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심장 (Heart of Banana: Puso ng Saging)

바나나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면 며칠은 해야 한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필리핀에 와서 바나나를 먹은 후부터 다른 나라의 바나나를 먹을 수 없게 되었다. 향이 독특하고, 입 안에 들어가면 꿀이 된다. 필리핀으로 다시 돌아와서 바나나를 먹고 제일 먼저 했던 말은 “그래, 바로 이것이 바나나 맛이었어!”였었다. 두서없이 바나나에 얽힌 몇 가지 이야기를 해본다.

- 바나나는 나무가 아니다. 땅 위로 올라오는 굵은 대(높이:2m-5m)는 땅 속에 있는 [뿌리줄기]에서 나온 [헛줄기]이다. 그 헛줄기를 잘라서 보면 마치 양파처럼 수 십 개의 껍질로 되어 있다. 안에 있는 속대에는 물이 풍부하다. 특별히 속대 안에 있는 물은 담석증과 고혈압 환자들에게 특효약이 된다.

- 줄기에서 나온 큰 잎사귀 하나는 2m-3m까지 자란다. 비올 때 우비로 쓰기도 하고, 음식을 담는 그릇이 되기도 하고, 잔치 음식을 놓는 큰 테이블이 되기도 하고, 찹쌀밥을 보관해 두는 시원한 포장지가 되기도 한다.

- 노랗게 익은 바나나는 껍질을 벗기고 그대로 먹는 과일이 된다. 그러나 바나나의 종류에 따라서 삼아서 먹는 바나나가 있고, 기름에 튀겨서 먹는 바나나가 있고, 숯불에 구워서 먹는 바나나가 있다. 맛이 다 독특하다.

- 하늘로 솟아 올라오는 각각의 헛줄기는 6개월 후에 꽃을 피우면서 바나나를 연다. 보라색으로 피는 꽃을 필리핀 사람들은 “바나나의 심장”(Heart of Banana)이라고 부른다. 정말 사람의 심장처럼 생겼다. 큰 것은 가로 15cm, 세로 30cm까지 자란다. 보라색 껍데기를 벗기고 또 벗기면 하얀 속살이 나온다. 그 속살을 반으로 쪼개면 마치 양배추처럼 되어 있다. 채를 썰어서 샐러드를 만들어 먹기도 하는데, 필리핀 사람들은 주로 삶아서 나물처럼 볶아서 먹거나 죽을 만들어 먹는다.

- 헛줄기 하나에서 나온 바나나의 총 수는 대략 100개 -150개 된다. 무게로 보면 30-50kg다. 남자 혼자 들기에도 무겁다. 현재 바나나 1kg는 시장에서 25페소 하니까 한 줄기에서 약 1,000페소(약 20달러) 이상 되는 바나나가 생산되는 셈이다.

- 흥미로운 것은 각 헛줄기는 50kg짜리 바나나를 생산하고 곧 죽는다는 것이다. 일생에 단 한번만 바나나를 생산하고 조용히 사라진다. 그 이후에는 땅 속 뿌리(원) 줄기에서 새 헛줄기 새순이 올라와 자라게 된다. 한 세대가 가고 다음 세대가 바통을 이어 받는 셈이다.

- 바나나는 좋은 땅에는 잘 되지 않는다. 물이 없고, 모래 같은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 바나나는 과일만 내주는 식물은 아니다. 어린 줄기와 어린 잎사귀를 잘라 그 안에서 고운 섬유(실)를 뽑아낸다. 필리핀 사람들은 그 실로 고급 전통 의상과 고급 손수건을 만든다. 일본 사람들 역시 바나나에서 뽑아낸 실로 여성들이 입는 기모노를 만들어 입었다.

- 바나나는 건강식품이다. 지방, 나트륨(소금), 콜레스트롤이 거의 없고 탄수화물이 풍부하다. 칼륨 함유량이 바나나 1개(100g) 당 440mg이다. 이는 다른 과일(사과 90mg)이나 채소(감자 110mg)에 비해 월등이 높은 수치이다. 비타민 A, B, B6가 많아 노화방지에 좋다. 하루에 바나나 2개를 먹으면 고혈압 수치를 10% 내릴 수 있다는 연구 보고가 있다. 식이섬유질이 많아 변비와 다이어트에 좋다. 특별히 바나나를 벗길 때 바나나에 붙어서 나오는 실 같은 하얀 줄에 섬유질이 대량으로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분리하지 말고 함께 먹는 것이 좋다고 한다.

- 2007년도 세계 바나나 총 생산 국가 중 부동의 1위는 인도(21%)이다. 년간 1,600만톤을 생산한다. 2위는 중국(8%), 3위는 필리핀(7.5%), 4위는 브라질(7.1%)이다.

앞에서 말한대로 바나나는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식물이지만 천한 식물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베푸는 선물이다. 바나나의 맛도 기막히지만, 일생에 단 한 번만 열매를 맺고 조용히 사라지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이다. 특별히 고운 실을 내어주어 아름다운 의상을 짓도록 하는 일은 바나나의 귀품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단 한 번만 피고 지는 “바나나의 심장”(Puso ng Saging: Heart of Banana)은 선교사의 심장이 그래야 함을 교훈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