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네시모는 빌레몬의 노예였다. 노예는 주인의 영구한 재산이었다. 주인의 허락 없이는 집을 떠날 수 없었다. 그런데 오네시모는 집을 떠났다. 떠난 것이 아니라 도망을 쳤다. 그는 로마를 향해 쉬지 않고 뛰었다. 그의 가슴에는 늘 로마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마다 꿈이 있다. 노예로 태어났지만 노예로 죽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노예에게 자유는 희망이다. 그러나 오네시모는 자유 때문이 아니라 꿈 때문에 도망을 쳤다. 그에게는 스스로 억제할 수 없었던 꿈이 있었다. 하루에도 수 십번 “나는 노예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노예다.”라고 되뇌었지만 그럴수록 그의 꿈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결국 오네시모는 단 하루를 살더라도 한 인간으로 그의 꿈에 도전해보고 나서 죽고 싶었다.

  그가 로마에서 바울을 찾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의 주인이었던 빌레몬을 통해서 오네시모는 오래 전부터 사도 바울을 알고 있었다. 그는 바울에게 도망친 이유에 대해서 솔직하게 고백했다. 노예의 신분으로 사는 것이 너무도 싫어서 도망을 친 것이 아니라, 그의 가슴에 불타는 꿈을 실현해 보고 싶어서 도망을 쳤다고 고백했다. 사도 바울은 그에게서 꿈꾸는 한 젊은이의 뜨거운 열정을 보았다. 사도 바울이 사람을 잘못 볼 리가 없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가리켜 “그는 내 아들이며, 나의 심복이다.”라고 했다. ‘심복’이란 “내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오네시모가 단순히 지친 노동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도망을 쳤던 노예가 아니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오네시모 또한 그의 주인 빌레몬을 향한 충성심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빌레몬에게로 돌아가라고 했을 때, 오네시모는 주저하지 않고 그의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파렴치한 노예였다면 결코 그의 주인에게로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오네시모는 사도 바울에게서 평생 잊을 수 없는 가르침을 받았다. 사도 바울 역시 그에게서 멋진 미래를 보았다. 그를 통해서 수많은 영혼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미래를 보았다. 바울은 오네시모가 한 주인을 섬기는 종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섬기는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야 할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바울은 확신을 가지고 빌레몬에게 말했다. 오네시모가 전에는 무익한 노예였지만, 이제는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는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다고 말했다. 오네시모에게 엄청난 영적 변화가 있었음을 말해 준다. 친필로 써내려간 바울의 편지는 점점 절정에 이르고 있었다. 오네시모가 돌아가면 그를 노예가 아니라 주 안에서 만난 한 형제로 영접해 달라는 부탁이 쓰여 있었다.

  오네시모는 그 편지를 가지고 귀가했다. 빌레몬의 집은 잠시 동안 큰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다른 노예들이 오네시모를 붙잡아 빌레몬 앞으로 끌고 와서 무릎을 꿇게 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에게 용서를 구했다. 그리고 바울의 편지를 전했다.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 빌레몬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바울의 마지막 말이 빌레몬의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내가 말한 것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 (20-21절)

  빌레몬은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는 오네시모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를 일으켜 세운 후, 오네시모에게 그의 깊은 포옹을 주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세상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노예가 형제가 될 수는 결코 없었다. 빌레몬이란 이름은 “사랑하는 자”란 뜻이었다. 오네시모란 이름은 “유익한 자”라는 뜻이었다. ‘사랑’과 ‘유익’이 하나가 된 것이었다. 두 사람의 용서와 화해는 많은 이들에게 기쁨과 모델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 누구도 깨트릴 수 없었던 높은 사회적 신분의 벽을 허물어트렸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는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 가 없었다.

  사도 바울과 빌레몬은 그처럼 한 젊은이의 삶이 아름답게 마쳐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그 당시 사회 관습대로 했다면 도망친 노예는 본보기로 처참하게 처형을 당했어야만 했었다. 그러나 오네시모는 구원을 받았다. 구전에 의하면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용서를 받은 후에 훌륭한 목회자가 되었고, 복음을 전파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를 당한 것으로 되어 있다. 비참한 최후로 끝났어야만 했던 도망자 노예의 죽음은, 그처럼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살다가 영광스런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인가! 그리스도의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는다.

  사람을 제대로 보고 키워주었던 사도 바울,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큰 용서를 주었던 빌레몬, 그리고 주의 복음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도 아끼지 않고 순교의 제물로 드렸던 오네시모. 훌륭한 영적 지도자, 훌륭한 그리스도인, 훌륭한 젊은이. 이런 사람 세 사람만 교회에 있다면 못할 일이 없다. 딸라에서, 나보타스에서, 일로일로에서, 미얀마에서 수많은 오네시모들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사도 바울, 빌레몬, 오네시모. 당신들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