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라스(Patras). 예수님의 제자 안드레가 X형 십자가에 달린 채로 마지막 숨을 거둔 곳이다. 깊은 산골짜기에 무겁게 내려앉은 구름처럼 그의 순교 앞에서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이 무겁게 가슴을 짓누르며 내려앉는다.

  안드레는 예수님의 12제자 가운데 가장 먼저 제자로 부름을 받았던 사람이었다. 성경은 그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에는 세례 요한의 제자였다고 전하고 있다. 그처럼 그는 메시야를 갈망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단순히 물고기만 많이 잡아서 가족들과 함께 편히 먹고 사는 것에 만족했던 그런 장사꾼 어부가 아니었다. 어떨 때는 과감히 생업을 접고 먼 광야까지 나아가 세례 요한의 메시지에 귀 기우렸던 영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스승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을 보라.”고 했을 때 그는 숨도 쉬지 못하고 예수님을 주목했었다. 그리고 그 분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다. 안드레는 그처럼 제자들 가운데서 가장 먼저 주의 은혜를 입었던 사람이었다. 안드레는 평생 그 큰 첫사랑을 가슴에 품고 살았던 사람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시고 계실 때, 몇몇 헬라(그리스) 사람들이 찾아와 빌립에게 예수님 뵙기를 청하였다. 그런데 빌립은 곧바로 그들을 예수님께 소개하지 않고 먼저 안드레에게 물었다. 아마도 그들이 이방인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안드레는 주저하지 않고 예수님께 그 헬라인들을 소개했다. 그때 예수님께서 참으로 놀라운 말씀을 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요12:24-26) 이것은 후에 헬라(그리스) 선교를 하다가 순교하게 될 안드레의 마지막 삶을 미리 예언하셨던 말씀이셨던 것이다.

  안드레 역시 다른 사도들처럼 선교사가 되었다. 소아시아 (지금의 터어키) 선교를 하고, 흑해 (지금의 루마니아, 우크라이나)까지 올라가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그가 받은 사명 즉 헬라 선교를 위해서 흑해를 떠나, 빌립보, 데살로니가, 아덴, 고린도를 지나, 지중해가 보이는 헬라의 땅끝 항구 도시 파트라스(Patras)에 이르게 되었다. 거친 뱃사람들이 술과 여자로 잠드는 땅. 고관들과 총독의 관저가 있는 권력의 땅. 그곳에서 안드레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죽어야만 하는 한 알의 밀알의 삶”을 생각하며 복음을 선포했다. 그의 순교는 그렇게 땅끝 파트라스에서 준비되고 있었다. 많은 헬라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 고관 부인들 역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데, 역사가 유세비우스(Eusebius, AD260-340)에 의하면 그들 가운데는 총독 애기아테스의 부인까지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화가 난 총독은 안드레를 예수처럼 십자가 형으로 죽이라고 명했다. 안드레는 감히 예수님처럼 죽을 수 없다고 하면서 자신을 X형 십자가에서 죽게 해달라고 청했다. 그래서 안드레는 X형 십자가에서 순교하게 되었다. AD 69년 11월 어느 날, 예수님의 첫 제자 안드레는 그렇게 헬라 땅끝 파트라스에서 위대한 생애를 마치고 그가 그처럼 사랑했고 사모했던 주님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갈릴리에서 파트라스까지 가는 길. 참으로 먼 길이었다. 쉽지 않은 길이었다. 눈물과 고난이 늘 함께 하는 순교자의 길이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12제자 가운데 안드레를 가장 먼저 부르셨던 주님. 일찍이 헬라인들 앞에서 예언하셨던 대로 결국 안드레를 헬라인의 땅에서 한 알의 밀알로 죽게 하셨던 주님. 우리는 그 주님을 원망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길은 영광의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가는 길을 누가 정하는가? 우리의 마지막 숨이 잠들게 하는 땅은 어디인가? 내 몸에 살기 좋은 땅이 아니라, 내 몸이 묻혀야만 하는 주님이 원하시는 땅에서 잠들어야 한다. 높은 교회 종탑들 위에 많은 십자가들이 있다. 그러나 그 종탑 아래 예배당에 앉아 있는 많은 사람들은 정작 십자가를 잊어가고 있다. 잊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애써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까운 지름길, 편한 길, 즐거움이 넘치는 길을 끊임없이 찾기 때문이다. 주님을 위한 고통은, 복음을 위한 희생은, 더 많은 생명을 얻기 위한 죽음은 오늘도 외면당하고 있다. 오늘도 파트라스(Patras)로 가는 길목에는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십자가들이 서있다. 그리고 한 비문에 적힌 성구가 우리의 가슴을 다시한번 뭉클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