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없는 153

요 21:1-14

 

     오늘 주일 아침에 교회에서 있었던 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필리핀은 아직도 백신 접종자만 예배에 참석할 수 있고, 예배당 수용 인원의 20%만 참석할 수 있습니다. 아침 일찍 교회에는 저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혼자 기도하고 있는데, 조용히 교회 문이 열리는 소리와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한 참 후에 눈을 떴습니다. 캐서린이었습니다. 시계를 보았습니다. 오전 8시였습니다. 저는 교회 맨 뒷줄 의자에 앉아 있었고, 캐서린은 맨 앞줄 의자에 앉아서 기도했습니다. 저는 오늘 전할 말씀을 위해서, 캐서린은 오늘 드릴 특송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지난 주, 주일 예배를 마치고 제가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캐서린, 다음 주 주일예배 때 특송을 할 수 있어요?” 그녀는 “네, 목사님. 순종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어린 두 아기를 키우는 분주한 엄마입니다. 그런데 특송을 위해서 예배 시작 2시간 전에 교회로 나와서 기도로 준비했던 것입니다.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딸라교회에 그처럼 경건한 성도가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마음 한 켠에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도대체 어떤 특송이기에 2시간 동안 준비 기도가 필요했던 것일까? 그런데 캐서린이 부른 찬양을 듣고 두 번째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You are more than enough for me.”란 찬송이었습니다. 주일학교 어린 꼬마들도 자주 부르는 너무 쉽고, 너무 평범한 찬송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녀는 그 찬송을 천 번 이상 불렀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진지하게 그 쉬운 찬양을 기도로 준비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익숙한” 일이라면 많은 준비를 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반복적으로 늘 하는 일이라면 준비가 없어도 늘 그 일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캐서린에게 특송을 부탁했던 것은 그녀는 딸라교회에서 노래를 잘하는 탑 3(three) 안에 들어가는 전문 노래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노래꾼 캐서린에게 “You are more than enough for me.”는 준비가 필요 없는 곡이라고 생각했기에 저에게는 두 배의 감동이 되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제자들이 큰 고민 없이 너무도 쉽게 자신들이 하고 싶었던 일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그 일은 너무도 익숙한 일이었기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갈릴리에서 다시 보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갈릴리로 이동했습니다. 예수님은 동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갈릴리 호수를 바라보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간다.” 그 말 한 마디는 모든 제자들의 가슴까지 쿵쿵 뛰게 했습니다. “우리도 가겠습니다.” 그때는 밤이었습니다. 갈릴리의 밤은 정말 평화롭고, 아름답습니다. 호수 위로 살포시 내려앉은 하얀 달빛은 황홀함 그 자체였습니다. 헬몬 산의 신선한 바람, 잔잔히 밀려와 부서지는 파도 소리, 설레게 하는 물 냄새, 호수 위로 솔솔 떨어지는 은은한 별들, 그 위에 떠 있는 많은 배들, 그리고 어부들의 그물 던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습니다. 그 모든 것들은 너무도 익숙한 고향의 향수였습니다. "나도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는 그 익숙함이 제자들을 흥분시키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오래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님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잊고, 소매를 힘차게 걷어 붙였습니다. 어부 출신 제자들은 그 시간대라면 어느 지점에 물고기가 가장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주저함 없이 그곳을 향해서 노를 저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밤새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습니다. 익숙함이 만들어 냈던 허탕이었습니다. 자신감이 만들어낸 빈 그물이었습니다. 저는 신학대학을 졸업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목회와 선교의 현장에 있은 지 벌써 40년이 되었습니다. 이제 목회와 선교는 40년 경력을 가진 저에게는 익숙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서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그 40년 ‘익숙함’이 나를 빈 깡통이 되게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제자들의 그 다음 모습을 조금 더 들어가서 보겠습니다. 새벽녘에 주님께서 제자들을 향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뭘 좀 잡았느냐?” 제자들은 그 분이 주님이신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허탕이오.”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오른쪽으로 그물을 던져보거라.”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했더니 큰 물고기들이 그물 속에 가득 들어왔습니다. 그때서야 베드로는 말씀하셨던 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배에서 내려 주님이 계시는 곳을 향해서 헤엄쳐 갔습니다. 육지로 올라갔을 때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그곳에는 이미 숯불이 피워져 있었고, 그 위에서 생선과 떡이 구워지고 있었습니다. 숯불 위에 있던 생선은 제자들이 잡았던 생선이 아니었습니다. 더 부끄러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잡아 온 고기를 좀 가지고 오너라.” 제자들이 그물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자들이 무엇을 했습니까? 그들은 다시 황당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잡은 물고기 중에서 몇 마리를 가지고 오라고 하셨는데, 제자들은 그 물고기를 전부 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모두 153마리이네!” 153마리. 예수님께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숫자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곧바로 화제를 [물고기]에서 [양]으로 바꾸셨습니다. “내 양을 치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갈릴리에서 다시 보자.”라고 하실 때에는 다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물고기를 실컷 잡아 보라고 갈릴리로 보내셨던 것은 아닙니다. “초심”을 잃지 않도록 상기시켜주기 위해서 갈릴리로 보냈던 것입니다. 3년 전,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처음 부르셨을 때 주님은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제자들에게는 초심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물고기가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이 그들의 초심임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물고기]에서 [양]으로 화제를 바꾸어 그들의 사명이 무엇인지 다시 알도록 해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그 제자들처럼 생선을 가지고 오는 대신에 앉아서 생선을 세는 엉뚱한 셈에 빠져 있을 때가 있습니다. 어떤 목사에게 물었습니다. “성도가 얼마나 되십니까?” “아마 3,000명 조금 넘을 겁니다.” “와우~~ 큰 교회이군요.” “크기는요. 10,000명이 넘는 교회도 있는데요. 그런 교회에 비하면 우리 교회는 작지요.” 주님께는 의미가 없는 숫자를 그 목사는 입 꼬리를 올리면서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연봉이 얼마나 되십니까?” “1억 정도!” “와우~~~ 대단하십니다.” “대단하기는요. 한 달에 1억은 벌어야 뭘 좀 한다고 말할 수 있지요. 지금은 푼돈입니다.” 주님께는 의미가 없는 숫자를 그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말했습니다. 정신없는 성도들도 “주님, 제 그물에도 153마리가 터지는 대박 축복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주님께는 전혀 감동이 되지 않는 기도입니다. 평신도였을 때 누가 기도를 시키면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고는 했었습니다. 그런데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된 이후에는 언제든지 거침 없는 기도가 줄줄 이어집니다. 사람들 앞에서 기도하는 일은 이제는 너무도 “익숙한” 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기도를 잘 해도, 초심과 두려움이 없는 유창한 기도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기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오늘은 너무도 부끄러운 하루였습니다. 목사로서 40년 동안 매주 설교를 했으니, 저에게 설교는 너무도 “익숙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기도했던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를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오늘 제 꼴이 잘 난 척 했던 그 바리새인과 같았습니다. 어린이들도 부르는 그 쉬운 곡을 부르기 위해서 2시간 전부터 교회로 나와 강단 앞에 머리를 숙이고 기도로 준비했던 캐서린이 제 눈에는 주님께 칭찬 받았던 그 세리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캐서린 보다 못한 바리새인 목사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익숙함]은 우리로 하여금 물고기를 세고 있는 황당한 사람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 몇 명이 모이느냐, 오늘은 얼마를 벌었느냐는 우리에게 매우 중대한 관심거리가 될 수 있지만, 주님께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숫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다시 주님과의 첫사랑으로 가슴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매일 매일 “숫자, 숫자, 숫자”를 들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확진자가 몇 명? 이번 주일예배에 참석했던 성도는 모두 몇 명? 오늘 수입은 모두 얼마? 등등. 우리의 각박해진 삶이 숫자에 민감할 수밖에 없지만, 그 숫자를 잊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 숫자들을 잊으려 해야 합니다. 의미 없는 숫자에 우리 자신을 묶으고 살 수는 없습니다. 초심은 우리로 하여금 그 끈적끈적한 숫자들로부터 초월해서 높은 곳으로 걷게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결론을 갖습니다. 베드로는 선포했습니다.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요 21:3) 느껴지십니까? 그 짧은 말 속에 넘치고 있었던 베드로의 자신감이 느껴지십니까? 갈릴리에서 잔뼈가 굵어졌던 베드로는 마치 이런 의미로 그 말을 했을 것입니다. “오랜만에 실력 발휘를 한번 해볼까나!” 물고기를 잡는 일이라면, 그것도 갈릴리에서라면 베드로는 자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물고기가 가장 많이 있는 최고의 포인트(지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남은 것은 느긋하게 낚시를 즐기는 일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상상은 허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주님이 막으시면 안 됩니다. 주님이 여시면 됩니다. 인생은 자신감만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주님이 허락해주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감과 자만과 익숙함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오늘 아침 캐서린 자매를 통해서 주님은 저에게 무서운 채찍을 주셨습니다. 40년 동안 설교를 하다보니, 이제는 설렘도, 두려움도 없이 매주 그 익숙함 속에서 타성에 젖은 채로 설교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아침, 특송 하나를 놓고 강단 앞에 엎드려 떨고 있는 한 성도의 모습을 보면서 한없이 부끄웠습니다.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다시 갈릴리에서 보자고 하셨는지 말입니다. 제자들로 하여금 갈릴리에서 다시 초심을 회복하고, 다시 첫사랑을 회복하고, 다시 새로운 출발을 하도록 해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그 질문을 하셨던 것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요 21:15) 첫 사랑이 회복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의미 없는 숫자 153이 갈릴리 해변에 깊이 파묻히는 순간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그곳에서 그물을 내려놓고, 153 숫자를 깊이 파묻고, 초심과 첫사랑을 되찾아 갈릴리를 떠났던 것입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 땅 끝을 향하여 힘찬 출발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감이 아닙니다. 초심과 첫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