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사람들 거의 대부분은 손으로 빨래를 한다. 빨래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필리핀에는 빨래판이라는 것이 아예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손바닥으로 빨래를 한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큰 고무통에 빨래를 넣고 물을 붓는다.
- 1시간, 2시간 동안 빨래와 씨름을 할 자세로 작은 걸상을 놓고 그 위에 철썩 앉는다.
- 빨래를 하나씩 손바닥에 올려 놓고 공중에서 비누질을 한다.
- 구석구석까지 비누질이 꼼꼼히 가도록 공중에서 빨래를 돌린다. 그 속도와 기술을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경이롭다는 생각이 든다. 달인이 따로 없다.
- 비누질이 끝나면 그때부터 다시 빨래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공중에서 비비기 시작한다.
- 빨래를 거의 공중에서 하기 때문에 손가락, 팔목, 어깨, 허리에서 깊은 신음 소리가 난다.
- 빨래는 거품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행구지는 않는다. 물값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대충 헹군 빨래들이지만, 따뜻한 햇빛 아래에서 빨래는 새하얗게 마른다.
- 빨래 끝!

매일 매일 산더미처럼 많은 빨래들이 나온다. 날씨가 더워서 매일 매일 옷을 갈아 입어야 하고, 한 집에 병아리 아이들이 8명, 10명 오골오골하기 때문이다. 자매들과 자주 악수를 할 기회가 있다. 그런데 부드러운 손을 잡아 본 기억이 없다. 전부 거칠고 딱딱하다. 매일 독한 빨래 비누와의 만남 때문에 손가락은 휘어지고, 주부 습진 등으로 자매들은 늘 고통스럽다. 하루 속히 빨래로 부터 자유하기 위해서 모든 필리핀 자매들이 싸구려 세탁기라도 가질 수 있는 그 날이 속히 올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