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음식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시니강(Sinigang)이다. 나를 위해서 준비하는 음식이라면 이제 필리핀 자매들은 물어보지 않고 시니강을 준비한다. 시니강은 우리나라 탕 종류의 음식과 같다. 돼지를 넣고 만든 시니강, 새우를 넣고 만든 시니강, 생선을 넣고 만든 시니강. 주 재료에 따라서 이름이 달라진다. 좋아하는 주 재료 하나를 택한 다음 토마토, 양파, 미나리, 무우, 가지, 고추, 토란 등을 넣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타마린(Tamarind)이란 열매를 넣는다. 시니강의 독특한 맛은 시큼한 맛에 있다. 그 신 맛을 내게 하는 것이 바로 타마린이란 열매이다. 처음 시니강을 먹어보는 사람은 그 시큼한 신 맛 때문에 음식이 상한 줄 알고 삼키지 못하고 뱉고는 한다.

20년 전 필리핀에 처음 왔을 때 입에 맛는 음식을 찾지 못해 외출할 때마다 애를 먹고는 했었다. 그러던 중 시니강을 맛보게 되었다. 첫 숟가락을 입에 넣고 빼기도 전에 입에서 "캬아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오래 묵은 신 김치 찌게 맛과 너무도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내 말만 믿고 먹었다가 믿을 사람 하나도 없다고 하면서 수저를 내려놓았었다. 필리핀에 오시는 손님들에게 나는 지금도 고집스럽게 시니강을 권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필리핀 음식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그런데.... 손님들의 얼굴들이 영 편치 못하다. 역시 시니강은 나만 좋아하는 음식이 분명한 것 같다.

나는 시니강을 먹을 때마다 옛날 생각이 난다. 어떻게 해서든지 필리핀에 정을 붙여보려고 필리핀 음식 속에서 한국의 맛을 찾으려고 했던 내 자신을 기억해 보고는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시니강을 필리핀 음식으로 먹지 않는다. 오래 묵은 한국 신 김치 찌게라고 생각하고 먹는다. 그러면 이 땅 필리핀에서 사는 일이 외롭지 않게 된다. "엇! 필리핀 사람들도 나처럼 신 김치찌게를 먹고 사네!" 시니강은 그처럼 우리를 하나되게 한다. 오늘 저녁은 시니강으로 해결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