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미 충분히 행복합니다.

마 14:24-33

 

인천에서 개척교회를 열고 목회할 때, 형편에 맞춰서 오토바이 하나를 구입했습니다. 35년 전 어느 날, 그 오토바이 뒤에 아내를 태우고, 주안 시민회관 앞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비좁은 차선들 위에 많은 차량들이 빽빽이 뭉쳐서 서행하고 있었습니다. 버스 정류장 앞. 차량의 흐름 때문에 저희는 한 버스 뒤에 정차했습니다. 버스가 손님을 태우고 출발하면 그 버스와 함께 출발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제가 오토바이 핸들을 꺾어서 버스 뒤에서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1초 후, 제 앞에 있었던 그 버스는 엄청난 충돌 음을 내며 종이처럼 구겨진 채로 앞으로 튕겨나갔습니다. 뒤에서 오던 버스가 멈추지 않고 질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버스 뒤에서 빠져나왔던 저희들 머리 위로 유리 파편들이 우박처럼 쏟아졌고, 사람들의 찢어지는 괴성이 들려왔습니다. 1초 전까지 저희가 그 버스 뒤에 그대로 있었다면 그때 저희 두 사람은 죽었습니다. 35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그 충돌 소리와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고통스럽게 울부짖던 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옵니다.

그런 비슷한 일이 오늘 본문에서 일어났습니다. 갈릴리 호수의 둘레는 약 52km이고, 그 깊이는 약 50m입니다. 그 깊은 호수가 강풍으로 뒤집어지면, 그 안에서 살아남을 사람은 없었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지중해 수면 보다 212m 얕습니다. 파도에 밀려 큰 대양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호수가 뒤집어지면 갈릴리는 곧 무덤이 됩니다. 어부 출신들이었던 제자들은 갈릴리 호수가 성이 나면 그 끝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쉽게 죽음에 대한 공포에 빠졌습니다. 새벽 4시가 되었지만, 갈릴리의 거친 파도는 여전히 성이 나 있었습니다. 그때 높은 파도 위로 걸어오는 한 물체를 보았습니다. 제자들은 “유령이다!”라고 외쳤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 위에 유령에 대한 공포까지 겹치면서 제자들은 초죽음이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안심시켜주셨고, 물에 빠졌던 베드로를 꺼내주셨고, 성난 파도를 잔잔케 해주셨습니다. 그 엄청난 이야기는 제자들의 고백으로 끝이 났습니다. “주님, 당신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마 14:33)

어떤 각도에서 이 이야기를 봐도 다 은혜가 됩니다. 예수님과의 동행 없이 고기를 잡기 위해 배를 타고 호수 안으로 들어갔던 제자들의 모습에서, 거센 풍랑을 만나 쩔쩔매는 제자들의 모습에서, 몇 발자국 뒤에 물속으로 풍덩 빠질 위인이 당신이 유령이 아니고 정말 주님이시라면 그것을 증명해 보라고 말했던 베드로의 당찬 모습에서, 허우적거리는 베드로의 손을 잡아 그를 꺼내주셨던 주님의 모습에서, 믿음 없음을 꾸중하셨던 주님의 모습에서, 그리고 거센 풍랑을 잔잔케 하셨던 주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많은 은혜를 받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장면에서 가장 큰 은혜를 받으셨습니까?

저는 예수님께서 호수 한 가운데 즉 위기의 현장 안으로 친히 찾아가셨던 그 모습에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이 된 마태복음 14장에는 크게 세 가지 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기적은 오병이어로 5,000명 이상의 군중을 배불리 먹여주셨던 기적이었고, 두 번째 기적은 성난 갈릴리 호수를 잔잔케 해주셨던 기적이었고, 세 번째 기적은 예수님의 옷 자락만 만져도 모든 병자들이 나음을 입게 되었던 기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처럼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매우 이상한 점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엄청난 능력을 가지셨던 예수님이셨기 때문에 구태여 호수 한가운데 위험한 현장까지 들어가실 이유가 없으셨다는 것입니다. 해변에 서서 “바람아, 파도야, 잠잠하라!”라고 말씀만 하시면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에 제자들은 평온해진 호수를 가로질러 예수님이 계시는 곳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옷 자락에 물 방울 묻히지 않고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그 쉬운 일을 하지 아니하시고, 주님은 친히 위기의 현장, 고난의 현장 안으로 들어가셨던 것입니다. 그 분이 우리가 섬기는 예수님이십니다.

이슬람교 교주 무함마드(Muhammad)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불교의 석가모니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칼만 만지작거렸을 것이고, 한 사람은 보리수 아래에 좌정하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만 읊조렸을 것입니다. 고난의 바다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친히 그 고난의 현장 안으로 들어가 위기 속에 있던 사람을 손을 내밀어 구원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었던 일보다 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공포에 질린 제자들과 물에 빠진 베드로만을 구해 주신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를 영원한 저주와 영원한 고통과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구해주기 위해서 예수님은 이 땅까지 내려오셔서 우리가 죽어야 할 그 자리에 대신 들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주셨습니다. 그 예수님께 우리는 무엇을 더 요구할 수 있을까요? 저와 제 아내를 버스 사이에서 꺼내주셨듯이, 우리를 영원한 저주와 심판의 자리에서 꺼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꿈 하나가 있었습니다. 철 대문이 있고, 집 안에 계단이 있는 2층 집에서 살아보는 것이었습니다. 시골 촌놈 꼬맹이가 9살 때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학교 갈 때마다 꼭 지나가는 2층 집 하나가 있었습니다. 시골 우리 집은 싸리문이었는데, 그 집은 철 대문이었습니다. 그 철 대문에는 주머니 하나가 걸려있었고, 새벽에 배달된 신선한 우유 병 하나가 무겁게 담겨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에 우유를 마시고 등교하는 그 집 아이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때부터 제 꿈은 “철 대문”이었습니다. 그때 그 부러움이 가끔 새벽 안개처럼 제 가슴에서 소록소록 피어올랐습니다. 요즘 마닐라의 스카이라인이 매일 매일 달라집니다. 30층, 40층, 50층 빌딩들이 유리 옷을 입고 앞 다투며 올라갑니다. 멀리서 보면 거대한 크리스털 수정처럼 보입니다. 그 빌딩의 주인이 부러울 때가 있었습니다. 철 대문에서 유리 성으로 부러움이 바뀐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음성이 있었습니다. “저 유리 성이 부러우냐?” “조금은~~~~요.” “다 무너질 것들인데..... 그래도 부러우냐? 너에게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 영원한 집이 있다.” 그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이었는지, 예수님의 음성이었는지, 성령님의 음성이었는지 저는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음성을 듣는 순간 이 세상을 향해 가졌던 모든 부러움이 한 순간에 무너졌고, 사라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시편 37:10-11, 4)

식탁 위에 마지막 빵이 한 조각만 남아 있어도 저는 이제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미 충분히 행복합니다.” 내가 중한 병에 걸려 며칠 못 산다 할지라도 저는 이제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미 충분히 행복합니다.” 제가 큰 대형 교회 담임목사가 아니라 땅끝 선교지에 파묻혀 있는 무명인이라도 저는 이제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미 충분히 행복합니다.” 나를 찾아주시고, 손을 내밀어 나를 구해주신 예수님이 나의 전부이시기 때문입니다.