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그릇에 담긴 보배

행 7:51-60

 

    필리핀은 일 년 내내 덥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추워서 이불을 덥고 잡니다. 여기저기에서 콜록콜록 감기 환자들이 속출합니다. 요즘 주일학교 어린이들 중에서 콧물을 줄줄 흘리는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1년 중 가장 추운 날씨 때문입니다. 도대체 몇 도인데 이렇게 추울까 하면서 온도계를 보면 영상 22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지금 영하의 날씨 속에서 꽁꽁 얼어버린 서울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필리핀 추위입니다.

   기온이 영상 38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필리핀 남자들은 윗옷을 훌훌 벗고 거리를 활보합니다. 더 민망한 모습은 남자들이 팬티 하나만 입고 다니는 모습입니다. 사각 팬티인데 그들은 그것을 반바지처럼 생각하는 듯합니다. 그것을 보고 웃는 사람, 야단치는 사람도 없습니다. 옷 파는 가게에 가면 남성용 팬티들을 하나하나 옷걸이에 걸어서 마치 반바지처럼 팔고 있습니다. 여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쁜 잠옷이 있으면 그 잠옷을 입고 시장까지 나옵니다. 나 이런 팬티있다, 나 이런 잠옷 있다 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그런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한 가지 교훈을 얻습니다. 내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내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은 무엇들이 있을까? 1등했던 상장을 보여줄까? 국가 기능사 자격증들을 보여줄까? 박사 학위를 보여줄까? 많은 재물을 보여줄까? 나에게는 다 틀린 일입니다. 나는 학교에서 1등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운전면허증 외에 나에게는 다른 자격증이 없습니다. 나는 박사도 아니고, 나는 많은 재물도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슬픈 사람입니까? 그래서 나는 실패자입니까?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을 수 없는 벌레 같은 존재입니까? “당신은 그렇습니다.”라고 내게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내 안에는 그것들 보다 훨씬 더 보배로운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그 보배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스데반집사는 은혜와 권능이 충만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능력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변론했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스데반의 지혜를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말로는 도저히 스데반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들은 무력으로 스데반을 붙잡아 공회 앞에 세웠습니다. 그들은 거짓 증인들을 세웠습니다. 스데반에게 붙여진 죄명은 [신성모독죄]였습니다. 기막힌 일이었습니다.

    과연 누가 하나님을 모독했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죽일 때도 같은 죄명을 붙였습니다.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을 모독했습니까? 하나님을 모독한 자들은 그들이었습니다. 스데반의 입장에서도 신성모독죄는 억울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을 때, 열 두 사도들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들은 스데반을 위해서 무엇을 했습니까?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도들은 아무 일도 하지 못했습니다. 스데반은 “혼자” 공회 앞에 섰습니다. 

     스데반 죽음이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와 있음을 직감했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그때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 같았다고 했습니다. (행 6:15) 두려움을 느낀 쪽은 스데반을 죽이려고 했던 무리들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시간을 더 끌게 되면 자신들이 더 불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형 집행을 서둘렀습니다. 대제사장은 증인들에게 거짓 증언을 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스데반에게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했습니다. 스데반은 그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에 모두 사용했습니다. 스데반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해서 이삭, 야곱, 요셉의 생애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이야기를 할 때에는 광야 40년을 “광야 교회”(행 7:38)로 표현했습니다. 그는 여호수아, 다윗, 솔로몬까지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멈췄습니다. 거기까지 군중들 속에서는 큰 소동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말씀 즉 사도행전 7:48절에 이르자 상황은 갑자기 돌변했습니다. 솔로몬의 이야기를 마친 후에, 스데반이 “그러나(however)”라고 하면서 군중을 향해 큰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시온산을 뿌리 채 흔들 정도였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곳(예루살렘 성전)에 계시지 않으신다. 너희들이 그 지극히 높으신 분을 죽었다. 너희들은 그 분을 죽인 살인자들이다.”라고 외쳤습니다. 그 말을 들은 군중들은 이성을 잃고 말았습니다. 대제사장의 판결이 아직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미친 광인들은 스데반을 성 밖으로 끌고 나아가 잔인하게 돌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돌을 던질 때 스데반이 마지막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그때 주님께서 스데반의 영혼을 천국에서 받으셨습니다. 

    바로 이 장면에서 우리는 또 한 사람을 주목해야 합니다. 바로 청년 사울입니다. 그는 그 모든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가까이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유대인들은 긴 장옷을 입습니다. 그래서 급한 일을 하려고 하면 그들은 장옷이 불편해서 긴 옷자락을 걷어 올리고 허리띠로 묶은 뒤에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폭도들이 스데반을 죽일 때에는 허리띠를 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예 긴 장옷을 벗어 던졌습니다. 스데반에게 돌 한 개가 아니라 수 십 개를 잔인하게 던지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그들이 그들의 옷들을 벗어서 한 청년의 발 앞에 놓았는데, 그 청년이 바로 사울이었습니다. 청년 사울은 그들의 두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중에 고백하기를 “나는 죄인의 괴수였다.”(딤전 1:15)고 했습니다.

     청년 사울은 그때까지 신앙의 진수(the Beauty of Faith)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무서운 공포 속에서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처럼 되었던 그 이유가 무엇인지 사울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 천사의 얼굴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스데반은 유능한 초대교회 집사였습니다. 앞으로 할 일이 많은 젊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초대교회에 첫 번째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너무도 짧은 생애를 살고 갔지만. 그의 삶은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과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스데반은 죽게 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담대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서 그의 생명은 빼앗았지만, 그의 보배는 뺐지 못했습니다. 그 능력은 두려움과 죽음을 이기는 능력이었습니다. 천국의 문을 여는 능력이었습니다. 폭도들을 위해서 용서의 기도를 드렸던 능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승자는 스데반이었습니다. 그 챔피언의 위대한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던 청년 사울이 나중에 사도가 되었습니다. 사도가 되었을 때, 사도 바울은 순교자 스데반 안에 있었던 그 보배가 무엇이었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후 4장의 말씀을 읽어내려 가다보면 사도 바울이 그 말씀을 기록했을 때, 아마도 스데반의 순교 장면을 다시 생각하면서 썼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후 4:7-10)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멘, 아멘.”이라는 고백이 쉼 없이 나오는 말씀입니다. 스데반이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보배롭고 존귀한 삶이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까? 어느 교회이든 교회 안에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고 가는 크리스천이 그 교회 안에 한 사람도 없다면 그 십자가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찬란한 박사 학위를 가진, 돋보이는 리더십을 가진 목회자가 아무리 많아도 그들이 이중생활을 한다면 그들이 가진 것들이 무슨 보배가 되겠습니까? 성도들이 사회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학자요,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성공한 기업인이 되었다 할지라도 그들이 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지 못한다면 그들이 가진 것들이 천국에서 무슨 크레딧(Credit)이 되겠습니까?

    몇몇 필리핀 남자들은 티셔츠도 입지 않고 팬티 하나만 입고 거리를 활보한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부끄러움을 보릅니다. 단지 멋진 신상(新商: New Arrival) 팬티를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요? 지금 한국교회가 옷이 다 벗긴 채로 세상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을 당하고 있는데 정작 교회는 그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참으로 큰 일입니다.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팬티만 입고 벌거벗은 사람처럼 되었는데 그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 채 여전히 자신이 가진 것이나, 자신이 이룩한 업적이나, 자신이 가진 명예를 자랑만 한다면 참으로 큰 일입니다.

    경영하고 있는 사업이 졸지에 망할 수도 있습니다. 한순간에 핍박의 자리로 던져질 수도 있습니다. 상상하지 않았던 암 진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곧 죽는답니다. 늙어갑니다. 그래서 울고만 있을 것입니까? 그래서 절망만 하고 있을 것입니까?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하나님을 원망만 하고 있을 것입니까? 그래서 기도도 떼려 치실 것입니까? 내 고통을 알아주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고 슬퍼만 하고 있을 것입니까? 지금 당신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스데반을 생각하십시다. 스데반은 기막히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젊은 나이에 죽게 되었을 때도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놓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지막 시간을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일에 다 썼습니다. 스데반은 슬픔과 원망과 분노의 얼굴이 아니라 천사의 얼굴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떠났습니다. 그의 그 빛났던 얼굴은 바울의 가슴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모습으로 새겨졌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질그릇에 담긴 보배”라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하고, 우리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줘야만 하는 보배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