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사순절

갈 2:20

    2월 14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순절은 오는 3월 31일까지 부활절 전 날, 6주(40일)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깊이 묵상하며, 회개와 용서를 구하며 경건히 지내는 기간입니다. 그 사순절에 대해서 들었지만, 사순절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지 않고 평범하게 보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사순절을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2001년 9월 11일. 알카에다 테러범들에 의해서 맨해튼 세계무역센터가 처참이 무너졌습니다. 전 세계가 큰 충격에 빠졌고, 오랜 기간 동안 수천 명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애도 속에 있었습니다. 그 뒤에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에 천안함 피격 사건이 있었고, 2014년에는 세월호 침몰 사건이 있었고, 2022년에는 이태원 압사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많은 사람이 희생자들을 깊이 애도했습니다. 며칠 전에 필리핀에서 15년 이상 친구로 지내고 있는 자매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현직 필리핀 판사입니다. 2주 전에 갑자기 남편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서 특별한 저녁을 준비하고 초대했습니다. 변호사인 딸도 함께 나왔습니다. 아내가 주차장에서 그들을 기다렸습니다. 잠시 후, 차에서 내린 아이린(Irene) 자매는 아내를 부둥켜안고 한참 동안 흐느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안에서 저를 보자마자 그녀는 다시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남편과 사별한 지 2주가 지났지만, 그녀는 여전히 검정색 옷을 입고 있었고, 남편을 사무치도록 잊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제 마음도 아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가 사고를 당하셨습니다. 우리 때문에,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를 살려주기 위해서 대신 모욕과 천대와 멸시를 받으셨고, 급기야 십자가에서 처형되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죄 없으신 분이 죽으셨습니다. 그 분의 죽음을 어찌 9.11에 비교할 수 있고, 세월호, 천안함, 이태원과 남편을 잃은 한 부인의 슬픔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서 일어나는 충격적인 사건들 앞에서도 수 개월 혹은 수년 동안 애도의 기간을 정하고 엄숙히 보내는데, 하물며 우리를 대신해서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40일 동안 애도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순절은 단순히 애도의 기간은 아닙니다. 십자가 앞으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은혜의 기간입니다. 죄를 씻는 정화의 기간입니다. 순결을 회복하는 거룩한 기간입니다. 깜빡 놓치고 살았던 것들을 다시 챙기는 기간입니다. 무너졌던 원칙과 기준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기간입니다. 영적인 각성이 일어나는 기간입니다. 영적인 성장이 있는 기간입니다.

    우리는 가끔 이런 인사를 주고받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픈 데는 없고요?” “네, 건강합니다.” “하시는 일은 잘 되고요?” “다 괜찮습니다.” 등등. 그런데 다시 묻습니다. “정말 잘 지내고 있습니까? 정말 건강합니까? 정말 괜찮습니까?” 또 다시 묻습니다. “우리는 정말 제대로 가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정말 똑바로 살고 있는 것입니까?” 더 무거운 질문을 드립니다. “하나님 앞에서 당신은 정말 잘 지냅니까? 하나님 앞에서 당신은 정말 건강합니까? 하나님 앞에서 당신은 정말 괜찮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당신은 정말 오케이입니까?” 그 질문들 앞에서 약간의 주저함이 있다면 우리는 이 사순절에 우리 자신을 정직하게 뒤돌아봐야 합니다.

    사순절의 최종 목적지는 자기 성찰을 위해서 산으로 올라가 좌정하는 산 정상에 있는 큰 바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불교가 찾는 목적지입니다. 사순절의 최종 목적지는 예수님의 부활이 있었던 빈 무덤입니다. 사순절이 끝나는 시간은 부활절 새벽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순절은 환희의 시간, 승리의 시간, 영광의 시간을 향해서 나아갑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부활의 주님을 향해서 나아갑니다. 천국을 향해서 나아갑니다. 그래서 사순절은 천국으로 가는 순례자의 길이 됩니다. 그러므로 40일 동안 즐기던 드라마도 끊고, 세상 가요도 부르지 않고, 사교 모임도 줄이고, 좋아했던 음식도 절제하고,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성경 보고, 더 많이 예배하고, 더 많이 봉사하고, 더 많이 사랑하면서 살다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한 노인이 긴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습니다. 평상시 아내를 힘들게 했던 노인이었습니다. 의사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준비하십시오,” 노인 역시 그의 마지막 시간을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죽기 전에 한 가지 꼭 하고 싶은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평상시 좋아했던 초콜릿 쿠키를 실컷 먹고 가고 싶었습니다. 그의 아내가 그것을 알았을까요? 아내가 부엌에서 초콜릿 쿠키를 맛있게 굽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다리고 기다려도 쿠키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노인은 온 힘을 다해 침대에서 일어나 흔들리는 몸으로 부엌으로 갔습니다. 식탁 위에는 막 구운 구수한 초콜릿 쿠키가 가득 놓여 있었습니다. 노인은 흔들리는 손으로 쿠키 하나를 겨우 잡았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그의 아내가 큰 소리를 쳤습니다. “당장 내려놓지 못해요. 당장!” “여보~~~ 하나만....” 아내가 다시 차갑게 말했습니다. “좋은 말 할 때 당장 내려놓으세요. 그 쿠키는 내일 당신 장례식 때 쓰려고 구은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그런 황당한 대접을 받지 않으려면 평상시에 잘 했어야만 했습니다. 사순절이 주는 가르침이 바로 그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 앞에 섰을 때 그 노인처럼 황당한 구박을 받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주님께 잘 해야 합니다. 주님께 사랑 받는 신부가 되려면 이 사순절 기간에 우리 자신을 철저히 돌아보면서 우리가 누구였는지, 잘못한 것은 없었는지 뒤돌아보아야 합니다. 혹시 그 노인처럼 누군가에게 큰 상처와 잘못을 했다면 죽기 전에 그들과 화해하고, 그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우리 역시 누군가를 용서하면서 주님 앞에 서는 날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닫힌 것은 열고, 맺힌 것은 풀고, 무너진 것은 세우고, 부서진 것은 고치는 일들을 해야 하니, 사순절은 우리에게는 가장 바쁜 기간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순절에 우리는 우리 안에 숨어 있는 타인들을 철저히 찾아내야 합니다. 내가 아닌 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나를 철저히 찾아내야 합니다. 변명하는 그의 입장을 옹호하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단호하게 끊어내야 할 [타인]으로 취급해야 합니다. 도저히 살려둘 수 없는 [존재]로 처리해야 합니다. 죽여야 합니다. 무섭지요? 그런데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을 그렇게 철저히 [타인]으로 취급하고 그를 잔인하게 처리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이것이 사도 바울의 사순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