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 산다는 것

행 18:24-28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아볼로(Apollos)입니다. 아볼로는 유대인이었지만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 최북단에 있는 해안 도시로 기원전 3세기부터 지식과 학문의 중심지였습니다. 아볼로는 그런 알렉산드리아에서 성장하면서 많은 학문과 접했는데, 특별히 구약 성경에 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진 성경 박사였습니다. 그런데 구약 성서를 연구하면서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세례요한의 세례까지 알게 되었다고 오늘 본문은 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아볼로의 이야기를 잠시 접고, 사도 바울의 동선을 알아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혼자 고린도로 갔었습니다. 그곳에서 로마로부터 온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와 바울과 합류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1년 6개월 동안 머물며 그들과 함께 전도했습니다. (행18:11) 그리고 그들과 함께 고린도에서 에베소로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에베소에서 안디옥으로 이동할 때 바울은 함께 했던 동역자들을 데리고 가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혼자 안디옥으로 갔고, 안디옥에서 다시 소아시아(지금의 터키) 북쪽으로 올라가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지방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처럼 바울이 혼자 외지로 돌 때, 아볼로가 에베소에 도착했던 것입니다. 아볼로는 사도 바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실한 기대를 가지고 갔었지만, 한 발 차이로 바울과 그렇게 어긋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볼로에게 생각지 않았던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에베소에서 그처럼 큰 크리스천 공동체를 처음으로 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던 성경 지식을 다 털어놓았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세례요한에 대해서 그가 알고 있던 모든 지식을 열어놓았습니다. 그는 언변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행18:24) 아는 것도 많았고, 그 아는 것을 잘 설명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아볼로의 말을 다 듣고 그를 “따로” 불렀습니다. 아볼로에게 부족함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아볼로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풀어서 가르쳐주었습니다.

아볼로의 부족이란 그가 세례요한의 세례까지만 알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예수님의 생애, 예수님이 선포하신 말씀,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사실을 전하고, 오순절에 임한 성령 강림과 믿는 자들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까지 자세히 가르쳐 주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아볼로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로부터 성경 지식을 전달 받았던 것이 아닙니다. 아볼로는 두 사람의 가르침을 통해서 [은혜]를 경험했다는 것에 포인트를 둬야 합니다. 달리 말하면, 아볼로에게는 성경을 아는 지식은 넘쳤지만, 아직 은혜를 경험하지 못한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아볼로는 후에 목회자가 될 사람이었습니다. 목회자에게 필요한 것은 성경 지식도 지식이지만,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사역을 해야만 했었습니다. 마치 다음 장 19장에서 사도 바울이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하는 질문과 같았습니다. 바울은 믿음 위에 필요한 것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이 성령 충만이라고 했습니다. 아볼로에게 성경 지식 위에 필요했던 [하나 더]가 있었는데, 그것이 “은혜”를 경험하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아볼로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통해서 그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아볼로의 최종 목적지는 고린도였습니다. 아볼로는 사도 바울을 더 기다리지 않고, 그가 가고 싶었던 고린도로 갔습니다. 오늘 본문은 고린도로 떠나는 아볼로의 모습을 마치 생중계하듯이 기록했습니다. 27절입니다. “아볼로가 아가야(고린도)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고린도에 있는)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의 가슴으로 잔잔히 스며들어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은혜로 말미암아”입니다. 그랬었습니다. 에베소교회에서 아볼로가 보여준 모습은 “지식”을 전하는 성경 박사였습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에서 아볼로가 보여줬던 모습은 성도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목회자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은혜 때문에 고린도교회 안에 아볼로를 좋아하는 지지자들이 많아졌습니다. 나중에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문제를 지적했을 때, 고린도교회 안에 바울파, 베드로파, 아볼로파가 생길 만큼 아볼로의 영향력이 커졌던 것입니다. (고전1:12) 그가 그처럼 많은 사람으로부터 지지와 존경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박식한 성경 지식이 아니라 은혜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또 하나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복음을 전할 때, 아볼로는 구약 성서를 가지고 유대인들에게 힘있게 증거했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볼로에게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28절입니다.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라고 했습니다. 도도했던 유대인을 그처럼 “시원스럽게” “힘있게”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은 아볼로가 가지고 있었던 풍부한 성경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지식은 끝없는 논쟁만 끌고 나옵니다. 유대인의 입을 꿰매버렸던 것은 아볼로가 말씀을 전할 때 “하나님의 은혜, 성령의 능력”이 그 말씀 위에 충만히 임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은혜의 사역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던 사람들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였던 것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해박한 지식이 아닙니다.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사람이 변하고, 변화된 사람은 또 다른 이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사람이 됩니다. 은혜를 따라서 산다는 것처럼 행복한 삶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면 내가 가진 것, 내가 가진 모든 자랑을 다 내려놓게 됩니다. 없어도 되는 것을 꽁꽁 움켜쥐고 무겁게 살 이유가 없습니다.

1517년에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했습니다. 그런데 루터보다 100년 앞서, 얀 후스(Jan Hus)가 체코 프라하(Prague)에서 로마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에 대한 부당성과 가톨릭 성직자들의 부패를 폭로했습니다. 그 일로 로마 교황청에 소환되었습니다. 교황청은 그에게 입 다물고 있으라고 했지만, 그는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교황청은 그를 불에 태워 죽였습니다. 1415년 후스(Hus)가 순교한 후에, 그를 따랐던 제자들도 재산을 몰수당했고, 지위를 박탈당한 채 추방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후스에게 받은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진젠도르프(Zinzendorf) 백작이었습니다. 그는 매우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유럽을 여행하던 중에 뒤셀도르프에서 도메니코 페티(Domenico Feti)의 “Ecce Homo (보라, 이 사람이로다.)”라는 예수님의 얼굴을 그린 성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그림 하단에는 “내가 너를 위해 내 몸을 주건만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주느냐?”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 글을 읽을 때 진젠도르프는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그의 남은 생애를 오직 주를 위하여 쓰겠다고 서원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진젠도르프는 고난받고 있던 후스(Jan Hus)의 제자들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진젠도르프는 그들을 위해서 그의 집으로부터 약 2km 떨어진 곳에 피난처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곳 이름을 ‘헤른후트(Herrnhut)’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보호하시는 망대”라는 뜻이었다. 1727년 헤른후트(Herrnhut)는 그렇게 탄생했고, 그곳이 첫 번째 모라비안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때 진젠도르프의 나이는 27살이었습니다. 그는 24/7(하루 24시간, 1주일 7일) 중보기도회를 열었습니다. 하루 24시간, 7일 동안 연속으로 기도했던 그 중보기도회는 100년 이상 지속 되었습니다. 첫 번째 헤른후트에 모여든 사람은 약 200명이었는데, 그들 중에서 100명이 선교사로 파송되었고, 그 후에 모라비안 교회는 3,000명을 14개국으로 파송했습니다.

한 사람의 변화가 수많은 사람을 구했습니다. 한 사람의 변화가 수많은 일을 하게 했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아볼로를 “따로” 불러서 만나주었던 그 만남이 한 사람을 변화시켰고, 그 한 사람의 변화는 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끼치는 사역으로 이어지게 했습니다. 얀 후스, 한 사람의 순교, 진젠도르프, 한 사람의 변화가 세상을 바꿨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아볼로를 이끌고 가셨는지 볼 수 있었습니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를 떠날 때 에베소에서 사도 바울을 반드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에베소에 도착하기 전에 바울을 뒤로 빼돌렸습니다. 바울의 다음 행선지는 그를 파송했던 안디옥교회였습니다. 고린도에서 만났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던 교회였을 것입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역시 그 안디옥교회를 꼭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울로 하여금 혼자 떠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볼로와 바울의 만남이 아니라, 아볼로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의 만남을 계획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볼로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나고 고린도로 빠졌을 때, 하나님은 북쪽 지방으로 빼돌렸던 바울을 에베소로 내려가게 했습니다. 사도행전 19:1절입니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바울을 에베소에서 빼내어 혼자 외지 선교를 하도록 했던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한 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 보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그 간절한 만남이 어긋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지 않았던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만남은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만남들이 아볼로와 아굴라/브리스길라 부부와의 만남처럼 되고, 진젠도르프와 모라비안 교도들과의 만남처럼 된다면 우리의 만남은 [은혜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떤 곳에서, 어떤 모양으로 누군가를 위해서 사용하실지 모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서 "은혜의 통로"로 쓰임을 받게 된다면 그것이 은혜입니다. 은혜로 산다는 것. 그것은 축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