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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십자가를 지고 (막 15:21-22)

양한갑님 | 2019.04.20 00:21 | 조회 514

다시 십자가를 지고

15:21-22

 

 


   마가복음 15:21절은 짧은 한 절이지만, 시몬이 누구였는지 그에 대한 중요한 정보들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첫째, 그는 구레네 사람이었습니다. 구레네는 지금의 북아프리카 리비아에 있던 도시였습니다. 둘째, 그의 이름은 시몬이었습니다. 그가 유대인이었다는 뜻입니다. 셋째, 그에게는 가족이 있었습니다. 아내가 있었고,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들들의 이름은 알렉산더와 루포였습니다. 넷째, 그는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갔던 사람이었습니다.

 

   시몬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구레네를 떠나, 알렉산드리아를 지나, 지중해 해안 도로를 지나, 예루살렘에 와 있었습니다. 먼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유월절인데 수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브라이도리온(Praetorium)을 향해서 뛰어갔습니다. (15:16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브라이도이온빌라도의 법정을 말합니다. 시몬은 거대한 인파에 떠밀려서 어느새 그곳까지 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십자가에 죽여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라!”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피를 흘리며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는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시몬 앞에서 쓰러졌고, 로마 군인들은 앞에 있던 시몬을 강제로 잡아 그 분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게 했습니다. 졸지에 당한 일이었습니다. 시몬은 그 분의 십자가를 지고 해골이라는 골고다까지 갔습니다. 그곳에 도착하자, 군인들은 시몬에게 너는 비켜!”하면서 그를 내쳤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또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라 즉시 그 형장(刑場)을 떠났겠지만, 시몬은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비록 잠시였지만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과 함께 비아돌로로사(Via Dolorosa: 고난의 길)로 올라오면서 시몬은 이미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로마 군인들이 그를 부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를 부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장소를 바꾸어 다메섹으로 가는 길로 가보겠습니다. 한 청년이 말을 타고 다메섹을 향해서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습니다. 사울이란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다메섹으로 피신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들을 체포하기 위해서 달려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에서 사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주여, 누구이십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니라.” 그 특별한 만남은 핍박자 [사울]이 부활의 증인 [바울]로 변화받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시몬에게 오셨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예수님이셨고, 청년 사울에게 오셨던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던 예수님이셨습니다. 그 시몬의 예수님과 바울의 예수님을 연결하면 어떤 그림이 나오겠습니까? 참으로 놀라운 일이 나오게 됩니다. 그 놀라운 일을 보기 위해서 다시 구레네 시몬에게로 가보겠습니다.

 

   예수님이 가셨던 고난의 길, 비아돌로로사(Via Dolorosa)에는 두 명의 시몬이 있었습니다. 한 시몬은 구레네 시몬이었고, 다른 시몬은 3년 동안 주님과 동행했던 베드로였습니다. 베드로의 본명은 시몬이었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께 이런 고백을 했었습니다.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26:33, 35) 그런데 그 시몬은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가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갔던 사람은 다른 시몬, 즉 구레네 시몬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참으로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시몬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보여주셨던 영광의 모습까지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곧장 구레네로 돌아가서 그의 아내와 두 아들에게 예루살렘에 있었던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가족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의 상황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처럼 심상치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시몬은 가족을 이끌고 안디옥으로 갔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눈을 크게 열고 봐야 할 일이 있습니다. 안디옥교회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바나바가 한 청년을 데리고 왔습니다. 사울이란 청년이었습니다. 실제로 구레네 시몬의 십자가와 사도 바울의 십자가가 그렇게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름을 개명한 바울은 안디옥교회에 출석하면서 구레네 시몬과 그의 아내와 깊은 사귐을 가졌습니다. 시몬과 그의 아내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서 생생하게 증언해 줄 수 있는 살아있는 마지막 증인(witness)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의 십자가 복음은 구레네 시몬과 그의 아내에게서 들은 생생한 증언이 그 기초가 되었을 것입니다. 특별히 시몬의 아내는 바울에게 영적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시몬의 아내를 자신의 영적 어머니이라고 말했습니다. 로마서 1613절입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사도 바울이 구레네 시몬의 가족을 자신의 가족처럼 여기며 깊은 영적 교제를 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시몬의 가족을 조금 더 따라가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려주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6장에서 구레네 시몬의 아들과 시몬의 아내에게 문안하라고 다시 한번 그 가족을 언급했습니다. 구레네 시몬의 가족이 안디옥교회를 떠나서, 바울보다 먼저 로마로 가서 로마교회를 개척하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자료입니다. 로마서는 바울이 AD 58년경에 기록해서 로마교회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실제로 로마로 갔던 해는 3년 뒤 AD 61년경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루포와 그의 어머니는 AD 58년 이전에 이미 로마로 가서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온 가족이 예수의 부활을 전하는 위대한 선교사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무엇이 구레네 시몬과 그의 가족으로 하여금 그처럼 위대한 생애를 살 수 있도록 했습니까? 그것은 의심할 바 없이 예수님의 부활이었습니다. 처음 십자가는 억지로 지고 가는 십자가였지만,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보니 지고 갔던 그 십자가는 영광이었음을 구레네 시몬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열 두 제자들에게 수차례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후에, 1호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랐던 제자는 12제자가 아니라, 바로 구레네 시몬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가장 부러워했던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실제로 지고 갔던 바로 구레네 시몬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구레네 시몬에게 배운 것이 하나있습니다. 십자가는 원래부터, 처음부터 [억지로] 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십자가를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처음부터 고난의 십자가를 환영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주신 십자가가 힘든 만큼, 무거운 만큼, 큰 만큼 천국에 이르면 받을 영광도 그 만큼 클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고 갈 때 아프면 아프다고 하십시오, 울고 싶으면 우십시오. 힘들면 힘들다고 하십시오. 그러나 더 이상은 못 지고 가겠다고 하지는 마십시오,

 

  사도 바울은 구레네 시몬으로부터 이런 증언을 들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피 묻은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라고 했을 때 너무 황당했었습니다. 수치스럽고, 모욕적이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고 갔던 그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못 박혀 죽으실 때, 제 가슴도 찢어지고 깨졌는데, 그 고통은 십자가를 지고 갈 때 보다 몇 십 배 더 컸었습니다. 그리고 삼일 후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던 예수님을 다시 만났을 때, 제가 그 분의 십자가를 지고 갔던 일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었는지 그 은혜를, 그 영광을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바울. 당신도 주님을 위해서 그 십자가를 끝까지 지고 가기를 바랍니다. 십자가를 지는 일은 영광입니다.” “, 시몬 선생님. 저도 그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가겠습니다.”

 

  구레네 시몬의 십자가는 그렇게 사도 바울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십자가는 부활 이전에만 필요했던 것이 아닙니다. 부활 이후에 더 필요한 십자가가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초대교회에 엄청난 박해가 시작되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끝으로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에서 그 그리스도인들의 흩어짐은 사람들의 이동이 아니라, [십자가의 행진]이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의 복음을 위해서 이미 그들의 목숨을 순교의 제물로 드리고, 십자가를 지고 땅끝을 향하여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증인이 된 우리가 땅끝을 향하여 [다시] 십자가를 지고 가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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