이 나서 그 별천지 세계로 내려가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 앞에 서면 늘 부끄럽습니다. 나는 그들 보다 아는 지식이 하나 더 있지만, 그들보다 더 알면 뭐하겠습니까? 그들보다 셋, 넷을 더 알면 뭐하겠습니까? 아는 것 하나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데... 그런데 하나 다음에 둘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둘 다음에 셋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셋 다음에 넷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오직 하나만 알고 있는 사람들인데... 그 하나만을 신실하게 믿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친(Chin) 형제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늘 나에게 도전이 됩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면 꼭 받는 인사가 있습니다. 그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서 교회 입구 문까지 나아갈 시간이 없습니다. 축도를 하고 눈을 뜨면 이미 강단 아래에는 성도들이 빽빽이 다가와 악수를 청합니다. 그들이 내 손을 잡는 온도와 세기는 저 아래 세상 그 어떤 교회에서도 느낄 수 없는 [다름]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더욱 사랑스럽습니다. 내 심장까지 꺼내주고 싶을 만큼 그들은 나로 하여금 그들을 깊이 사랑하게 만듭니다. 

     이번에 만달레이에 들렸을 때, [부처의 언덕]에 올라갔습니다. 시간이 모자랐지만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에 부탁을 했습니다. 석가모니가 미얀마를 방문했을 때, 그 언덕에 서서 만달레이를 내려다보며, 장차 그곳에 큰 도시가 서게 될 것이라고 예언을 했다는 바로 그 언덕이었습니다. 산 정상에는 한 불교 사원이 있었습니다. 유리와 황금으로 장식된 화려한 사원이었습니다. 수 백 명의 순례자들이 여기저기에 세워진 불상 앞에 절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구석 저 구석에는 흉물스런 우상들이 우글거리고 있었습니다. 한 전망대에 이르니 만달레이 시내가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이 미얀마의 실체였습니다. 미얀마는 60년 동안 군부 독재 통치 아래에 갇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수 천년 동안 더러운 우상들의 발밑에 깔려 있었습니다. 우상의 땅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가난하지만 구원 받은 친(Chin) 크리스천이 더 소중했고, 더 사랑스러웠습니다. 

     고개를 들고 하늘 한 번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사는 도시 현대인들입니다. 그래서 하늘 위에 사는 “하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큰 은혜요 축복이었습니다. 지금 나는 다시 편안한 도시로 돌아와 있습니다. 그런데 하늘 형제들은 아직도 무너진 산 밑에, 갈라진 땅 위에, 사라진 논밭 옆에, 넘어진 집 아래에, 종소리가 멈춘 교회 앞에 빈손으로 서 있습니다. 이 말씀과 함께 그들을 생각합니다. 빌립보서 1:29절 말씀.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들에게 하나님의 치유와 축복하심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양곤의 구름은 너무도 높은 하늘 위에 떠있습니다. 그런데 하카의 구름은 늘 발 밑에서 뭉글거립니다. 그 뭉글 구름을 밟으러 머지않아 또 다시 그 하늘 땅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후원이 없었다면 이번 선교는 있을 수 없었습니다. 다시 한번 후원해 주셨던 모든 교회와 여러분들께 친(Chin) 형제들의 이름으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