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필리핀을 카돌릭 국가라고 말한다. 인구 80% 이상이 카돌릭 신자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장례식에 참석할 때마다 필리핀 카돌릭의 색깔에 대해서 고개가 갸우뚱해질 때가 많다. 먼저 장례식에 가면 관 뒤에 예수님이 걸려 있는 십자가 상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십자가 상 양쪽에는 큰 대형 촛대가 서 있다. 서민들은 촛불 대신에 전구를 켜놓는다. 거기까지는 카돌릭 분위기다. 그런데 관 아래를 보면 음식이 차려져 있다. 죽은 사람이 평상 시에 좋아했던 음식들을 아침 저녁으로 차려 놓는다. 밥과 좋아했던 과일과 좋아했던 간식들이 올려진다. 우리나라 불교 혹은 유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망자를 위한 상차림이다.

그렇게 9일 동안의 장례 일정은 지속된다. 우리는 대부분 3일 장이지만, 필리핀은 대부분 9일 장이다. 9일동안 시신을 집에 두고 음식을 공양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이유는 죽은 자의 영혼이 9일 동안 그 집에 머물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9일 동안 먹을 음식을 차려놓는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죽은 자를 위한 9일간의 기도 [노베나 기도: NOVENA PRAYER] 때문이다. "노베나(Novena)"는 라틴어로 "9일간의 기도"를 뜻한다. 성모 마리아에게 9일 동안 죽은 자를 위한 Novena 기도를 하기 위해서 9일 동안 시신을 집에 두는 것이다.

9일동안의 Novena기도가 끝나면 시신을 화장하거나 땅에 묻는다. 그리고 그때부터 다시 40일 동안 가족들은 집에서 매일 죽은 자를 위한 미사를 본다. 그 40일 동안 왼쪽 가슴에 네모로 된 검정색 플라스틱 핀을 꽂고 지낸다. 그 이유는 죽은 자의 영혼이 40일 동안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돌아다닌다고 믿기 때문이다.

필리핀 카돌릭 신자들이 믿는 것은 죽은 자의 영혼은 죽는 순간부터 49일 동안 하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가, 49일이 지난 후에야 비로서 하늘 나라로 들어간다고 믿는다. 불교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49제"와 같다. 필리핀 카돌릭 교회는 Novena 기도 후에 40일을 기다리는 것은 예수님도 하늘로 올라가기 전까지 40일 동안 이 지상에 있었기 때문에 죽은 자를 위한 49일 동안의 미사는 성서적이라고 해석한다.

그처럼 필리핀 카돌릭은 여러 종교들의 관습을 혼합한 모자이크 색깔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