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당당하게

마 14:12

    세례요한이 당시 지상 최고의 권력자에게 겁 없이 까불었다가 당한 결과였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없었다면 마지막 선지자는 그렇게 죽지 않았습니다. 더 확실한 사실은 세례요한이 그렇게 죽을 때 예수님이 가까이에 계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이 죽게 된 그 위기를 몰랐을까요? 모르실 리가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죽어 장사 된 사람들을 살려내셨던 분이셨습니다. 세례요한이 더 살아 있어야만 했다면 죽은 요한도 살리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죽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도 그의 순교를 허락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라고 했고, 예수님은 세례요한을 보고 “여자가 나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두 분 사이에는 이미 죽음에 관한 대화가 오고 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이 왜 그처럼 비극적인 죽임을 당했어야만 했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허락하셨고, 세례요한이 받아들인 죽음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세례요한 대신에 그의 제자들에게 주목하려고 합니다. 세례 요한에게는 제자들이 있었는데, 그들 중에 안드레와 요한이 있었습니다. 그 두 사람 중에서 안드레를 보겠습니다. 안드레는 베드로의 동생으로서 일찍이 세례요한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세례요한의 광야 생활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세례요한이 선포하는 메시지를 듣고 수많은 사람이 온 유대로부터 나아와 회개하고 요단강에서 세례받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본 제자였습니다. 안드레는 세상이 바뀔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믿고, 존경했고, 따랐던 세례요한이 갑자기 체포되어 옥에 갇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승의 목이 떨어졌다는 비보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목이 끊어진 스승의 시신을 수습해서 땅에 묻을 때, 안드레의 상심과 절망과 고통을 우리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는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말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이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이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의문을 접고, 스승의 지시대로 안드레와 요한은 예수님께로 가서 그 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스승이 되신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처절하게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에도 세례요한을 죽였던 헤롯이 개입되어 있었습니다. 헤롯이 말했습니다. “그 때에 분봉 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요한이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하는도다.”(마 14:1-2)라고 했습니다. 헤롯이 그의 살생부에 예수님의 이름도 올려놓고 조준 사격을 준비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도 안드레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두 스승이 같은 자에게 농락(籠絡)을 당하고 한 분은 목이 잘려 죽고, 한 분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안드레가 두 스승의 억울한 죽음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힘든 의문이 더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죽음에 관한 의문들이 3일 후에 모두 해결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그 해답이었습니다. 정치적 권세를 가지고 어떤 생명이든 자기 마음대로 죽일 수 있었던 자는 왕(王)이었지만, 그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만왕의 왕(The King of kings)’이셨음을 안드레는 확실하게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죽음이 인생의 끝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 사망을 이기고 일어나는 영광의 삶이 있다는 사실을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확실하게 알게 된 안드레가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순교가 주어졌을 때, 안드레는 그 죽음을 너무도 멋지게 감당했습니다. 안드레는 복음을 들고 터키(Turkey)을 지나 지금의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까지 올라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Greece)로 내려와 항구 도시 파트라스(Patras)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그곳에서 순교했습니다. 역사가 유세비우스(Eusebius, AD260-340)에 의하면 총독 애기아테스가 안드레를 예수처럼 십자가에 죽이라고 명령했을 때, 안드레는 "나 같은 자가 어찌 감히 예수님처럼 죽을 수 있느냐?"고 말하며, 자신을 X형 십자가에서 죽게 해달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안드레는 X형 십자가에 달려 순교했습니다. AD 69년 11월, 안드레는 헬라의 땅끝 파트라스에서 그처럼 장렬하게 순교했습니다.

    이 땅에서의 죽음이 모두 공정할 수는 없습니다. 정당한 죽음이 있는가 하면, 억울한 죽음도 있습니다. 남의 소중한 목숨을 소반에 담아 여흥을 즐겼던 헤롯과 헤로디아와 살로메처럼 지금 미얀마 군인들이 그 사악한 짓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죽은 아들과 딸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오열하는 가족과 친구들의 모습에서 제자 안드레를 보았습니다. 지금 미얀마 거리에서 세례요한의 억울한 죽음과 불법으로 자행된 예수님의 죽음이 재연되고 있습니다. 길고 추운 겨울이 지나고 가장 먼저 피는 꽃이 매화라고 합니다. 벚꽃에는 향기가 없지만, 매화에는 진한 향기가 있습니다. 매화나무 가지 위로 봄이 소리 없이 내려와 수줍은 얼굴을 내밀듯이 미얀마에도 그 봄이 다시 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미얀마 거리에서 최루탄 냄새가 사라지고, 매화 향기 가득한 거리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세상을 짧게 살다 보니 잘 살기 위해서 [열심히] 사는 사람이 있고, 잘 죽기 위해서 [바르게]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죽기 전에 나도 한번 잘살아 보겠다는 사람들은 미얀마 군인들처럼 비열한 짓도 서슴지 않습니다. 잘살아 보는 것이 그렇게 중요할까요? 세례요한은 끝까지 가난했지만, 끝까지 바르게 살았습니다. 그는 평생 집 없이 광야에서 살았고,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꿀)이었고, 그의 옷은 짐승의 털옷이었습니다. 형편없이 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여우도 굴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하나 둘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형편없이 사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무능입니까? 그것이 부끄러운 인생입니까? 그것이 실패한 인생입니까? 결코 아닐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르게 살면서 잘 죽기 위해서 끝까지 당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례요한도, 예수님도, 안드레도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생애 끝은 불의한 자들의 손에 넘겨져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지만, 그 분들은 끝까지 당당하셨습니다. 그 분들에게는 저 높은 곳,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천국이 우리에게도 있다면 그 분들처럼 끝까지 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