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통신 46호 (2012. 2. 29.)
아시아 나사랑 선교회
양한갑 최영인 선교사

필리핀 지방 한센 병원 방문기

필리핀 전국에는 정부에서 관리하는 8개 한센병원이 있습니다. 딸라(Tala)는 그 8개 한센병원 중 하나입니다. 과거에 팔라완(Palawan) 병원과 세부(Cebu) 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팔라완 병원은 마닐라에서 경비행기로 약 1시간 30분 비행 후 작은 섬에 착륙해서 다시 지프니로 갈라 타고 약 1시간 이상 더 달려 작은 부두에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배를 타고 다시 약 1시간 30분 이상 항해하면 한센인의 땅 팔라완(Palawan) 섬에 도착합니다. 팔라완 병원 주변으로 한센인 부락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고, 진주 양식장에서 일을 하고, 그 외에는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세부(Cebu)는 마닐라에서 비행기로 약 1시간 20분 걸리는 곳에 있는 섬입니다. 스페인 탐험가 마젤란이 필리핀에 처음 도착했던 곳입니다. 세부 병원은 딸라(Tala)처럼 복잡한 세부(Cebu) 시내 안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병원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그러나 협소한 병원 부지 안에는 환자들의 가족까지 불법으로 들어와 거주하고 있어서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비콜(Bicol) 병원과 일로일로(Iloilo)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한센병원들을 돌아보면서 앞으로 감당해야 할 한센 선교 전략에 대한 많은 비전과 아이디어를 갖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각각 다른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필리핀 한센인 형제와 자매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체로 큰 은혜와 기쁨이었습니다.

비콜 병원 (Bicol Sanitarium)
비콜 병원은 1929년에 한센전문병원으로 세워진 병원입니다. 마닐라로부터 13시간 운전 끝에 도착한 비콜 병원은 깊은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어서 마치 수용소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병원 주변은 사람도, 집도 없는 적막함 그대로였습니다. 병원 부지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입구에서 사무실까지, 사무실에서 병원까지, 병원에서 한센 병동까지, 한센 병동에서 그들의 가족들이 사는 거주지까지 모두 차를 타고 이동해야만 할 정도 거리가 멀었습니다. 병원 부지 안에는 농지가 많아서 많은 환자들이 쌀농사를 경작하고 있었습니다.

한센 병동에는 약 110명의 환우들이 있었습니다. 비콜 병원 역시 한센병원에서 일반종합병원으로 전환하고 있었습니다. 병원 안에는 천주교회 1개, 이단교회 2개, 개신교회 1개가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서 개신교회는 가장 초라했습니다. 35년 전에 세워졌다는 교회는 손가락으로 살짝 건들기만 해도 곧 와르르 무너질 것처럼 보였습니다.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비콜에서 저희가 선교할 수 있는 그 어떤 접촉점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병원장 Dr. Edgardo Sarmiento은 완치된 환자들은 무조건 그들의 고향으로 등기 소포 붙이듯이 보냈습니다. 그래서 병원 주변에는 야자나무 외에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부락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비콜 병원은 마치 무서운 소장이 높은 탑 위에서 24시간 감시하고 있는 수용소와 같았습니다.

일로일로 병원 (Iloilo Western Visayas Sanitarium)
일로일로 병원의 공식 이름은 Western Visayas Sanitarium입니다. 일로일로 병원은 비콜 병원보다 2년 앞선 1927년에 세워졌습니다. 다른 요양원과 다른 점은 설립될 때부터 미국 침례교 선교사가 깊이 관여했었기 때문에 현재까지 기독교 선교가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있는 병원이었습니다. 병원에는 약 70명의 한센 환우들이 입원해 있었는데, 10대, 20대 젊은 환자들도 많았습니다. 그들의 꿈과 계획을 물었습니다. 수줍은 표정으로 “가정을 꾸리고 싶습니다. 그런데.....”하면서 한 청년의 말꼬리는 힘없이 떨어졌습니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 여자 친구가 있느냐고 물으니 수줍은 표정으로 “고향에 있는데... 그냥... 그냥, 친구예요.”라고 했습니다. 작고 소박한 꿈마저도 한센병 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 젊은이의 낙심과 아픔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병원 안에는 성당 하나와 침례교회(Franco Memorial Baptist Church) 하나가 있는데, Danny Decain 목사는 20년째 침례교회에서 목회를 해오고 있었습니다. Danny목사로부터 일로일로 선교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안내로 병원장 아나벨 델 구즈만(Dr. Annabelle de Guzeman)박사를 만났습니다. 여의사인데 매우 경건한 개신교 신자였습니다. 일로일로 병원 사역뿐만 아니라 일로일로 복음화 선교에 그의 삶을 바친 신실한 일군이었습니다.

병원 선교뿐만 아니라 일로일로 선교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는 현재 일로일로에 가장 필요한 것은 교회를 개척하는 일이 아니라 죽어가는 교회를 살리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일로일로 시내 안에 신학교들이 많아 매년 많은 졸업생들이 배출되고 있지만, 산간벽지 시골로 가서 목회하려고 사람들은 매우 적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나벨 원장은 지금 필요한 것은 물질적인 후원이 아니라, 영적 각성 운동이라고 했습니다. 그 사역을 위해서 공동으로 선교 프로그램들을 개발해서 함께 사역할 수 없겠느냐고 제안해 왔습니다.

아나벨 원장은 일로일로 선교를 위해서 함께 동역해준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후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선교를 위해서 땅이 필요하다면 제가 원하는 만큼 내놓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번에 일로일로(Iloilo)로 보내주시고, 이런 분들을 만나게 하시는 일들이 혹시 일로일로 선교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 것은 아닌가 조심스럽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나벨 원장의 남편 역시 의사로서 시내에 있는 Iloilo Mission Hospital의 원장으로 일하고 있고, 동시에 목사로서 주일에는 목회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나벨 원장은 일로일로 한센병원의 원장이면서 동시 목회자 사모였던 것입니다.

이틀 동안 Danny 목사와 여러 곳을 방문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Danny목사 역시 필리핀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경건하고, 겸손하고, 신실한 목사였습니다. Danny목사는 일로일로에 내려올 때마다 항상 비행기를 타고 와야 하는 부담은 있지만, 필리핀 리더들의 영성 회복을 위해서 리더쉽 세미나와 영성 세미나를 개강해 줄 것을 간절히 부탁해 왔습니다. 기도하고 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일로일로(Iloilo) 선교에 대한 하나님의 강권하심이 아닌지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번 비콜 병원과 일로일로 병원 방문은 여러 모로 유익했습니다. 이번 방문들은 필리핀 한센 선교의 미래 선교 전략을 짜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압니다. 딸라(Tala) 선교, 나보타스(Navotas) 선교에 이어 과연 일로일로(Iloilo) 선교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감당할 수 있는 일만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신중히 움직이려고 합니다. 비콜(Bicol)과 일로일로(Iloilo)에서 만났던많은 한센인 형제와 자매들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다시 한번 보내주시는 기도와 선교 후원에 대해서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Annabelle 병원장과 Danny 목사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