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9일. 

로드리고 두테르테(Rodrigo Duterte)씨가 필리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득표률은 38.6%였다. 

2위(23.5%)와 큰 격차를 벌이며 압승했다. 

먼 훗날 역사가들은 이번 필리핀 국민의 선택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할까?

아직 두테르테는 대통령 당선인이다. 오는 6월 30일, 그는 제16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취임 이후, 그의 선거 공약 실천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다.

그는 30년 동안 필리핀 최남단 민다나오(Mindanao) 섬 다바오 시티(Davao City) 시장이었다. 

과거 다바오 시티는 각종 범죄로 필리핀에서 가장 악명이 높은 도시였다.

그런데 지금은 필리핀에서 가장 안전하고, 가장 평화로운 도시가 되었다고 두테르테는 말하고 있다.

그는 어떻게 범죄 소굴이었던 다바오 시티를 평화의 도시로 만들었을까?

그 해답은 “다바오 암살단 (Davao Death Squads)”이었다.

암살단의 요원들은 현직 경찰관 혹은 퇴역한 경찰관들이었다.

그들의 임무는 말 그대로 암살이었다.

그들에게 암살 대상자의 이름과 사진이 전달되면 즉시 대상자를 암살했다.

암살된 사람들은 대부분 마약 중독자, 마약 판매자, 경미한 범죄자, 노숙자들이었다.

“다바오 암살단”은 두테르테 지시로 1998년에 창단되었고,

지난 20년 동안 약 1,400명의 사람들이 정당한 재판 절차 없이 암살되었다.

그 결과 다바오 시티는 필리핀에서 가장 안전하고 평화로운 도시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 평화의 땅 지하에는 지금도 피가 강처럼 흐르고 있다.

두테르테는 자신은 다바오 암살단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개입설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두테르테가 그 다바오 시티의 예를 필리핀의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6개월 안에 10만 명의 범죄자들을 처형해서

마닐라 바다에 던져 물고기 밥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웃으면서 마닐라 물고기들이 통통하게 살이 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필리핀에서 범죄 1위는 살인이다. 2위는 강간이다.

주민등록증이나 지문 체취가 없는 나라. 범행 후 잠수하면 아무도 찾지 못한다.

필리핀에서 그런 살인범들과 강간범들이 과연 10만 명뿐일까?

살인범, 강간범들이 아니라, 다바오에서처럼 마약 중독자, 노숙자 10만 명을 재판 절차 없이 즉결 처형시킨다면 

마닐라도 다바오처럼 안전하고 평화로운 도시가 될 수 있을까?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그것 밖에 없을까?

마약 중독자, 노숙자들을 죽여서 물고기 밥이 되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한 재활 시설들을 더 많이 세워서 그들로 하여금 새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그런데 지금 필리핀 국민들은 그런 것들은 제안하지 않고, 

그에게 사형 제도를 부활시켜주면서 “다 죽여라! 다 죽여라!”라고 외치고 있다.

염려하는 것 중에 하나는 여성에 대한 두테르테의 생각과 태도이다.

1989년. 다바오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호주 선교사 Jacqueline Hamill이 갱단들에게 납치가 되어 강간을 당한 후에 살해 된 사건이었다. 

그 당시 두테르테는 1988년 선거에서 당선이 되어 다바오 시티 시장이 된 첫 해였다. 

시장으로서 무고히 희생된 제클린선교사에 대해서 깊은 애도를 표현해야만 했었다. 

그런데 그는 “그 여자 아주 예쁘던데. 시장인 내가 먼저 강간을 했어야 했는데....”라고 말했다. 

시장으로서 할 수도 해서도 안 되는 말이었다. 

그에게 여성은 누구인가? 그에게 여성의 인권은 없었다. 필리핀 여성들이 들고 일어나야할 대목이다. 

그는 2000년에 첫번째 부인 Elizabeth Zimmerman이 제출한 이혼 소송에서 져서 법원 판결로 이혼을 했다.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필리핀 국민들은 그의 이름만 나오면 흥분하고 있다. 

10만 명을 죽이든, 20만 명을 죽이든 무조건 나라를 뒤집어엎으라고 외치고 있다. 

한 맺힌 필리핀 사람들의 요구가 하늘을 덮고 있다.

그러나 내가 주목하는 것은 한이 많은 그 어른들이 아니다. 

바로 이 나라의 미래 필리핀 어린이들이다. 

거리거리 현수막에 걸린 강인한 두테르테의 모습, 

수많은 차량 유리창에 붙이고 다니는 주먹을 쥔 루테르테의 모습, 

기관총을 들고 서있는 두테르테의 모습, 

매장에 나오자마자 완판이 되는 두테르테의 모습이 찍은 티셔츠들. 

신문과 방송에 수시로 잡히고 있는 막말자 두테르테의 모습. 

게이와 레즈비언과 성전환자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두테르테의 모습.

동성결혼을 일찍부터 환영했던 두테르테의 모습

필리핀 어린이들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고 있는 대통령의 모습들이다. 

과연 어린이들은 총을 든 새 대통령을 보면서 어떤 꿈을 꿀까? 

혹 어린이들이 나도 나중에 크면 저 사람처럼 총을 들고 나쁜 사람들을 소탕하는 해결사가 되겠다고 하지는 않을까? 

두테르테가 필리핀의 영웅이 아니라, 필리핀의 돈키호테로 아이들에게 그려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지금 필리핀은 두테르테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총잡이 서부영화"를 찍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먼 훗날 역사가들의 평가를 받겠지만, 

지금은 그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6년 동안 필리핀 어린이들의 눈을 두 손으로 꽉꽉 덮어놓고 싶다.

필리핀 어른들이 필리핀 어린이들에게 해줄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이 바로 이것이었을까? 

필리핀을 위해서 정말 간절한 기도를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