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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가져온 사람 (요 4:3-26)

양한갑님 | 2021.07.18 06:23 | 조회 59

빛을 가져온 사람


4:3-26

 




    요한복음에도 놀라운 이야기들이 넘칩니다. 사도 요한이 그 이야기들을 몇 절로 요약해서 소개했는지 보겠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이야기는 11절로, 니고데모의 이야기는 15절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이야기는 9절로, 오병이어 이야기는 14절로, 물 위를 걸으신 이야기는 6절로, 간음한 여인을 살려주신 이야기는 11절로, 소경을 고쳐주신 이야기는 12절로,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여인의 이야기는 8절로 소개했습니다. 한 이야기 당 평균 10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4배가 넘는 분량으로 소개한 두 이야기가 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이야기는 46절로, 오늘 본문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는 42절로 소개했습니다. 그만큼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 속에는 귀중한 메시지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 무게를 안고 오늘 본문을 보겠습니다

 

1) 주인공은 사마리아 여인이었습니다.

    갈릴리와 예루살렘 중간에는 산악지대가 있습니다. 그곳이 사마리아입니다. 유대인에게 사마리아는 부정한 땅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부정(Unclean)’은 먹을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가까이 접근할 수도 없는 금기였습니다. 사마리아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앗시리아 제국에게 멸망하면서(BC721년), 자연히 앗시리아인과 혼인하게 되었고, 그들 사이에서 혼혈아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 혼혈아들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인정할 수 없는 부정한 집단으로 규정하고 경멸했던 것입니다.

 

2) 장소는 야곱의 우물이었습니다.

    야곱이 형과 화해하고, 세겜으로 갔습니다. 야곱이 어떤 생각으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얍복강에서 고향이 있는 남쪽으로 내려가지 않고, 북쪽 세겜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세겜 왕에게 100 크시타(Kesita)를 지불하고, 세겜으로부터 약 2.4km 떨어진 땅을 구입해서 그곳에 장막을 쳤습니다. (33:19) 크시타(Kesita)는 은전이었는데, 1 크시타로 한 마리 양을 살 수 있었습니다. 야곱은 그곳에 우물을 팠습니다. 4000년이 지난 지금도 시원한 생수를 마실 수 있는 우물로 잘 보존이 되어있습니다. 넓이가 2.4미터이고, 깊이는 50미터입니다. 야곱은 그 땅을 요셉에게 주었습니다. (4:5) 그래서 먼 훗날,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후대 사람들은 요셉의 유골을 애굽에서 가져다가 그 요셉의 땅에 안치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야곱의 우물 옆에 요셉의 무덤이 있습니다. (24:32) 야곱의 우물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65km 지점에 있었고, 왼쪽으로는 그리심 산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에발산이 있었습니다. 수가(Sycar)라는 동네는 그리심 산 아래에 있었고, 야곱의 우물은 그 동네로부터 약 200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3) 남편이 많았던 여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남편을 불러오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함께 사는 남자가 있었지만 나는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분명히 예수님도 사마리아 여인도 남편이라고 말했습니다. 1:16절에서 동일한 단어를 찾습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2:36절에서도 동일한 단어를 찾습니다. “안나가 결혼 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가 되었고라고 했습니다. 그때 사용된 헬라어들은 동일하게 결혼한 남편을 가리키는 안드로스(ἀνδρός)였습니다. 고대 사회에는 일부다처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인이 많은 남편을 가질 수 있는 일처다부제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 여인이 어떻게 해서 여섯 명의 남편을 갖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에게는 매우 특별한 사연이 있었음을 암시해 줍니다. 

 

4) 제 육시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요한은 이 이야기 속에 시간을 명시했습니다. 요한이 모든 이야기에 시간을 명시하지는 않았습니다. 시간이 명시되었던 일들은 특별한 일들이었습니다. (1)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에게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말하고, 제자 중에서 요한과 안드레를 예수님께 보냈습니다. 그때 시간이 10시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1:39) (2)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가나로 이동하셨습니다. 그런데 왕의 신하가 가나까지 쫓아와서 그의 아들이 죽어가고 있으니 당장 갈릴리로 돌아가서 아들을 살려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아들이 건강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왕의 신하는 그 말씀을 믿고 갈릴리로 돌아갔는데, 집에 도착하기 전에 길에서 그의 종들을 만났습니다. 종들은 그의 아들이 살아났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의 아들이 언제 자리에서 일어났느냐고 물었고, 종들은 어제 7시였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바로 그 시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30km나 떨어진 가버나움에 있던 아들이 살아났던 것입니다. (3) 그 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여러 시간들이 명시되었습니다. 의미가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사마리아 여인이 야곱의 우물에 왔을 때 시각이 육시(정오 12)였다고 하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만남이 과연 우연이었을까요?

    이제 이 이야기를 종합해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올라가시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에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길로 가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유대인이라면 절대 가지 않는 사마리아 땅을 관통해서 가시겠다고 하셨습니다. (4:4) 제자들은 갈릴리에 무슨 급한 일이 있으신가 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의 결론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를 통과하려고 하셨던 것은 갈릴리에 급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전에 남편이 다섯 있었고, 지금 사는 남자는 남편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본문은 자세한 설명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녀의 과거에 대해서 더 알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께서도 거기에서 멈췄기 때문에 우리도 거기에서 멈춰야 합니다. 대신 이 이야기 속에서 놀라운 단어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선물이란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그녀를 위해서 하나님의 선물을 가지고 가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4:10) 하나님의 선물이란 한 번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라고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5:23절을 보겠습니다.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그때 모세가 한 나뭇가지를 마라에 던졌을 때 쓴물이 단물이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삶이 그 '마라'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뭇가지를 그녀에게 던지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나뭇가지를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주신 하나님의 선물 즉 생수를 마신 후에 사마리아 여인은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넘쳤습니다. 마라처럼 쓴물 인생이 하나님의 선물처럼 단물 인생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기쁨 뒤에 사마리아 여인은 가슴 속 깊숙이 묻어두었던 질문을 꺼냈습니다. 예배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녀가 고통을 당할 때마다 그리심 성전으로 나아가 기도를 드리고, 예배를 드렸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녀의 가슴에는 시편 13:1-3절에 있는 답답함이 넘쳤습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옵니다.” 그녀는 예배를 드릴수록 가슴이 답답해졌던 그 이유를 알고 싶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죄 많은 여자가 드리는 기도였기 때문일까? 묻고 또 묻어도 시원한 대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질문을 받으시고 답을 주셨습니다.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 때에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하면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으시느니라.” (4:21, 24) 사마리아 여인의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게 되었습니다. 문제를 해결받은 사마리아 여인은 물동이를 힘차게 던져버리고, 수가 성으로 달려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며, 메시야이심을 힘차게 선포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만난 후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는 북아프리카 카르타고(Carthago)로 가서 복음을 3년 동안 전하다가 그곳에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그녀를 통해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이 그녀에게 영광스런 이름을 주었습니다. '포티나(Photina)'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빛을 가져온 사람이란 뜻이었습니다.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개망나니 아들을 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우수한 대학까지 나온 수재였는데 그녀의 아들은 탕자가 되어 막살았습니다. 어머니는 날마다 성전에 엎드려 아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결국 그 탕자가 변하여 성자가 되었습니다. 모니카 이야기였습니다. 탕자였던 성 어거스틴의 이야기였습니다. 모니카가 살았고, 어거스틴이 대학을 다녔던 곳. 그곳이 사마리아 여인, 포티나가 말씀을 전하고 순교했던 바로 그 카르타고(Carthago)였습니다. 모니카에게 감동을 주었던 사람이 순교자 사마리아 여인, 포티나였다고 말한다면 너무 과장된 말이 될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포티나와 모니카 사이에는 단 200년 차이 밖에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카르타고에 살면서 모니카는 사마리아 여인, 포티나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사마리아 여인의 삶과 만난 이후 그녀의 삶은 완벽하게 달라졌습니다. 포티나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과거에 매어 살지도 않았습니다. 더 이상 그 어떤 남편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누구의 아내가 아니라, 예수님의 종이 되어 그녀의 남은 삶 전부를 드리고 살았습니다. 그녀는 카르타고까지 가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외치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주님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새벽부터 달려가서 하셨던 일은 그처럼 놀라운 일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빛을 가지고 땅끝까지 나아갈 종들을 찾으십니다. 여러분이 그 빛을 가지고 갈 그 다음 포티나(Photina)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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