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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문제입니다. (삼상 7:5-11)

양한갑님 | 2019.05.01 01:52 | 조회 391

내가 문제입니다.

삼상 7:5-11




 

   제사장 엘리의 생애는 영적 지도자의 영성과 직분의 역할이 대중과 한 민족에게 얼마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하는지 잘 말해줍니다. 엘리는 간절히 기도했던 한나를 술 취한 여인으로 취급했습니다.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제사장이었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봉사했던 여인들과 동침했습니다. 사람들이 희생 제물을 가지고 오면, 하나님께 드리기 전에 자신들이 원하는 부위를 꼬챙이로 찍어서 마음대로 먹었습니다. 그들은 천박한 제사장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었던 이유였습니다.

 

   하나님은 블레셋을 일으켜서 그 경건치 못했던 사람들과 이스라엘을 치게 했습니다. 에벤에셀이란 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는데, 이스라엘 군사 4,000명이 전사했습니다. 살아남은 군인들이 제사장 엘리에게 전령병(傳令兵)을 보내어 하나님의 언약궤를 진지(陣地)로 가지고 오도록 요청했습니다. 엘리는 곧장 언약궤를 전쟁터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로 하여금 언약궤 옆에 서 있도록 했습니다. 나라의 운명이 걸린 중대한 사태였음을 직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대패(大敗)하고 말았습니다. 언약궤는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어갔고, 이스라엘 군사 30,000명이 전사했습니다. 그 전사자들 가운데 홉니와 비느하스도 있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엘리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다가 뒤로 넘어지면서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실로(Shiloh) 성막에서 40년 동안 제사장직을 감당했던 사람이었지만 그의 최후는 그렇게 비참했습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몰락이 아니라, 한 가족의 몰락이 아니라, 한 국가의 위기가 되었습니다.

 

   사무엘상은 또 한 사람의 비극을 전합니다. 비느하스의 아내입니다. 그녀는 임신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시아버지와 남편이 급사(急死)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아이를 조산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아들에게 이가봇이란 이름을 주고 죽었습니다. ‘이가봇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났다.”는 뜻이었습니다. (삼상 4:22)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그녀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패전(敗戰)의 원인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아서 패전한 것처럼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정말 그랬던 것입니까? 패전의 원인이 블레셋이 이스라엘 보다 더 강했기 때문이었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블레셋의 신 다곤(Dagon)의 능력보다 못했기 때문이었습니까?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짓밟았느냐?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삼상 2:29-30)” 근본적인 문제는 경건치 못했던 제사장들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적하신 대로 그들은 거룩한 제물을 짓밟고,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멸시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었던 진정한 이유였습니다.

 

   언약궤는 어디에 있어야만 했습니까? 지성소(The Most Holy Place)에 있어야만 했습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대이동을 할 때에는 성막을 해체했습니다. 그리고 언약궤는 대열 맨 앞에 위치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언약궤의 뒤를 따라서 이동했습니다. 그러나 민족의 이동이 멈추면, 언약궤는 반드시 지성소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리는 하나님께 허락을 묻지도, 허락을 받지도 않고, 전령의 말만 듣고, 대제사장의 직권(職權)으로 언약궤를 지성소에서 빼내 곧장 전쟁터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이 제사장이란 이유로 그 언약궤 옆에 서 있게 했습니다. 어떤 형식을 갖춘다고 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매주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리는 모양만 갖춘다고 해서 훌륭한 크리스천이 됐다고 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상을 만들지 말라 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성막 안에는 많은 성물(聖物)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을 일컫는 형상은 그 어떤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엘리는 그 언약궤를 우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뿐만 아니라, 블레셋 사람들까지 다 볼 수 있도록 언약궤를 지성소 밖으로 끌어냄으로써 언약궤를 보이는 하나님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언약궤가 진지(陣地) 안으로 들어왔을 때, 이스라엘 군인들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그 광경을 현대인 성경은 이렇게 전했습니다. 여호와의 법궤가 진지로 들어오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너무 좋아서 땅이 울릴 정도로 함성을 질렀다.” (삼상 4:5) 그들은 언약궤를 하나님이 오신 것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블레셋 군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언약궤를 직접 본 그들은 ()이 진영에 이르렀도다.”(삼상 4:7)라고 했습니다. 언약궤를 ()”이라고 말했습니다. 엘리는 그처럼 언약궤를 우상이 되도록 했습니다.

 

   언약궤를 탈취했던 블레셋 사람들은 그 언약궤를 신()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들의 신()인 다곤(Dagon) 신전에 함께 두었습니다. 미얀마 양곤에 가면 세계 최대의 황금 불탑(Pagoda)이 있습니다. 미얀마 사람들은 그곳을 쉐다곤(Shwe Dagon)이라고 합니다. 그 단어 속에 동일한 단어 다곤(Dagon)”이 있습니다. ‘다곤앞에 있는 단어 (Shwe)’는 버마(Burma) 말로 황금(Gold)”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쉐다곤’은 황금 다곤 신전이란 뜻이 됩니다. 그러나 미얀마 쉐다곤 신전이든, 블레셋 다곤 신전이든 그곳에는 더러운 우상들이 가득 넘치고 있었습니다. 거룩한 지성소에 있어야만 했던 언약궤가 그처럼 더러운 우상들과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영적 지도자의 엉터리 영성과 대제사장이란 직권을 남용했던 자만과 하나님의 성전을 자기 놀이터로 삼았던 두 아들의 추악한 행동과 제사장으로 성전에서 음행을 거침없이 저질렀던 비도덕적 사생활이 부른 처참한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엘리와 그의 가문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치욕적으로 사라져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삼상 5장은 엘리가 죽은 후에 있었던 대반전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언약궤를 다곤 신전에 둔 순간부터 블레셋 사람들에게 무서운 재앙이 임했습니다. 다곤의 머리가 땅바닥에 떨어져 언약궤 앞에 쓰러졌습니다. 블레렛 사람들은 그 머리를 주어서 제 자리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에는 다곤의 머리뿐만 아니라, 다곤의 두 팔까지 끊어져 땅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에게 무서운 전염병이 돌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덜덜 떨면서 당장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내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들은 최고의 예의를 갖춰서 하나님의 언약궤를 이스라엘에 자진 반납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도저히 감당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친히 하나님의 거룩한 것을 지키십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똑바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만나는 동네 어른이 아닙니다. 비느하스 아내는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서 시아버지가 죽었고, 남편도 죽었고, 언약궤까지 빼앗겼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사실(史實)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떠났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먼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런 비극이 일어나기 전에 하나님은 어린 사무엘에게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하셨더라.” (삼상 3:10-14)

 

   그처럼 사무엘은 모든 사실(史實)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사무엘만이 그 사건의 전모(全貌)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엘리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전역을 돌아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모든 우상들을 깨트리고,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나오라고 외쳤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민족을 [미스바]로 불러냈습니다. 사무엘은 그곳에서 회개의 금식 기도를 선포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알과 아스다롯 우상들을 깨트려서 버리고, 미스바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전쟁하기 위해서 미스바로 집결하는 줄로 착각하고, 선제공격을 해왔습니다. 그때 사무엘이 취했던 대응이 무엇이었습니까? 그 당시 블레셋이 반환했던 언약궤는 [기럇여아림]란 곳에 있었습니다. (삼상 7:1) 사무엘도 기럇여아림에 있는 언약궤를 미스바로 속히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까? 사무엘은 엘리가 아니었습니다. 사무엘은 블레셋 군인들이 공격을 개시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린 양 하나를 가지고 오게 했습니다.(삼상 7:9) 사무엘은 그 어린 양 한 마리를 온전한 번제로 하나님께 올려 드렸습니다. 그것이 제사장 사무엘이 행한 유일한 일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의 번제를 기쁘게 받으시고, 블레셋 진영에 큰 우레(천둥)”을 발하게 하셨습니다. 블레셋 군사들은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엄청난 우레 소리를 듣고 쓰러졌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군사들이 내려가 쓰러져 있는 블레셋 군인들을 모두 진멸시켰습니다. 이스라엘의 대승은 무기에 있지 않았습니다. 승리는 민족적 회개와 금식기도와 온전한 예배에서 나왔습니다.

 

   영적 지도자 한 사람의 깨어 있는 영성과 직분에 대한 올바른 역할이 한 민족을 살릴 수 있습니다. 엘리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언약궤까지 동원했지만 대패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양 한 마리로 대승을 거뒀습니다. 전쟁은 하나님께서 끝내주실 때 끝납니다. 만약 엘리가 살아있다면 이런 변명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제사장도 사람입니다.” 그 말에 우리는 그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제사장은 제사장다워야 합니다.” 인간은 다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못할 때마다 나도 사람이다.”라는 말이 변명이 될 수 없습니다. 목사도 사람이 맞지만 중요한 것은 목사는 목사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은 크리스천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느하스의 아내는 패전의 원인을 하나님께 떠넘겼습니다. 아들에게 줄 이름이 없어서 죽기 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이름을 주고 죽습니까? 시아버지와 남편만큼이나 미련하고 악한 여자였고, 자식이 평생 부끄러운 이름을 가지고 살도록 해주고 죽은 아주 나쁜 엄마였습니다. 그녀는 문제를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찾았어야만 했습니다.

 

   문제는 언제나 []입니다. 문제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지 않습니다. 내가 문제입니다. 엘리는 왕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아직 왕의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엘리는 이스라엘의 사사이며, 제사장이며, 왕이었습니다. 그 높은 자리에 40년 동안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최후는 40년 영화(榮華)를 무색(無色)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저 잘 먹고 잘 살았던 40년 추억으로 끝내고 죽었습니다. 사람은 끝이 멋있어야 합니다. 엘리에 비해 사무엘의 마지막은 영광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헌신해서 죽을 때까지 그는 성전(聖殿)의 사람으로 한결 같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도록 평생 기도하면서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삼상 12:23-24) 사무엘은 진실로 제사장다운 제사장이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결단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어떻게 우리의 생애를 끝내야 합니까? 엘리처럼, 그의 아들처럼, 그의 며느리처럼 살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이 축복이 아닙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 성공이 아닙니다. 우리의 끝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삶의 진정한 승리는 강력한 무기나, 남들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졌을 때 성취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승리와 아름다운 인생의 끝은 경건한 영성과 거룩한 삶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영적 리더인 목회자들부터 부끄러운 삶이 되지 않도록 똑바로 살아야 합니다. 성도들도 하나님 앞에 똑바로 서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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