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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는 영광입니다. (마 24:9-13)

양한갑님 | 2021.07.04 13:19 | 조회 118

그러나는 영광입니다.


24:9-13


 

 

    인간은 똑똑합니다. 그래서 왕과 왕비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사람도 스스로 노예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똑똑한 사람들이 스스로 평생 노예가 되어 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종(둘로스:δουλος)들입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기원전 2333년에 환웅과 원래 곰이었던 웅녀 사이에서 단군이 태어나 고조선을 세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동시대(BC 2550)에 지구 반대편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가 건축되었습니다. 2000년 전, 신라와 고구려와 백제가 뛰어다니며 영토 전쟁을 하고 있을 때, 지구 반대편 로마에서는 검투장 콜로세움이 완공되었습니다. 거대한 피라미드 앞에 서면, 웅장한 콜로세움 앞에 서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콜로세움 로열석에는 황제가 앉아 있고, 아래 원형 경기장에는 노예들이 있었습니다. 황제의 엄지손가락이 올라가고, 내려가고에 따라 노예들의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그 경기장 한가운데로 그리스도의 종들이 끌려 나왔습니다. 예수를 부인하면 살 수 있지만, 예수를 시인하면 죽음이었습니다.


    다른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 이야기는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마르존 반 달렌(Marjon Van Dalen)이 쓴 이슬람이냐? 죽음이냐?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나이지리아에는 극단주의 무슬림 무장단체인 보코하람(Boko Haram)이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무슬림 무장단체 탈레반과 팔레스타인 무슬림 무장단체 하마스와 같은 기독교를 말살하려는 단체입니다. 어느 날, 나이지리아 보코하람 대원이 한밤중에 한 크리스천 가정집을 급습했습니다. 모두 복면을 했었습니다. 한 사람이 남편 하빌라에게 물었습니다. “당신 이름이 뭐요?” “하빌라 아다무입니다.” “나이지리아 경찰이요?” “아닙니다.” “국가 안전 요원이요?” “아닙니다.” “기독교인이요?” “그렇습니다. 나는 기독교인입니다.” 하빌라는 그 와중에 보코하람 대원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보코하람 대원은 하빌라에게 지금 나한테 당신처럼 기독교인이 되라고 하는 것이요?” “그렇습니다.” 보코하람 대원은 그의 아내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당신은 참 고집스런 남편을 두었구만.” 그리고 하빌라를 다시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하빌라, 당신은 지금 기독교인으로 죽을 준비가 되어 있소?” “그렇소.” 그 순간 총성이 울렸습니다. 하빌라의 머리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보코하람 대원들은 문을 발로 차고 나갔습니다. 아내는 하빌라가 죽은 줄로 알았지만, 하빌라는 살아 있었습니다.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았고, 1년 동안의 치료를 통해서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하빌라는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그날 저의 동네에서 보코하람 대원에게 살해된 크리스천은 모두 12명이었습니다. 저만 살아남았습니다. 그 이유는 지금 나이지리아 북부에서 기독교인들이 어떤 박해를 받고 있는지 세계 교회에 알리라고 하나님께서 저를 살려주셨다고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4:9, 13) 이 말씀 중에서 [그러나]라는 단어를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아시고 계셨습니다. 당신의 이름 때문에 제자들이 콜로세움 원형 경기장에서 사자의 밥으로 넘겨질 것을 아시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이름 때문에 당신의 제자들이 보코하람 대원들에게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을 아시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그 말씀을 하셨을 때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고, 얼마나 우셨을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뎌야 한다.” 우리는 그 [그러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어떻게 그 [그러나]를 받아드려야 합니까? 나는 똑똑한데, 나는 바보가 아닌데...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을 나에게 주시며 그러나...”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사람은 고비를 만나게 되면 본능적으로 피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소리칩니다. “하나님, 저에게 이러시면 곤란하시지요? 저에게 이러시면, 하나님께도 손해가 되실텐데요!” 그가 절박한 상황 속에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읽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이 말씀 한 가운데 있는 그러나를 두고 양쪽에 큰 두 글자가 보입니다. 왼쪽에는 환난이 보이고, 오른쪽에는 구원이 보입니다. 오른쪽에 있는 구원에 주목해 보겠습니다. 그것이 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예수를 믿습니까? 축복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구원 때문입니다. 우리가 환난을 받아도 왜 끝까지 견뎌야 합니까? 구원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그러나]는 우리를 버리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그러나]는 예수님께도 한계가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그러나]는 우리에게 주어진 환난에 대해서 예수님은 책임질 수 없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그러나]영광입니다. 요한계시록 2:10절 말씀입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그러나)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그처럼 [그러나]의 결과는 생명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그러나]는 용기였습니다. 요한복음 16:33절입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그러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이 기꺼이 종(δουλος)으로 산 이유였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종들이 주님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그들의 목숨을 바쳤던 이유였습니다.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 고난을 모르고 자란, 환난을 모르고 자란 우리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합니까? TV를 보다가 재미가 없으면 쉽게 채널을 바꿔버리듯이 교회는 재미없어!”하면서 다른 곳으로 튕겨 나가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직도 멀쩡한 옷인데 구식이라고 던져버리듯이, 교회에 가면 노인(구식)들만 있다고 발을 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직도 쓸만한 스마트폰인데 최신 모델이 출시되면 당장 그것을 손에 넣어야만 행복해하는 아이들처럼 나는 신세대에 맞는 종교로 갈아탈 거야!”하고 떠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잘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 키운 것입니다. “이것은 싫어? 알았어. 알았어. 이것이 좋아? 그래, 그래 사줄게. 울지 마.” 아이들을 [그래, 그래]로 키운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그러나]를 가르쳐야 합니다. “네가 이것을 좋아하고, 네가 이것을 원한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러나] 안돼!”라고 말해야 합니다. 부모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때는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아이들의 영혼을 악한 영들에게 넘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제 필리핀으로 돌아갑니다. 아마 어떤 성도들은 저에게서 큰 선물꾸러미를 기대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보다 부자인 선교사가 돌아오니, 코로나로 인해 가난해진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돈이 아니라 [그러나] 복음을 가지고 갈 것입니다. 코로나 19은 환난의 시작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지금보다 더 큰 환난이 오게 될 것이라고 외칠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외칠 것입니다. 지금보다 더 힘든 고난과 배고픔이 오게 될 것이라고 외칠 것입니다. [그러나] 더 강한, 더 담대한 크리스천이 되어야 한다고 외칠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러나]는 우리를 그 어떤 환난 가운데서도 함차게 다시 일어나게 하는 용기이며, 영광이며, 구원이라고 외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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