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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갑주를 입고 (엡 6:10-20)

양한갑님 | 2020.05.18 02:39 | 조회 73

전신갑주를 입고  


6:10-20

 



 

   필리핀 마닐라는 518일 현재 64일째 봉쇄되어 있습니다. [격리]라는 단어가 답답함을 주지만, 다른 각도에서 그 격리를 [싸움]이란 단어로 바꿔보면 우리에게는 영적 긴장감을 줍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는 일도 힘든데, 지금 필리핀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들과 더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힘없는 시민들이 총에 맞아 거리에서 쓰러지고, 언론은 통제를 받고, 방송국은 폐쇄를 당했습니다. 서민들은 굶주림과 싸우고, 아이들은 작은 상자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비슷한 싸움을 사도 바울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로마 감옥에 갇혔고, 그의 자유는 억압당했습니다. 거기서부터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가끔 영적싸움에 대해서 말하고는 합니다. 그런데 영적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어떤 이는 "영적인 것"은 내 현실과는 거리가 먼 종교적인 이야기로만 취급해 버립니다. 내 눈에는 내가 처한 현실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 영적싸움이야말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현실적인 싸움으로 보았습니다. 12절입니다. “우리의 씨름(싸움)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라고 했습니다. 그가 처했던 모든 싸움을 악한 영들과의 싸움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의 앞에 선 사람들이 그의 대적자가 아니라, 그들 뒤에서 조정하는 악한 영들이 진짜 그의 대적자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옥중에서 담 밖에 있는 크리스천들에게 이 메시지를 보냈던 것입니다. 담 밖에 있는 제자들도 자신처럼 언젠가 예수의 복음 때문에 쇠사슬에 매일 날이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로 하여금 다가오는 영적 전투를 가장 리얼한 싸움으로 여기고, 그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잘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바울이 제자들에게 준비시켰던 무기는 하나님의 전신갑부였습니다. 바울은 그 이미지를 로마 군인에게서 가지고 왔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여섯 가지였습니다. 위에서부터 보면, 구원의 투구, 의의 흉배, 믿음의 방패,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의 검, 진리의 허리띠 그리고 평화의 복음을 전할 신발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단어들은 투구, 흉배, 방패, , 허리띠, 신발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주목했던 것은 구원, , 믿음, 하나님의 말씀, 진리 그리고 평화의 복음이었습니다.

 

   전쟁이 터지면, 로마 군인들은 제일 먼저 투구를 쓰고, 흉배를 붙이고, 방패를 잡고, 검을 쥐고, 허리띠를 차고, 신발 끈을 묶고 대장의 명령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전사들은 달랐습니다. 전쟁이 터지면, 그 전쟁을 영적 전투로 여기고, 그 어떤 환란과 핍박과 죽음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 구원의 확신과 하나님이 주신 의와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과 모든 악한 세력을 멸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변질될 수 없는 진리와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할 신발을 챙기고 대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대기]는 단순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기도 가운데 있으라는 뜻이었습니다. 18절입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라.” 또한 바울은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6:19-20) 이 마지막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사도 바울의 결론은 모든 싸움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그 점에 있어서 담 안에 있는 바울 자신이나, 담 밖에 있는 제자들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했습니다.

 

   어제도 딸라교회에서는 주일 예배를 열 번으로 나눠서 드렸습니다. 성도들에게 오늘 본문을 동일하게 주고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오늘이 격리 64일째가 되는 날입니다. 그러나 이 격리가 640일 더 연장된다 할지라도 구원과 믿음과 말씀에 대해서 조금의 의심이나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라고 증거했습니다. 지난 64일 동안 정부로부터 몇 번의 쌀 배급을 받았느냐고 물었습니다. 5킬로씩 두 번 받은 것이 전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도움이 컸다고 했습니다. 


   딸라 성도들은 여전히 배가 고픕니다. 그런데 그 배고픈 현실이 오히려 성도들의 영적 성숙과 성장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말씀을 증거하며 외쳤습니다. “비록 먹을 것이 없어도 구원받았음을 기뻐합시다. 비록 우리의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도 믿음을 주시고, 의를 주시고, 말씀을 주시고, 진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사도 바울처럼 이 어려운 상황을 오직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십시다.”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은 큰 목소리로 "아멘"했습니다. 아멘!” 소리는 코로나 이전에 있었던 아멘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고통스런 연단을 통해서 성도들의 믿음이 더 단단하게 된데서 나온 우렁찬 "아멘"이었습니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여전히 궁핍하지만, 그 궁핍을 통해서 우리는 믿음의 부요함을 얻었습니다. 그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혈과 육을 상대로 싸우게 되면 후회와 패배만 남게 됩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구원의 투구, 의의 흉배, 믿음의 방패, 말씀의 검, 진리의 허리띠, 복음의 신발로 무장해야 합니다. 쇠사슬에 매인 사도 바울이 담 안에서 무시로 기도했듯이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 역시 그 어떤 환경에서도 항상 기도할 수 있고, 항상 기뻐할 수 있고, 항상 감사할 수 있고, 항상 승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처럼.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바국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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