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통신 제127호

동남아 한센 선교회

양한갑/최영인 선교사

휴가를 마치고 

   두 달 만에 만난 딸라교회 교우들이 나를 보자마자 먼저 반가운 미소를 던진 후에 나에게 건넨 첫 마디는 “Merry Christmas!”였습니다. 예배 중에 광고를 맡은 전도사가 강단 앞에 서더니 광고하기 전에 교우들을 향해서 다시 “Merry Christmas!”했습니다. 교우들도 “Merry Christmas!”로 화답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텅텅 비어 있는 냉장고에 먹을 걸이를 마련하기 위해서 슈퍼에 들렀는데 천장에서 크리스마스 캐롤들이 쉼 없이 흘러 나왔습니다. 그때서야 “아하~~~ 정말 내가 필리핀으로 돌아왔구나!”했습니다. 필리핀은 9월 1일부터 “Merry Christmas”로 인사를 바꿉니다. 두 달이라는 시간이 길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참 멀리까지 갔다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복한 휴가였습니다. 휴가 중 한 달은 아내와 함께 병원-약국-집, 병원-약국-집, 병원-약국-집을 다람쥐처럼 다녔지만, 하나님께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하늘 은혜를 저희들에게 입혀주셨습니다. 너무도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선교 10년을 마쳐가는 끝자락에서 저희의 영육은 긴 가뭄에 저수지가 그 바닥을 들어내듯이 깡깡 마른 상태였습니다. 마음은 그렇지 않았는데 몸은 계속 데모를 했습니다. “쉬고 싶다. 쉬고 싶다.” 혈압이 196/147까지 올라갔다가 갑자기 95/66까지 추락을 하고... 약을 성실히 먹어도 차도가 없는 상태로 계속되고.... 그래서 쉼을 주셨을 때 “성실히 쉬자!”라고 했습니다. 아는 분들에게 전화도 걸지 않았고, 방문도 하지 않았고, 선교회 웹사이트도 보지 않았고, 모든 창을 닫고 쉬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를 시내산 높은 꼭대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제 영안이 새롭게 열리는 은혜였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했던 ‘산 위에’ 사람과 금송아지와 함께 했던 ‘산 아래’ 사람들을 보게 하셨습니다. 저는 산 아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가치 없는 저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처음 것과 같이 깎아라.” “아침에 시내산에 올라와 산꼭대기에서 내게 보이라.” [처음 것과 같이]. 회복의 말씀이 임했던 것입니다.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처음처럼 다시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산 아래 사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산 위의 사람으로 살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삶을 위해서 날마다 시내산 산꼭대기에서 내 자신을 하나님 앞에 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그처럼 새벽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 은혜 후에, 저에게 두 가지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는 길거리를 걸을 때 제 눈에 들어오는 거북한 사람들의 모습들이 모두 “산 아래 사람들”의 추한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살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 걸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성경을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모든 성경의 말씀들을 “산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모든 말씀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내게 주신 말씀 사역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은혜 주시는 대로 말씀을 받게 되면 많은 분들과 그 은혜의 말씀을 나눠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선교통신 외에 그 “은혜의 말씀”들을 여러분들과 함께 자주 나누려고 합니다.

   아직까지 몸은 완벽하게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것이 은혜의 깊이를 더해 갑니다. 때가 되면 이 몸둥이 건강도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귀한 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2개월 동안 모든 분들과 연락을 끊고, 깊이 잠수하여 은둔 생활을 했던 저희들의 이기적이었던 휴가에 대해서 넓은 이해가 있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여행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강원도 한계령 정상에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이었습니다. 새로 뚫린 서울-양양 고속도로를 버리고, 옛 길 국도를 잡았습니다. 춘천-인제-원통-한계령-오색약수-상남-창촌-진부-정선....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구불구불 강원도 옛 길을 달렸습니다. 그 긴 산행에서 드문드문 다른 차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거의 저희 차만 그 길들을 독차지하도록 해주셨습니다. 고개를 넘을 때마다 그림처럼 펼쳐졌던 시골 풍경들이 많았지만, 제 머리 속에는 한계령 정상에서 내려다보았던 산 아래 그 모습만 꽉 차 있었습니다.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마닐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저는 “산 위”에 있습니다. 아니 산 위에 있고 싶습니다. 그렇게 살겠습니다. 산 위에 사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다시 한번 끊임없이 선교의 동역자가 되어 주신 모든 후원교회와 모든 주의 형제 자매님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처음 것과 같이 깎아라. 아침에 시내산에 올라와 산꼭대기에서 내게 보이라.” (출3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