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국으로 가는 사람들

마태복음 1:5

룻기의 배경

   룻기는 총 4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내용도 매우 간결합니다. 유다 베들레헴에 살았던 엘리멜렉이 흉년으로 인해서 가족을 이끌고 모압으로 이주하면서 벌어진 이야기입니다. 엘리멜렉은 모압에 도착하자마자 죽습니다. 그가 왜 갑자기 죽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내 나오미는 베들레헴으로 돌아가지 않고 어린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을 데리고 모압에 거주하게 됩니다. 10년 후에 첫째 아들 말론은 모압 여인 오르바와 결혼하고, 둘째 아들 기룐 역시 모압 여인 룻과 결혼합니다. 그런데 그 두 아들마저 자식을 낳지 못한 채 갑자기 죽습니다. 그들의 사인(死因)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타국에서 가족을 잃은 나오미는 결국 홀로 고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합니다. 그때 오르바는 모압에 남지만, 룻은 나오미를 따라서 베들레헴으로 가게 됩니다. 그 결과 룻은 보아스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고, 자녀를 출산하게 되는데, 보아스와 룻의 후손 중에서 결국 다윗 왕이 나온다는 줄거리입니다.

모압에 대해서

   룻기는 가나안에 밀어닥친 흉년 소식으로 시작했습니다. (룻 1:1) 흉년은 먹을 것이 없어서 죽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처럼 절박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사람들은 나름대로 살길을 찾습니다.  그때 엘리멜렉은 모압을 살길로 택했습니다. 그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에 대해서 많은 의문이 생깁니다. 모압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적국(敵國)이었기 때문입니다.

   모압 족속을 알려면 아브라함 시대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조카였던 롯은 아브라함과 헤어진 후에 소돔과 고모라로 가서 살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심판이 죄악의 도성 소돔과 고모라에 임했습니다. 그때 롯의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되었고, 사위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농담으로 여겨 비참하게 죽었고, 두 딸은 아비를 따라서 소돔과 고모라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두 딸이 대를 잇기 위해서 아버지와 동침해서 각각 아기를 임신하게 됩니다. 첫째 딸이 낳은 아들이 모압(모압 족속의 조상)이었습니다. 둘째 딸이 나은 아들이 벤암미(암몬 족속의 조상)이었습니다. (창 19:37-38)

   소돔과 고모라는 사해(死海) 남쪽에 있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사라진 이후에는 사해 동쪽으로 세 족속이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제일 아래쪽에는 에돔(Edom) 족속이, 그 위로는 모압(Moab) 족속이, 모압 위로는 암몬(Ammon) 족속이 거주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으로 향할 때, 모세는 그 세 족속들이 거주하는 사해(死海)의 오른쪽 길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에돔 왕과 모압 왕에게 사신(使臣)을 보냈습니다. 모세는 곡식 한 톨 건들지 않을테니 그들의 지경으로 통과만 할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때 모세는 두 왕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소개할 때 “우리는 당신의 형제가 아닙니까?”라고 했습니다. (민 20:14)

   맞는 말입니다. 에돔(Edom)의 조상은 야곱의 형이었던 에서(Esau)의 후손이었고, 모압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에돔 왕도, 모압 왕도 모세의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모세는 거절을 당했지만, 그가 말한대로 형제였던 그들과는 전쟁을 하지 않고 에돔과 모압 지역을 피해서 더 먼 동편 길을 택해서 가나안으로 올라갔습니다. 그 길에서 모세는 두 차례 전쟁을 하게 됩니다. 아모리 왕 시혼(민 21:32-33; 신 2:26-37))과 바산 왕 옥과의 전쟁이었습니다. (민 21:33-35; 신 3:1-11) 두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모압 왕 발락은 그 전쟁 소식을 듣고 떨었습니다. 그래서 술사 발람을 불러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했습니다. 결국 모압 왕 발락은 발람을 이용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압 여인을 취하고 이방신을 섬기도록 시험에 빠트리게 합니다.

   여호수아의 정복 시대가 지나고, 사사 시대로 이어집니다. 모압 왕 에글론은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18년 동안 통치를 하게 됩니다. 그때 사사 에훗이 모압 왕 에글론을 살해하고 이스라엘을 구해냅니다. 그리고 80년 동안 이스라엘은 전쟁이 없는 평화의 시대를 누리게 됩니다. (삿 3:12-30). 그런데 전쟁은 없었지만, 전쟁만큼 힘든 흉년이 이스라엘 땅을 엄습했던 것입니다. 엘리멜렉이 모압으로 내려갔을 때가 바로 그 시기가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엘리멜렉의 결정

   그와 같은 모압의 역사적인 배경을 이해한다면, 아무리 가나안에 큰 흉년이 들었다 할지라도 살기 위해서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적국(敵國)이었던 모압 땅으로 건너가 거기에서 살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모압은 지리적으로도 베들레헴으로부터 먼 나라였고, 토양은 가나안 보다 더 척박한 땅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엘리멜렉의 결정을 쉽게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멜렉은 성경에 나오는 여러 [신비한 인물]들 중에 한 사람입니다. 흉년을 이기기 위해서 적국(敵國)인 모압으로 내려간 그의 결정을 보면 그는 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거기에는 한 가지 이유가 가능하게 됩니다. 그것은 그의 결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결정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모압은 그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이 엘리멜렉을 선택해서 그를 모압으로 보내셨다는 해석입니다. 엘리멜렉의 뒤에서 그를 조정하셨던 분이 하나님이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엘리멜렉”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왕이시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주장하시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룻기는 엘리멜렉의 한 가정 이야기가 아닙니다. 룻기는 나오미와 룻이 이끌어가는 두 여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룻기는 시부모를 잘 섬기면 복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친히 이끌어 가시는 이야기입니다. 전통적으로 룻기의 저자는 선지자 사무엘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무엘은 왜 이 룻기를 기록했을까요?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말하기 위해서였을까요? 더 큰 뜻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다윗을 차기 왕으로 선택했을 때, 다윗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이었음을 사무엘은 처음부터 끝까지 똑똑히 지켜 본 사람입니다.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친히 선택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다윗의 증조모였던 룻을 또한 어떻게 친히 선택하셨는가를 후세 사람들이 알도록 룻기를 기록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룻기는 “하나님의 선택”이란 시각에서 봐야 합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까지 내려가는 족보 안에는 보아스(Boaz)가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여리고 기생 라합이었고, 그의 아내는 기혼녀 모압 여인 룻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규례에 따르면, 대를 잇는 일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중대사였습니다. 그래서 아기를 낳지 못하고 남편이 죽게 되면, 가장 가까운 친족이 대를 이을 아이를 낳게 해줌으로써 그 가문이 끊어지지 않도록 해주었습니다.

   엘리멜렉 가정이 대가 끊어지는 그런 처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대가 끊어지지 않도록 룻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를 놓고 가문 회의가 열렸습니다. 보아스는 그 의무를 책임질 가장 가까운 친족이 아니었다. 보아스 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그의 의무를 포기함으로써 그 의무가 두번째 사람 보아스에게로 넘어왔던 것입니다. 보아스는 기쁨으로 룻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그래서 룻기는 나오미와 룻의 이야기가 아니라, 엘리멜렉으로 시작해서 보아스로 끝나는 이야기였습니다. 나오미와 룻이 주인공이 아니라, 보아스가 주인공이었고 엘리멜렉은 조연이었습니다.

   이제 오늘의 본문을 주목해 보려고 합니다. 마태복음 1:5-6절 말씀입니다. “살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이 기록은 다윗의 직계 조상이 누구인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윗의 족보에 보아스와 룻은 있지만,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별로 중요한 인물이 아니였기 때문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족보에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분명히 제2선에 있었습니다. 엘리멜렉이 모압으로 가지 않았더라면 룻은 없었습니다. 나오미가 룻을 베들레헴으로 데리고 오지 않았더라면 보아스의 룻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위대한 조연이었던 것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룻을 빼내기 위해서 적국(敵國)의 땅 모압으로 파견된 특수 스파이 요원들이었던 것입니다. 그 미션을 높은 곳에서 총 지휘하셨던 분이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결론입니다. 룻기의 이야기를 선교사의 이야기로 바꿔보겠습니다. 엘리멜렉이 적국(敵國)이었던 모압으로 건너갈 때 주변 사람들은 그를 향해서 미쳤느냐고 했을 것입니다. 오늘도 많은 선교사들이 아내와 자녀들을 데리고 공산권, 이슬람권, 불교권으로 들어갑니다. 그들을 아는 사람들 특히 가까운 가족들은 그런 결정을 하고 적국(敵國)과 같은 선교지로 떠나는 선교사들을 보고 미친 사람들이라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것입니다. 선교는 적국(敵國)으로 들어가 구원을 이어갈 룻과 같은 인물들을 찾아내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그 미션을 감당할 때 사람들로부터 미쳤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바울은 담대히 말했습니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고후 5:13) 적국(敵國)에서의 선교는 결코 중단되거나 끊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지금도 친히 주장하고 계시는 하나님 선교(Missio Dei: Mission of God)이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