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꼽사리

눅 8:43-48

 혈루증에 대해서

    〈성경 속 의학 이야기〉의 저자 이종훈박사는 성경에 있는 혈루증을 현대 의학으로 번역하면 ‘자궁 출혈’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혈루증’ 혹은 ‘유출병’은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무서운 정죄를 받았던 [부정함]의 상징이었습니다. 레위기 15장 전체에 기록된 혈루증에 관한 율법의 규정을 보면 숨이 막힐 정도로 너무 가혹한 처벌이 있었습니다. 여성의 월경도 부정한 것으로 여겨 7일간 격리해야만 했는데, 비정상적인 출혈이 계속될 경우 그것을 질병으로 보지 않고 [부정함]의 연속으로 취급했습니다. 레위기에서 언급된 [부정함]은 곧 하나님의 징벌이었습니다. 그래서 혈루증 환자가 누웠던 침상도 부정했고, 부주의로 다른 사람이 혈루증 환자가 앉았던 자리에 앉게 되면 그 사람 역시 [부정한 사람]으로 정죄를 받았습니다. 즉 성경에서 혈루증은 지금의 코로나처럼 [부정함]을 전염시키는 악성 전염병으로 취급했습니다. 그래서 혈루증 환자들은 사람들에게 절대 접근할 수 없게 했고, 본인 또한 철저히 자기 자신을 [격리] 속에 감금해야만 했습니다. 죄인으로 분류된 혈루증 환자들은 당연히 성전에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처럼 혈루증은 저주받은 자의 표식이었습니다.

혈루증 여인

    그 혈루증으로 고통받고 있었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의 이야기는 마태복음 9:20-22, 마가복음 5:24-34, 누가복음 8:43-50에 실렸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세 복음서가 각각 혈루증 여인에 대한 다른 정보를 독점적으로 제공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자료들을 하나로 통합해서 보면 혈루증 여인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재편집될 수 있습니다.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앓고 있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병을 고치기 위해서 많은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가진 돈을 다 썼지만, 병은 더 악화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있는 곳으로 예수님이 가까이 오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녀는 자신의 격리 구역을 뚫고 거리로 나갔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려면 그 두꺼운 인간장벽을 뚫고 가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에게 [부정함]을 뿌리며 가야만 했던 위험한 도발이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을 부정함에 빠트리는 이기적인 질주가 될지라도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다른 선택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최대한 가까이 예수님께 접근했지만 감히 예수님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뒤로 살짝 다가가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조용히 잡았습니다. 그리고 신속히 손을 뺐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예수님의 옷자락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발걸음을 멈춰 섰기 때문이었습니다. 혈루증 여인 역시 순간 숨을 쉬지 못했고, 그녀의 몸도 순간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주여, 보십시오. 많은 사람이 주님을 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다. 내게서 능력이 나갔다.”라고 하셨습니다. 혈루증 여인은 더 낮은 자세로 몸을 숨겼습니다.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땅에 엎드렸습니다. 땅을 파고 숨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때 그녀를 더 소름 돋게 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조금 전까지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아우성을 쳤는데 그 엄청난 소리가 갑자기 멈췄기 때문이었습니다. 고요함과 정적이 흘렀습니다. 그녀는 얼굴을 땅에 댄 채로 생각했습니다. “뭐지? 왜 이렇게 갑자기 조용한 거야?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그녀는 감았던 눈을 조용히 떴습니다. 그녀의 코앞에 멈춰 서 있는 두 발이 보였습니다. 주님의 발이었습니다. 그녀는 주님이신 것을 확인하고 순간 무릎을 꿇고 두려움에 떨면서 자신이 [부정한 여인]임을 실토했습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그녀로부터 멀리 물러섰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녀는 건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혈루증 여인의 이야기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끼어들기로 파고 들어가 기적을 따낸 [꼽싸리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비키시오. 비키시오.” 한 남자가 크게 외치면서 밀집된 군중 속에서 길을 내고 있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였습니다. 그는 죽어가는 딸을 살리기 위해서 회당장이란 사회적 신분을 내던지고 예수님께 매달렸습니다. “주여, 죽어가는 제 딸을 살려주십시오. 자비를 베푸소서.” 그는 결국 예수님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야이로의 입장에서는 1분의 지체도 없이 예수님을 그의 집으로 모시고 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갑자기 멈춰 섰습니다. 예수님의 발목을 붙잡았던 사람은 다름 아닌 혈루증 환자였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그 병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율법주의자였습니다. 그때 야이로가 예수님께 기대했던 반응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이 부정한 자여, 어찌 네가 감히 나를 만졌느냐? 너는 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더냐? 당장 물러가라!”라고 내쳐주실 것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야이로의 입에서 “헉!” 소리가 났습니다. 예수님은 그녀를 [부정한 자]로 정죄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딸]로 삼아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처럼 놀랍습니다.

    정리합니다. 이 이야기 속에는 예수님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서 두 사람이 예수님을 차지하기 위해서 자기 쪽으로 힘차게 끌어당기는 이기적인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야이로는 자기 딸을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을 끌어당기고, 여인은 12년 된 혈루증을 치유 받기 위해서 예수님을 끌어당기고 있었습니다. 먼저 혈루증 여인을 보겠습니다. 그녀는 [접근 불가]라는 격리 사슬을 끊고 군중 속으로 뚫고 들어간 여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던 당돌한 여인이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결국 얻어 낸 여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과 자신의 관계를 필연적인 만남으로 엮은 여인이었습니다. 인간장벽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던 강인한 여인이었습니다. 은혜의 물줄기를 자기 쪽으로 바꾼 여인이었습니다. [부정함]이란 저주의 딱지를 떼고 [딸]이란 호칭을 받아 낸 여인이었습니다. 육체적 치유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구원 받았던 축복의 여인이었습니다.

    야이로를 보겠습니다. 그는 가슴을 치면서 분통을 터트렸던 사람이었습니다. 1분을 놓고 다투는 위급한 상황에서 부정한 여인이 꼽사리로 끼어들면서 예수님의 도착을 지연시켰고, 그 사이에 그는 종들로부터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딸이 방금 전에 죽었습니다. 선생님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마십시오. 다 끝났습니다.”(눅 8:49) 딸의 임종을 보지 못했던 야이로는 모든 원망을 혈루증 여인에게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정한 너 때문에 내 귀한 딸이 죽었다. 너만 끼어들지 않았다면 내 딸이 살 수 있었는데... 너 때문에.... 너 때문에....” 그때 예수님께서 통곡하는 야이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살아나리라.” (눅 8:50) 그랬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두 딸을 모두 살려주셨습니다. 야이로는 “부정한 여자여, 너는 아니야!”라고 내쳤지만, 예수님은 그 혈루증 여인에게 “너도 내 딸이다.”라고 품어주셨던 것입니다.

    이제 탄들랑 이야기로 마무리하겠습니다. 혈루증 여인이 [부정한 병]으로 사회로부터 철저히 격리를 당했던 것처럼 미얀마 친(Chin) 사람들이 지금 그렇게 60년 동안 깊은 산속에 격리되어 있습니다. 저는 한센선교를 위해서 부르심을 받은 선교사입니다. 그런데 한센인들을 향해서 가는 길에서 갑자기 혈루증 여인처럼 미얀마 친(Chin) 사람들이 꼽사리로 끼어들었습니다. 저는 그들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생각했었습니다. 동남아한센봉사회의 선교 정책에서 보면 한센선교 울타리 안에는 분명히 Chin(친) 사람은 없었습니다. 한센선교 울타리 안에는 탄들랑 난민도 분명히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한센선교 울타리를 뽑아서 더 바깥쪽으로 이동하고 탄들랑까지 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탄들랑 선교도 한센선교 울타리 안으로 들어온 주님께서 부탁하신 소중한 사역이 되었습니다.

    마가복음은 그녀가 12년 동안 혈루증 치료비 때문에 빈털터리가 되었다고 기록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녀에게 “부정한 여자여, 그 병으로 죽는 것이 그대의 운명이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고독한 죽음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운명]의 굴레를 스스로 끊고 예수님을 향해 질주했습니다. 그녀를 일으켜 세웠던 것은 혈루증과 싸웠던 [12년의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엎드렸던 [12년의 기도]였다고 저는 믿습니다. 기도가 없이는 그런 행동이 나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간절한 기도가 지금 탄들랑(Thantlang)에 있습니다. 그들의 간절한 기도가 얼마나 강하면 주님을 이렇게 힘차게 끌어당길 수 있을까? 저는 지금 그들의 그 간절함을 똑똑이 보고 있습니다. 탄들랑 선교를 놓고 처음 기도했을 때 후원금 목표액을 2,000만원으로 잡았습니다. 너무 큰 액수라 가슴이 쿵쿵 뛰었습니다. 그런데 10월 12일 현재까지 모금된 후원비가 총 1억 6천 700만원을 넘어섰습니다. 1억 원은 물품으로 기증받은 것이고, 6천 700만원은 후원금으로 받은 액수입니다. 제가 처음 기도했던 후원금의 8배를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부어주셨습니다. 그것은 탄들랑 성도들이 얼마나 간절한 심정으로 기도하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기적입니다.

    혈루증 여인의 이야기는 불치병을 고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녀는 대낮에 단독 범행(?)으로 예수님의 능력을 훔친 현행범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찼던 그녀의 믿음을 그냥 흘리고 지나칠 수 없었던 이유였습니다. 나드 향 한 옥합을 드렸던 여인이 행한 일을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전하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혈루증 여인의 믿음도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함께 전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은 일제히 그녀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병만 고친 것이 아니라 인생의 역작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래서 2,000년이 흐른 지금도 그녀는 우리에게까지 찾아와서 소중한 메시지를 주고 갑니다. 얼마나 멋진 인생입니까? 여러분의 아픔이 여러분의 인생 역작이 되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단호한 용기가 위대한 역사가 되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작은 결단이 또 하나의 [위대한 꼽싸리]가 되게 하십시오. [꼽사리]. 그 속뜻은 “나에게 포기는 절대 없다.”라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