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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타고 달려가라. (렘 12:5)

양한갑님 | 2021.07.23 04:01 | 조회 99

말을 타고 달려가라.


12:5

 



   오늘은 말콤 펜윅(Malcolm C. Fenwick, 1863-1935)선교사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펜윅은 캐나다 온타리오 출신으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습니다. 농촌에서 농사와 원예 일을 하면서 자랐습니다. 어느 날, 나이아가라 부흥회에 참석했는데, 강사는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였습니다. 중국에서 일어났던 선교 이야기를 들을 때, 펜윅의 가슴이 너무 뜨거워졌고, 그는 그의 삶을 선교사로 들이기로 헌신했습니다. 18897. 26살 때 일이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뒤, 캐나다 교회들 앞으로 긴급한 기도 제목 하나가 도착했습니다. 한국으로 파송되었던 존 헤론(John Heron) 선교사가 복음을 전하다가 체포되어 사형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것은 오보였습니다. 제중원에서 의사로 일했던 헤론 박사가 과로로 거의 죽게 되어 기도해달라는 요청이었는데, ‘거의 죽게 되었다.’는 말이 사형이란 말로 와전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캐나다에서는 그것이 오보인 줄을 모르고 열심히 기도했고, 펜윅도 헤론 선교사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그 핍박의 땅, 한국으로 자신도 보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4개월 후, 후원교회도 없이, 파송 단체도 없이 무작정 배를 타고 한국으로 갔습니다. 그는 신학 공부를 한 적도 없었고, 선교사 훈련도 받은 적도 없었고, 목사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평범한 농사꾼 출신 평신도 청년이었습니다.

 

   18891211일에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한국의 겨울도 캐나다만큼 추웠을 것입니다. 펜윅은 황해도 소래로 갔습니다. 그곳에 같은 캐나다 출신 맥킨지선교사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소래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원산으로 갔습니다. 외국 선교사로서 원산으로 들어간 선교사는 펜윅이 처음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선교하고 있을 때, 캐나다교회로 부터 들어오라는 통보를 받고 1893년에 캐나다로 돌아갔습니다. 펜윅은 캐나다에 3년 동안 머물면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런 후에 다시 원산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때부터 펜윅이 이룬 업적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다 열거할 수가 없지만 몇 가지만 말씀드립니다.

 

   그는 산골 오지 마을까지 찾아가 복음을 전하고 그곳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는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원산에 대규모 농장을 개간했습니다. 개척되는 교회들도 선교사의 후원 없이 처음부터 자급자족한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펜윅은 북방선교를 최우선 선교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것은 한국초대교회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었습니다. 북방선교를 위해서 한국순회선교회(The Korean Itinerant Mission)’를 조직하고, 원산에 본부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로 헌신했던 후보생들을 2년 동안 훈련 시킨 뒤에 파송했습니다. 1906년 한태영, 유내천, 이자삼, 장봉이, 이장운을 북간도로 파송했고, 그 이후에는 만주, 시베리아. 몽골까지 한인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1900년대 한국에 왔던 내한 선교사들 가운데 한국인을 선교사로 파송한 선교사는 펜윅뿐이었습니다. 그는 한국 국내에 200여 교회를 세웠고, 250명의 사역자를 배출했습니다. 펜윅은 46년 동안 한국을 떠나지 않고 모든 사역을 마치고, 72세로 원산에서 그의 생을 마감했습니다. 펜윅은 한국 목회자들이 자급자족하는 교회를 세우도록 했던 자비량 선교의 개척자였고, 두메산골까지 찾아가서 교회를 세운 오지 선교의 개척자였고, 북간도, 시베리아, 만주, 몽골까지 선교사를 파송했던 북방선교의 개척자였습니다. 그가 남긴 유언은 내 무덤은 봉분하지 말고, 평장으로 하십시오.”였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높임을 받으시고, 자신의 존재는 철저히 지우려고 했던 겸손한 종이었습니다. 한국교회가 그처럼 위대한 선교사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 축복이었습니다. 통일이 되면 말콤 펜윅이 잠든 그 원산을 꼭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펜윅에게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도 큰 고통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무시를 당하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에 파송되었던 미국 장로교회와 미국 감리교회 선교사들의 대부분은 중산층 이상 부유한 집안의 자제들이었고, 명문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의사, 교육가, 목사들이었습니다. 그들에 비해 캐나다 청년 펜윅은 농사만 아는 농사꾼이었습니다. 펜윅이 가졌던 최고의 사회 경력은 토론토에 있던 한 철물상 창고 관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늘 무시를 당했는데, 더 큰 사건이 터졌습니다. 펜윅의 편지 사건이었습니다.

 

   나이아가라 사경회에서 은혜를 받고 자비량 선교사로 한국으로 간 청년이 있다는 말을 들은 캐나다 사람들은 펜윅을 후원하자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펜윅을 위한 [한국연합선교회]가 조직되었고 매월 선교비를 보내주었습니다. 그래서 펜윅은 선교 보고와 감사 편지를 선교회 회장 제임스 브룩스(James Brooks)에게 보냈는데, 그 편지가 화근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편지 내용 중에는 한국에서 선교하고 있던 그 유명한 언더우드 선교사에 대한 언급이 있었습니다. 펜윅은 언더우드가 미국을 방문해서 선교 보고할 때 언더우드 자신이 소래에 가서 삿갓 쓴 양반 100명에게 세례를 베풀었다고 보고하며 다닌다는 말을 듣고 진실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펜윅이 한국에 가자마자 소래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는 소래교회의 역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언더우드가 소래를 방문했던 적은 있었지만, 100명에게 세례를 준 적은 없었기 때문에 소래에서 그런 일은 없었다고 말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펜윅의 선교편지를 펜윅의 동의도 없이 회장 제임스 브룩스가 한 선교 잡지에 게재했습니다. 그것은 언더우드에게는 치명적이었습니다. 상황이 점점 커지자 펜윅을 후원했던 카나다 선교회가 펜윅을 카나다로 소환했던 것입니다. 선교회는 동료 선교사의 일을 사랑으로 덮어주지 못하고 폭로했다는 이유로 후원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결별 통보를 펜윅에게 보냈습니다. 농촌 선교사는 그렇게 다시 짓밟혔습니다.

 

   그때 펜윅이 그 상처를 이기지 못하고 한국 선교를 중단했다면 한국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후원회로부터 결별 통보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면 북간도, 만주, 시베리아, 몽골 선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런데 펜윅은 원산으로 돌아갔습니다. 후원 없이 돌아갔기 때문에 그가 제일 먼저 시작했던 일이 농장을 개간해서 자급하는 선교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원산으로 돌아가서 한국 복음화를 위해서 그의 전 생애를 바쳐 준 말콤 펜윅에게 그래서 감사할 뿐입니다.

 

   예레미야가 그랬습니다. 그는 혼자 싸우는 외로운 선지자였습니다. 예레미야는 남왕국 사람들에게 그들의 범죄로 인하여 바벨론 제국에게 멸망 당하고 70년 동안 포로로 살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러자 자칭 선지자라 하는 자들이 부들부들 떨면서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남왕국을 그렇게 버리실 리가 없다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예레미야가 거짓 예언을 하고 있다고 맹비난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거짓 예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민중은 거짓 예언을 믿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과 우매한 민중은 예레미야를 죽이기 위해서 하이에나 무리처럼 똘똘 뭉쳤습니다. 그것을 보고 예레미야가 잠시 흔들렸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예레미야 125절입니다. “예레미야야, 네가 사람들과의 경주에서 이렇게 피곤해하면, 앞으로 말들과는 어떻게 경주하겠느냐?” 그 말씀의 의미는 이제 시작인데, 달리기도 전에, 이렇게 흔들리면 더 큰 공격이 올 때에는 어떻게 그 싸움을 감당하려고 이처럼 피곤해 하느냐?”라는 뜻이었습니다. 어떻게 들으면 책망하시는 말씀 같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의 격려가 넘치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적들이 하이에나처럼 몰려와도 주저앉거나, 두려워하거나, 물러서거나 하지 말고, 담대히 일어나 그 적군의 심장부를 향하여 힘차게 뚫고 나아가라는 하나님의 격려였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랬었습니다. 하나님은 흔들리는 예레미야에게 힘을 주신 후에 치열한 싸움이 있는 격전지로 당신의 종을 다시 보냈던 것입니다. 흔들리지 말고, 일어나 말을 타고 달려가라!”

 

   저는 이 마지막 설교를 탑승 전, 인천공항에서 올리고 필리핀으로 돌아갑니다. 말콤 펜윅이 귀국해서 3년 동안 영적 재충전을 하고,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원산으로 다시 돌아갔듯이, 그 펜윅의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저도 필리핀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코로나와 쿠데타로 우겨 쌓임을 당하고 있는 필리핀과 미얀마 성도들을 위해서 예레미야의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큰 전쟁터로 다시 돌아갑니다. 1년 동안 매주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나눌 수 있었던 시간들은 저에게도 큰 은혜였습니다. 필리핀에서 다시 소식을 드릴 때까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하심이 여러분과 섬기시는 교회 위에 늘 충만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다시 한번 모든 분들께 인사드립니다. “정말 감사했었습니다.”

 

예레미야야, 네가 사람들과의 경주에서 이렇게 피곤해하면,

앞으로 말들과는 어떻게 경주하겠느냐?

네가 안전한 땅에서 이렇게 비틀거린다면,

요단의 거친 숲은 어떻게 뚫고 가겠느냐?” (NIV)

(예레미아 12:5)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늘 함께 하시겠다는 격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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