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보석

마 9:9-13, 눅 19:1-10

 

세리 마태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직업이 있습니다. 지금은 직업에 귀천이 없지만, 옛날에는 직업이 신분을 나타냈고, 그 신분은 차별을 만들어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에서 ‘세리’라는 직업은 ‘창녀’와 동일시했던 가장 천한 직업으로 사람들에게 항상 멸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 당시 유대인 세리들은 할당된 상납금을 로마제국으로 보내기 위해서 자국민들에게 과다한 세금을 징수했고, 무자비하게 뜯어냈습니다. 그래서 세리들은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는 주범이 되었고, 비호감 1순위가 되었고,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미운털이 박힌 사람이 되었고,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 수전노(守錢奴), 로마제국의 충견(忠犬)으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예수님 제자 중에 마태가 그런 사회적 소외자였던 ‘세리’였습니다. 오늘은 먼저 마태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마태는 갈릴리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본명은 ‘레위’였습니다. 마가와 누가는 동일하게 그를 ‘레위’로 소개했습니다. 마가복음 2:14절입니다.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누가복음 5:27절입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을 기록했던 마태는 자신을 마태로 직접 소개했습니다. 마태복음 9: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레위’라는 이름은 아무나 가질 수 없었기에, 마태는 레위 족 출신으로서 제사장이 되었거나, 성전에서 봉사하는 사람이 되었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그처럼 멸시를 받았던 ‘세리’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기에서 그의 숨겨진 진실을 파헤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새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시몬을 부르시고 그에게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성경에 언급은 없지만, 예수님께서 레위를 부르시고 그에게 [마태]라는 새 이름을 선물로 주셨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마태’의 뜻은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마태를 제자로 부르셨을까요? 셈을 잘했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렇다면 재정은 당연히 그가 맡았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돈 주머니를 맡았던 제자는 가룟 유다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를 뽑으셨던 것은 그의 은사가 장부 정리를 한치의 차고도 없이 꼼꼼히 정리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태는 예수님과 3년 동안 동행하면서 한 손에 장부를 들고 예수님의 행적과 선포하신 말씀들을 꼼꼼히 기록했고, 그것이 마태복음으로 나오게 되었다고 믿습니다. 세상에서는 자기 자신을 떳떳히 드러내지 못하고 살았던 ‘세리’ 마태였지만, 부르심을 받은 이후에는 예수님을 온 세상에 드러내는 일에 그의 삶 전부를 드렸던 ‘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멋진 반전입니까?

   예수님의 부르심 앞에 마태는 순종했습니다. 주님께서 그 마태를 데리고 제일 먼저 가셨던 곳은 그의 집이었습니다. 그날 밤, 그의 집에서는 큰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초대되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너희 선생은 어떻게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잔치는 마태의 송별식이었습니다. 마태는 다음 날부터 세관으로 다시 출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하루만 따라다녔던 것이 아니라, 그의 과거와 완벽하게 단절하고 주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했던 그 저녁 식사는 그의 송별식 겸 파송식이 되었던 것입니다.

세리 삭개오

   누가복음 19장에는 또 다른 세리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삭개오입니다. 그는 여리고 세관에서 제일 높은 세리장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여리고로 들어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거리로 나갔습니다. 키가 작아 예수님을 볼 수 없게 되자 그는 아이처럼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은 호기심이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를 간절히 갈망했던 사모함 때문이었습니다. 그 마음을 아셨던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주목하셨습니다. 삭개오는 그의 작은 몸을 더 많이 구기고, 더 깊이 누르고, 더 좁게 접어서 작은 나뭇잎 뒤에 꼭꼭 숨겼습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께서 “삭개오야!”하셨습니다. 그의 이름이 불려질 때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삭개오는 숨을 곳이 없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아니, 저 자는 세리 삭개오가 아니냐?”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께서 “속히 내려오너라, 내가 오늘은 네 집에서 머물러야겠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순간 키 작은 삭개오는 여리고에서 가장 큰 거인이 되었고, 사람들에게 늘 침 뱉음을 받았던 그의 얼굴은 여리고에서 가장 빛나는 얼굴이 되었습니다. 삭개오는 나무 위에서 내려와 예수님을 그의 집으로 모신 뒤에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삭개오는 예수님께 자신의 소유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누구를 속였다면 네 배로 갚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돈만 아는 수전노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라고 하셨습니다. (눅 19:9)

   여기에서 마태를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3년 전에 마태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이 여리고에서 고스란히 재연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배 세리 마태는 후배 세리 삭개오가 행했던 일을 누구보다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갈릴리 출신 세리와 여리고 출신 세리. 그 두 사람의 공통점은 부르심을 받은 후에 큰 잔치를 배설했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했고, 한 사람은 가진 것의 절반을 내놓았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째째하고 인색한 세리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가진 재물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마치 스스로 파산 선고를 하듯 그들의 재물을 깨고 잘라서 나눴습니다. 그 세리들이 왜 그랬을까요? 그들에게 베풀어 주셨던 예수님의 은혜가 너무도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찾아지 않았던 세리들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함께 밥을 먹어 주지 않았던 세리들이었습니다. 그 누구로부터 따뜻한 말 한마디 들어본 적이 없었던 세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먼저 찾아주셨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들을 높여 주셨습니다. 모두가 그들을 매국노, 수전노, 로마제국에게 붙어서 비열하게 살아가는 더러운 ‘기생충’으로 취급했을 때, 예수님은 그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마 21:31) 예수님은 그들이 가졌던 직업으로 그들을 판단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비판적 유대 사회를 향해 마음의 빗장을 풀고, 가난한 이웃을 향해 곳간 열쇠를 열었던 이유였습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선택은 항상 정확했습니다. 인재를 발굴하시는 과정도 항상 탁월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빛나는 보석을 찾지만, 예수님은 버려진 돌멩이를 가지고 빛나는 보석이 되게 하셨습니다. 세리들은 버려진 돌멩이보다 더 가치 없는 취급을 받았습니다. 아무도 그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세리들을 빛나는 보석이 되게 하셨습니다. 저는 이번 코로나를 통해서 주님께서 그처럼 눈부신 보석들을 만들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겠다고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영적으로 고된 시간이 길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고된 연단 속에서 눈부신 보석을 빚으시는 주님의 손은 쉬지 않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40년 전, 제가 서울신학대학에 입학했을 때 자주 들었던 말이 있었습니다. “공부를 지질하게 못해서 1차 대학 시험에 떨어진 것들이 마지막으로 가는 곳이 신학교야.”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찔끔했었습니다. 저는 정말 공부를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큰 은혜였습니다. 만약 제가 서울신학대학이 아니라 서울대학교에 들어갈 실력이 되었다면 저는 지금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요? 엉뚱한 곳에서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민목회를 했을 때 캐나다와 미국에서 자주 들었던 말 중에 하나는 “하다 하다가 더 해 먹을 것이 없으면 하루아침에 목사가 되어서 나타나더라고!”였습니다. 서울에서는 이런 말도 들었습니다. “목회 자리를 찾다 찾다가 못 찾으면 마지막에는 선교하겠다고 나가더라고!” 사람들은 너무 쉽게 던지는 말들이지만, 예수님은 그런 그들을 불러내셨습니다. 저는 그처럼 실력 없는 사람들 속에서, 기회를 잃은 사람들 속에서 세상을 바꾸는 제2의 마태와 삭개오가 나오게 되리라 믿습니다. 실력이 없어서 신학생이 되고, 할 것이 없어서 목사가 되고, 갈 곳이 없어서 선교사가 되었어도 괜찮습니다. 그런 이들을 눈부신 보석이 되게 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우리의 평범했던 일상의 삶이 뒤엉켜버렸습니다. 수십 년 동안 키우고 쌓아 올렸던 일들이 모래성처럼 무너졌습니다. 자랑스러웠던 한국 교회 위상도 깨졌습니다. 그러나 그 깨짐 때문에 제2의 마태와 삭개오가 나오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 눈부신 보석을 만드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그 분의 보석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