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 아버지

마 14:1-21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순식간에 우리에게 엄습해 올 때가 있습니다. 묻지마 살인자들에게 희생된 이들이 우리의 가족이었다면 우리는 견딜 수 없는 충격과 분노 속에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와이 마우이(Maui) 섬 화재로 현재까지 110명이 숨졌고, 1300명이 실종되었다고 합니다. 이탈리아 폼페이(Pompeii) 화산 폭발(AD79년)을 다시 보는 것 같습니다. 실종된 가족을 찾지 못하고 있는 가족들의 슬픔을 우리는 감히 상상하지 못합니다. 우리 가족이 그 실종자들 속에 있었다면 우리의 가슴도 이미 잿더미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그런 충격적인 비보가 전해졌습니다. 세례 요한이 헤롯과 헤로디아의 손에 목이 잘려 죽었다는 비보였습니다. 세례 요한이 누구입니까? 그는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던 이종사촌이었습니다. 형제였습니다. 가족이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그의 시신을 가져다가 장사하고 곧바로 예수님께 와서 그 비보를 전해 주었던 것입니다. (마14:12)

    그때 보여주셨던 예수님의 반응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라고 했습니다. (마14:13) “따로”라는 단어가 제 가슴을 저리게 합니다. “조용히 혼자 떠나 빈 들로 들어가셨다.”라는 의미입니다. 세례 요한의 죽음을 예수님이 얼마나 슬퍼하셨는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주책스럽게 예수님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그 수가 점점 늘어나 수천 명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빈 들에 혼자 있기를 원하셨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뒤를 돌아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들 중에 많은 병자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병을 다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늘 그러셨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저녁이 되었습니다. 빈 들 위로 어둠이 떨어졌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여기는 빈 들이라 먹을 것이 없으니, 저 무리를 마을로 보내서 먹을 것을 사 먹고 다시 오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들을 마을로 보내 필요가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두 말 중에서 어느 쪽이 이성적이고, 어느 쪽이 비이성적입니까? 어느 쪽이 합리적이고, 어느 쪽이 비합리적입니까? 어느 쪽이 현실적이고, 어느 쪽이 비현실적입니까? 어느 쪽이 정상이고, 어느 쪽이 비정상입니까?

    이성적이었던 제자들은 예수님을 설득했습니다. 그들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빈 들에 앉아 있는 수천 명 무리를 예수님께 보여주었습니다. 손에 든 오병이어를 가지고 덧셈을 해도, 뺄셈을 해도, 나누기를 해도, 곱셈을 해도 답이 없는 말씀을 지금 자신들에게 하고 있다고 제자들은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오병이어가 예수님의 손에 들려졌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무리가 배불리 먹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았습니다. 기적은 계산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기적은 믿음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그 오병이어 기적으로 이 이야기를 멈추게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그 기적 이후에 예수님의 동선을 다시 주목해야 합니다. 마11:23절 말씀입니다.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따로”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다시 “혼자”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세례 요한을 잃은 예수님의 슬픔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음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시 ‘따로’ ‘홀로’ 무리를 떠나 외딴곳으로 가셨습니다. 두 번째 예수님의 떠나심에는 그 누구도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의 ‘따로되심’, ‘홀로되심’에 대해서 좀 더 묵상하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의 비보를 들으시고 ‘따로,’ ‘홀로’ 외딴곳으로 가셨다는 것은 남이 볼 수 없는 곳으로 가셔서 숨어서 혼자 통곡하셨다는 뜻이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의 ‘따로’, 예수님의 ‘홀로’는 단순히 감정적인 ‘외로움(loneliness)’이 아닙니다. 단순히 세상을 등진 ‘고독(solitary)’도 아닙니다. 단순한 '현실 도피’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따로’, 예수님의 ‘홀로’는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깊은 “영성”을 의미합니다.

    성경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저 혼자 상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따로 홀로 산 위로 올라가셔서 그곳에서 무엇을 하셨을까? 선지자 세례 요한을 죽인 비틀어진 세상을 바라보시며, 예수님은 “아바 아버지!”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답이었기 때문입니다. 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홀로' 기도하실 때에도 주님은 ‘아바 아버지!“라 하셨습니다. (막14:36) 우리가 위기의 순간을 만나게 되면 우리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은 오직 ”아바 아버지“뿐입니다. 하나님만이 답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갈릴리에 몇 번 가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깊은 밤에, 이른 새벽에 혼자서 ‘따로’ 갈릴리 호수로 나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갈릴리는 저에게 깊은 [침묵의 영성]을 주었습니다. 갈릴리에서는 말이 필요 없었습니다. 입을 다물고 ”아바 아버지“라고만 하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상처가 치유되었습니다. 아픔이 회복되었습니다. 무너졌던 것이 다시 일어섰습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알게 되었고, 해야 할 일을 찾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예기치 못한 위기들을 만나게 됩니다. 충격적인 소식, 깊은 상처가 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럴 때마다, 이상한 생각을 갖지 마십시오. 하나님에 대한 의문을 품지 마십시오. 아픔과 상처들을 하나하나 모아서 [빈 들]로 가지고 나아가십시오. 주님처럼 말입니다. 그 빈 들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그곳에서 침묵하십시오. 그곳에서 하늘을 향해 ”아바 아버지!“하십시오. 그러면 바람 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그 바람을 따라서 가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